서울성곽 걷기여행 -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
녹색연합 지음 / 터치아트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우선, 당신이 지금 서울에 살고 있다면, 다음 중에 모르는 지명이 있는지 꼽아봤으면 좋겠다. 숭례문(남대문), 남산, 장충체육관, 흥인지문(동대문), 낙산 혹은 대학로, 숙정문, 인왕산, 경교장 혹은 서대문… 굳이 서울 사람이 아니어도, 이 중에 아는 지명이 하나도 없지는 않으리라. 지도를 펼쳐놓고 이 지명들을 이어보면 하나의 선으로 쭉 연결된다. 바로 서울 성곽길이다. 

   서울토박이로 서울에서 계속 살고 있는 나는, 정동에서 고교를 졸업했고, 직장 생활도 남대문 부근에서 했으니 성곽길 주변을 계속 ‘지나다니기’는 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 때는 특별히 서울 성곽길이라고 따로 있지는 않았고, 그래서 대부분의 서울 사람처럼 나 또한 서울성곽길을 염두에 두고 ‘제대로 걸어본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요즘 서울성곽의 많은 부분들이 복원되고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으니, 그 길이 그저 새롭고 고맙다.
   막바지 여름이 한창이던 어느 날,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친구들과 함께 서울성곽길을 걸어보았다. 이번에 걸은 길은 3코스의 일부인 혜화문에서 말바위 쉼터까지다. 원래는 숙정문을 거쳐 창의문까지 걸을 예정이었으나, 태풍 곤파스로 인한 상처 때문에 숙정문 방향은 입산이 통제되었다. 그래도 내려와서 길상사와 이화마을을 들르니, 아쉬움이 조금 달래진다. 혼자서도 좋을 길이지만, 이렇게 여럿이 걸으면 더 정감어리고 좋은 길― 바로 서울성곽길이다.

   내가 <서울 성곽 걷기 여행>을 읽은 것은 그렇게 성곽길을 다녀온 뒤의 일이다. 책을 받아들고는, 며칠 전 다녀온 곳부터 하나씩 되짚어가며 읽다보니 느낌이 남다르다. 며칠 전 다녀온 그 길이, 성곽길 중 아이들과 친구들, 연인들이 걷기에 가장 좋은 길이란다. 그러고 보니, 그 날따라 꼬마 친구들이며 연인들을 꽤나 많이 만났던 생각이 난다.  거기에 덧붙여 NGO와 장수마을 이야기 등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성곽길 여행을 가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접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하는 아쉬움이 더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성곽길이 하나로 이어져서 머릿속에 그려진다.

   <서울 성곽 걷기 여행>은 서울을 다시 보게 해준다. 그래서 18.6㎞에 이르는 성곽길을 짚어가다 보면, 우리가 오늘도 지나다니는 그 길에 서울의 역사와 문화, 상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번을 지나다닌 남산이고, 청계천이고, 동대문일까마는 익숙한 지명이고 수시로 지나다니는 길이라고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길에 수많은 사연들이 들어있고, 게다가 가을 하늘을 물병 한 가득 담아낼 수 있는 멋진 곳도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서울의 골목길이 왜 구불구불한지, 왜 ‘숭인문’, ‘흥례지문’이 아니고 ‘숭례문’, ‘흥인지문’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된다. 혹은 촬영 장소로도 종종 등장하는 남산 식물원 주변이 실은 일제의 신궁으로 짓눌려 있었던 아픈 역사를 알게 되어 그 장소가 새삼스럽다.  

   이 책은 성곽길 주변의 돌아볼만한 곳도 같이 소개하고 있다. 남산 한옥마을, 독립문, 길상사, 수연산방, 최순우 옛집 등 대부분 성곽 여행길에서 멀지 않은 곳들이다. 성곽을 돌아보며 땀도 식힐 겸, 잠시 들러보면 좋은 장소들이다. 

   ‘지나다니는 것’과 ‘제대로 걸어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이 책은 서울 성곽을 ‘제대로 걷는 방법’을 말해주는 책이다. 성곽길 여행에 동행하기 쉽도록 책도 작고 휴대하기 좋게 만들어졌다. 다음 번 성곽길 여행에는 주머니에 챙겨넣고 하나씩 하나씩 짚어가며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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