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유혹 - 열혈 여행자 12인의 짜릿한 가출 일기
김진아 외 글 사진 / 좋은생각 / 2010년 7월
절판


중요한 건 음식이겠지만, 어쨌건 같은 음식도 담는 그릇에 따라 느낌은 전혀 다르다. 그릇에 따라 맛있는 음식이 더 맛깔스러워 보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은 ‘그릇의 선택’에서부터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다고 맛이 썩 뛰어난 것도 아니어서, 결론적으로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선택이 되고 말았다.
국내외의 여행기가 쏟아지다시피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 수많은 여행서 중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우선 저자들의 다양한 면모 때문이었다. 방송 작가, 기자, 잡지 편집장 등 글에 대해 일가견이 있을만한 저자들과 싱어송 라이터, 칼럼니스트, 대기업 연구원 등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저자들까지…… 그들 대부분은 여러 권의 여행서를 발간한 베테랑들이다. 게다가 그들이 선택한 여행지는 기존의 여행지에서 조금 더 현지에 가까이 다가간 색다른 여행지였다. <여행자의 유혹>이라는 제목처럼, 그러한 다양성과 특이함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셈이다.

저자들의 공통점은 기존의 생활을 모두 접고 여행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잠깐의 여행이야 비교적 쉽게 나설 수 있지만,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고 ‘길 위에 선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일상을 모두 접고 훌쩍 떠난 그들의 용기가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렇게 모두 버리고 떠났기 때문일까? 그들이 소개하는 여행지는 일반적인 여행지와는 많이 다르다. 짐바브웨, 에스토니아 등 이름으로라도 알고 있는 나라는 둘째 치고, 다람살라, 잔지바르, 니일스야드 등 이름만 들어서는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지 선뜻 짐작이 안가는 곳들이 많다. 그런만큼 개성과 흥미로 독자를 유혹할 수도 있었을 여행서이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선 목차의 순서부터 기준이 없어 독자로서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역별로건, 작가별로건 구분이 되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12명의 필자는 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체계가 없이 각자의 얘기만 풀어놓다 보니 전체적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케이프타운에 있다가 바로 러시아로, 다시 하노이로 정신없이 건너뛴다. 지명도 깨알같은 글씨로 한 쪽 구석에 써있어서, 본문을 읽기 전에는 잘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래서 독자로서는 공감을 하기 보다는, 마치 바쁜 일정의 버스 안에서 잠들었다가 무작정 내려서 어리둥절한 이방인이 될 뿐이다.

한 편 한 편의 여행기를 봐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여러 권의 여행서를 낸 저자들인만큼, 내용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글의 흐름도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너무 짧은 분량으로 끊어서 쓰다 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나오다가도 금방 끝을 맺고 말아, 읽는 입장에서는 허무할 때가 많다. 여행지에서 겪을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얘기해서 이어질 다음 사건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냥 그랬다구. 그게 다야…’하고 어이없이 말문을 닫아버리는 식이다.
이 책의 결정적인 단점은 사진이다. 135×200㎜의 판형인데다가 사진의 크기가 너무 작게 들어가 있어, 여행지의 매력이 제대로 전달되지를 않는다. 책소개에서 보여준 선명하고 시원한 사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폭포의 웅장함이나 사막의 광활함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를 않는다. 원래의 사진은 분명 멋있었을텐데, 책의 여백은 많이 두고 사진은 작게 넣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진다.
여행기에서 글과 사진이 음식이라면 책의 편집이나 체제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이 어울리는 예쁜 그릇에 담겼을 때, 그 음식은 “맛있는 유혹”이 될 것이다. 이번 <여행자의 유혹>은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못했다. 읽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그 곳으로 떠나고 싶어지는 그런 “맛있는 유혹”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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