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읽다보면 첫 장부터 빠져들게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도입부부터 조금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다. <2058 제네시스>의 경우는 후자였다. 그것은 처음 읽는 뉴질랜드 소설이라는 낯설음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채, 시험부터 봐야하는 당황스러움 같은 것이었다. ‘1교시’라는 말에 어수룩하게 첫 장을 펼쳤다가, 갑자기 시험을 보라는 그런 기분이랄까?

   <2058 제네시스>는 처음부터 그렇게 조금 당황스럽게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학술원에 입학할 자격을 갈망하는 아낙시맨더스가 거치게 되는 4시간의 시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아낙스를 따라 삭막한 분위기의 긴 복도를 걸어 들어가는 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작가는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독자를 답답한 상황 속에 ‘툭’하고 던져놓는다. 작가는 이렇게 딱딱하고 숨막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인간성 회복과 자유를 갈망했던 아담 포드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아낙스가 사는 섬, 아오테아로아는 황폐화된 지구를 피해 새로 건설된 유토피아인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그 면면을 살펴보면 왠지 모를 음산함과 공포가 느껴진다. 게놈 해독을 거친 주민들의 계급이 나뉘는 것도 그렇지만,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지는 일도 그렇다. 아이들의 성장관련 정보는 전혀 제공되지 않은 채, 생후 1년이 지나면 ‘제거’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 공화국은 결혼도 유전자 변이부서의 허가증명을 받아야하고, 결혼 후에도 부부가 같이 지내려면 공유시간수당을 따로 벌어야하는 세계다.

   그런 속에서 ‘아담’이란 존재가 태어난 것이다. 침입자는 무조건 사살해야하는 냉혹한 세계에서 아담은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침입자 ‘이브’를 본능적으로 살려준 행동에서, 또 인간처럼 행동하는 안드로이드 아트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인 아담은 고뇌하고 갈등한다. 아담은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에 대해, 의문을 갖고, 생각을 하고, 갈등을 한다. 이렇게 너무나도 인간적인 아담은 공화국에는 큰 위협이 되는 것이다. 아낙스는 시험을 통해 아담의 생애와 정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리고 아담에 대한 그녀의 해석이 그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페리클레스, 아담, 이브 등 익숙한 이름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적용한 소설답게, 첫 번째 휴식시간에 등장하는 인물은 소크라테스를 염두에 둔 듯 소크라는 이름도 등장한다. 이들 인물은 각각 그들의 성격을 대변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대변한다. 그래서, 금기(taboo)를 깬 이브로 인해, 아담은 공화국에 ‘원죄’를 짓게 된다.

   역사상 ‘독재자인지, 진정한 민주주의 지도자인지’ 여부의 논란에 휩싸여왔던 ‘지상의 제우스’ 페리클레스는 이 책에서도 결정적인 인물로 작용한다. 페리클레스가 연설에서 말했다는 “우리는 자유에 의한 기풍 속에 자라면서도 위기가 닥쳤을 때는 물러서는 일이 없습니다”라는 말은 어찌 보면, 작품 속 페리클레스에게도 해당되는 듯하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아낙스의 말에 페리클레스는 단호하다. 그의 마지막 행동은 실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탓에,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 때에는 잠시 혼란스럽기조차 하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을 교차 편집해놓은 듯한 ‘공화국’의 모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염된 세계를 떠나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 건설된 공화국에서 기존 세계의 추악함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은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쩐지 가슴이 답답하다. 처음의 이상에서 벗어나 변질된 공화국의 모습은 우리의 참담한 미래 모습을 미리 엿본 것 같아 씁쓸함을 준다.

   하지만 그래도 위로삼을 수 있는 것은 결말의 참담함이 끝은 아니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결말의 그 순간에도, 누구보다 인간적이고자 했던 아담의 꿈과 진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 ‘아트’를 통해 ‘바이러스처럼’ 복제되어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냉혹한 공화국의 현실 속에 이렇게 퍼진 바이러스는 또다른 ‘돌연변이’를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아담과 아트의 인간적인 교류는, 날이 갈수록 디지털화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인간성’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