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 행복한 비움 여행
최건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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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책을 읽다 보면 ‘어? 작가가 누구지?’하고 새삼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부쩍 일 때가 있다. 글을 읽기 시작할 때, 분명 작가의 프로필을 읽고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표현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강하게 와 닿는 구절이 있을 때 주로 그렇다. 이 책이 그랬다. 올레길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한 책이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올레길과 함께 작가에게도 빠져들고 만다.

    사진에 문외한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이름을 처음 접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올레길에 대한 관심에서 고른 것이어서, 사진은 올레길의 모습을 짐작케 해주는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책에 계속 빠져든 것도 글이 먼저였다. 물론 빼어난 사진도 한 몫 했지만... 중간중간 제주의 풍광을 표현해내는 작가의 표현력과 세상을 보는 저자의 식견에 감탄을 하다 보니, 저절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자 최건수는 30여 년을 사진가로, 사진평론가로 활동하며 많은 전시회를 기획했고 이미 다수의 책을 냈던 사진전문가였다. 멋모르고 고른 책이 제대로 임자를 만난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장을 넘기면 눈앞에 펼쳐지는 사진마다 제주의 아름다움과 올레의 소박함이 제대로 묻어난다. 때로는 거시적으로, 때로는 미시적으로 올레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그의 심미안이 글과 사진에 두루 나타난다. 사진은 그렇다치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는 저자가 글까지 맛깔나게 써놓았으니, 창작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어쨌건 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서운할 지경이다.

 …바다는 그냥 바다가 된 것이 아니다……그러니 바다가 된다는 것은 모든 업을 끌어안음이고, 궂은 것 좋은 것을 따지지 않음이다. 그것이 바다다……바다와 함께 생을 보내면서 바다를 닮아가는 여자. 여자는 이미 당신들을 위하여 바다가 되었다. 세상의 고됨과 한을 가슴에 안은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바다에서 배운 것이다. 

…바위 웅덩이에는 작은 바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작다 하더라도 그 속에 온갖 세월과 물의 삶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으리라. 파란 하늘이 담겨 있고, 갯강구들이 잠시 들여다보고 가고, 게들도 긴 발을 슬쩍 적셔보고 간다. 

…걷자, 느리지만 한 발짝 한 발짝……거기에 당신의 꿈이 있다

    이 책은 남제주를 동에서 서로 아우른다는 제 1 올레에서부터 12올레까지의 길을 차례로 걸어가며 보여준다. 각 장마다 이번 올레의 코스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내가 걷게 될 길이 어디쯤이고 어떤 코스인지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처음부터 올레길을 다 걸을 자신은 없고, 어느 올레길을 선택해서 걸을까 고민했던 나로서는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림지도가 고맙다.

    저자의 눈을 따라 1올레부터 천천히 걷다보면, 만나는 올레마다 저마다의 풍경을 가지고, 길을 나선 올레꾼들을 넉넉하게 맞아주는 것 같다. 때로는 선문대할망과 걷다가, 돌담을 따라 걷다가, A⁺의 감동을 안겨주는 제주의 인심도 만난다. 그러다가도 어느새 김영갑과 이중섭의 슬픈 사연도 만나고, 4·3사건의 부끄러운 역사도 만난다.

    올레길에 오른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하나씩 가지고 나선 터일게다. 산에서 만나면 누구나 친구가 되듯이, 올레길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때로는 아무 동행도 없이 혼자서 그저 마냥 걷기만 해도 좋을 일이다. 모든 것을 비워내고 철저하게 혼자가 되고 싶어 떠나는 올레이기도 하니까. 그 길을 걸으며 나도, 저자처럼 빗꽃〔雨花〕이나 실타래처럼 바다위에 떠있는 수평선의 흰 빛을 만났으면 좋으련만... 비우기는커녕 올레를 만날 욕심부터 채우는 내가 겸연쩍지만, 그래도 버리기 힘든 욕심임을 인정해야겠다. 그게 올레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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