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ㅣ 사거리의 거북이 6
로젤린느 모렐 지음, 김동찬 옮김, 장은경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제목에서의 ‘오렌지’ 때문이었을까?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는 상큼한 오렌지가 순간적으로 떠올랐었다. 하지만 뒤이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구절과 이어진 책 소개를 보니 첫 인상의 상큼함이 아닌, 오히려 자몽의 쌉쌀한 뒷맛같은 것이 느껴졌다. ‘죽음’이란 단어는 그렇게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움찔하게 만드는가보다.
이 책은 아이와 함께 읽으며 죽음과 이별에 대해 조금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책이다. 얼핏 보면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 내용전개도 빠르고 세부묘사도 많이 빠져있다. 그래서 어린 열 세 살 알리스가 결말에는 “엄마를 일찍 여읜 것, 그것이 내 삶이고 내 운명이다.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며 재빨리 결론짓고 현실로 돌아온다. 내용은 마음 아프고 가슴저린데 너무 재빨리 마무리짓는 듯해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아마도 아이의 수준에 맞춰 너무 깊이 상처받지 않게 빠른 전개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이 세부묘사가 잘 된 장편소설로 다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알리스의 가족은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평화로왔던 가족이었다. 아름답고 현명한데다 세련되기까지한 엄마와 능력있고 가정적인 아빠와 사랑을 한껏 받으며 자라나는 주인공 알리스까지... 파리 변두리의 평범한 아파트에 사는 이 가족은 그렇게 계속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엄마의 암 발병을 알게 된 이후, 알리스는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현실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현실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한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차츰 깨닫는 것이다.
모든 운명이 바뀐 ‘그 날’은, 이 책에서는 ‘엄마의 죽음’으로 그려졌지만 ‘그 날’은 사실 부모와 떨어지는 모든 이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지금 이 시점의 대한민국에서 엄마나 아빠의 부재를 안고 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그것이 죽음이건, 부모의 이혼이건, 기러기아빠이건 모두 가슴의 어느 한 구석은 비워놓을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중, 가장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것이 죽음으로 인한 이별인 것은 말해 무엇하랴마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이 아팠던 대목은 “부모님이 오직 나에게만 관심을 갖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자상하고 진지하게 들어주던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 정말 아쉬웠다”라는 알리스의 말이었다. 또한 “참말이구나, 참말이구나, 엄마는 이제 없구나.”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현실에 또 마음 아파해야 했다. “뒤죽박죽이 되어도 혼자 감당해야 했고……나는 이제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알리스의 독백은 돌이킬 수 없이 상처받은 어린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알리스는 그저 ‘어둠만이 가득한 심연을 마주하고……그 앞에 망연히 주저앉아’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 말씀에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하신다. 죽음이라는 크나큰 고통이 있었어도, 그래도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진리일 것이다. 알리스의 엄마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딸에게 “돌아올 때, 오렌지 사 오는 것 잊지마, 알리스!”하고 쇠약한 목소리에 마지막 삶의 의지를 담아낸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고통이 있었어도 ‘삶’은 그렇게 계속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에게 새 여자친구가 생기는 것도, 그걸 얼떨떨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변화와 생기가 다시 찾아올 듯한 예감에 내심 기대를 하는 알리스에게도 변화에 대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추억을 안고 새로운 삶의 이끌어 가야하는 남은 자들의 의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