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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금지된 비밀일기
리자 아쥐엘로스 지음, 이수지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자라는 동안 내내 버릇처럼 일기를 썼던 것 같다. 그 중 몇 권은 지금도 가지고 있어서 가끔씩 꺼내보기도 한다. 대학 이후의 일기를 읽어보면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지지만, 그 이전의 것을 읽어보면 유치하기가 짝이 없어서 뭘 이런 걸 가지고 고민했었나 싶은 것도 있다. 그래도 역시 일기란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처럼 꺼내어보면 다시 돌아가고픈 시간이기도 하다.
<엄마에게 금지된 비밀일기>는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엄마에게는 말하고 싶지않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사춘기 딸의 비밀스러운 일기체 소설이다.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사는 롤라는 자신의 분신인 일기장에게 그 나이 또래에 겪게되는 정신적 혼란, 엄마와의 갈등, 남자친구에 대한 사랑과 갈등, 또래친구들과의 우정 등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롤라의 일기에는 사춘기 소녀의 복잡미묘한 심정이 그녀의 일기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기다는 그 나이에, 지나고나면 별 것도 아닐 일에 분개하고, 절망하고 하는 소녀다움이 곳곳에 묻어있다. 하지만 이 책은 사실 우리의 문화와 감성과는 많이 다르다. 단지 세대차이여서가 아니라, 마약, 섹스, 사생활 등에 대한 시각차가 심하다 보니 읽으면서 우리 문화와는 무척 동떨어진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사생활을 침해받은 롤라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유린당한 기분이 들고 엄마를 다시는 보고싶지 않을만큼 분노하고 아빠 집으로 가버리는 행동도 사실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아마도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오히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온 가족이 사생활을 양보(?)하는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도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엄마와 딸의 갈등은 결국 엄마의 사과와 대화로써 풀어지게 된다. 딸이 아닌 엄마의 사과! 자식에게는 늘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엄마의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인가 보다. 딸의 첫경험과 마약(!) 등에 충격받고 기막혀하고, 그러고도 딸의 사생활을 침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롤라 엄마의 모습은 몇 십 년 후 롤라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1318 세대의 감상은 또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나 또한 이미 어른이 되었고, 내 자신이 엄마여서 그런지 오히려 마지막의 엄마의 편지 내용에 좀 더 공감이 되었다. 이건 세대, 문화를 떠나서 그저 ‘엄마’라는 공통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롤라는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걱정하는 엄마에 대해 ‘엄마들이 우리 신체가 아직도 자기네들 거라고 믿고 있는 거’에 대해 이상하다며 ‘제발 탯줄을 끊으라!’고 충고를 하고 있다. 엄마로서는 ‘아홉 달 동안 내 배였던’ 아기가 18개월동안, 혹은 18년 동안 내 몸과 같았던 ‘또 다른 나’로 자란 것인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 이유기’라는 말은 아이보다 오히려 엄마에게 더 해당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가 어디 특정한 기간에 ‘탯줄끊듯이’ 끊어질 수 있는 관계던가? 딸-엄마-할머니...결국 같은 여자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내가 내 어린 딸에게 그렇듯, 우리 엄마도 다 자란 내게 관심과 걱정을 끊을 수 없는, 평생 그런 일방적 관계인가 보다. 연로하신 엄마에게는 ‘아유~엄마, 이젠 내가 알아서 할께!’라고 외치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아기같은 딸에게는 계속 잔소리를 하게 되는 또 다른 엄마인 내 모습은 세대만 달리한 ‘여자’의 모습일 것이다. 갈등의 내용만 조금씩 다를 뿐, 엄마와 애증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엄마를 닮아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또 다른 엄마’인 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