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도 인문학이나 교육학 수업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호이찐가(호이징거)의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보았을 것이다. 또한 딱히 그런 수업이 아닐지라도 ‘호모 루덴스’라는 용어는 ‘호모 파베르’ , ‘호모 사피엔스’ 등과 함께 인류에 대한 수식어로 일반에게도 이미 익숙한 단어다. 사실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에 덧붙여 인류를 설명하는 용어는 무척 다양하고 지금까지도 계속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호모루덴스’라는 용어가 특히나 강조되는 것은 그 때까지의 인간에 대한 인식 자체를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본 획기적인 연구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호모루덴스를 그저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피상적인 단어로만 알고 있었지, (오래전에 홍성사 판으로 나온 적은 있었지만) 직접 책으로 읽어보지는 못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연암서가 판으로 산뜻한 표지를 한 채 나온 책을 보고는, 과연 “호모 루덴스”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첫 번째로 놀라웠던 것은 저자의 언어적 천재성이었다. 히브리어, 아랍어, 산스크리트어 연구에 심취한 것도 그렇지만, 그리스어, 중국어, 셈 어, 알공킨 어 등 이름조차 생소한 언어에까지 연구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네덜란드 태생으로 라이프치히에 유학하면서 비교언어학에도 일가견이 있는 저자는 문화, 예술, 문학, 역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구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목차에도 보이듯 ‘놀이’라는 개념에 대해 언어적 기원을 시작으로 법률, 전쟁, 문학, 철학, 예술 등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조명하여 고대, 현대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설명을 하고 있다. 하나의 장(章)만으로 하나의 책이 엮어질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저술임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고등 형태의 ‘놀이’를 ①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경쟁과 ② 어떤 것의 재현이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누고 있다. 또한 거기에 덧붙여 놀이와 의례, 종교, 주술과의 상관성, 놀이와 진지함의 관계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경기(혹은 경쟁)와 놀이의 문화적 기능과 인간 문명의 각 분야 속에 내재되어 있는 ‘놀이’의 요소와 특징들을 설명하며 다양한 역사적, 예술적 배경등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은 한 두 번 읽어서 이해될 성격의 책은 결코 아니다. 사실 온갖 분야를 총망라하는 저자의 박식함을 따라가기조차 벅차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면 고대, 중세뿐 아니라 21세기인 지금의 문화까지도 저자의 이론에 오버랩되어 조금 더 이해가 깊어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아하~’하며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것에서 ‘놀이’의 요소를 발견해내고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어렸을 적 ‘얼레리꼴레리~’하고 놀려대던 아이들의 놀이도, 용에게서 공주를 구하기 위해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야하는 왕자도, 온 국민을 열광케했던 스포츠도, 하다못해 바로크, 로코로 시대를 거쳐서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현대의 패션세계에도, 게다가 그냥 보면 놀이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정치나 법정에까지도 의외로 놀이의 요소는 숨어있는 것이다. 이것이 1938년의 저작인 이 책이 지금도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이다.
 

  여기서 짧은 몇 줄의 글로 <호모 루덴스>의 내용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찌되었건 이 책 또한 한 연구자의 시각이기에 어떤 방면에서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를 이해하는,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놀이’로서 이 책은 충분히 차고 넘친다. 그저 저자의 방대한 지식을 채 따라가지 못하는 내 자신의 우둔함을 탓할 뿐. 많은 인상적인 글귀들 중 한 두 개만 인용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한다.

▷ 규칙을 위반하거나 무시하는 자는 ‘놀이파괴자’이다. 놀이파괴자는 놀이를 잘못하거나 놀이를 속이는 자보다 죄질이 더 무겁다. ……놀이의 세계를 아예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그는 놀이로부터 그 illusion(환상)을 빼앗아 버린다. 
 

▷ 문화의 일반적 문제들을 다루다 보니……여러 분야를 약탈자처럼 침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약탈로 인한 지식의 부족분을 모두 채워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로서는 지금 당장 글을 써 나가느냐, 아니면 그만 두드냐 둘 중 하나였다.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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