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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 동물들의 10가지 의례로 배우는 관계와 공존
케이틀린 오코넬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월
평점 :
얼마 전에 우연한 기회로 동물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학창시절이나 아이들이 어릴 때를 제외하곤 동물원을 갈 일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동물원은 참 오랜만이었다. 겨울이라 사람도 없고 한적한 동물원을 둘러보던 중, 코끼리들의 재미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덩치 큰 코끼리와 몸집 작은 코끼리가 서로 실랑이를 하고 있는 장면. 큰 코끼리가 자꾸 작은 코끼리를 한쪽으로 몰아대고, 작은 코끼리는 기가 죽는 듯 자꾸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짧은 다리로 큰 코끼리한테 나름 대들어도 보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처음에는 둘이 힘자랑 내지는 주도권 다툼을 하는 건가 했는데, 나중에 주위의 설명을 들어보니 모자관계라고 했다. 아들 코끼리가 자꾸 가면 안 되는 곳으로 가니 엄마 코끼리가 말리는 것이라고. 우리 안에 갇혀 사는 코끼리이긴 하지만, 모자간의 관계, 엄마의 잔소리 혹은 자식 훈육시키는 모습은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코끼리도 장례식에 간다>는 동물 사회의 이런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30년 이상 야생 현장에서 코끼리와 함께 지내며 동물을 연구한 동물학자로, 책은 동물들 가까이에서 그들의 사회를 지켜본 학자의 눈을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동물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우리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종종 있는데, 저자는 절대 그렇지 않음을 여러 동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의 주요 연구대상인 코끼리뿐 아니라 침팬지, 오랑우탄, 늑대, 개, 얼룩말, 사자, 고래, 물고기, 곤충 등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동물의 의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사 의례, 집단 의례, 구애 의례, 놀이 의례, 애도 의례, 여행 의례 등 명칭만 놓고 보면 인간 사회에서 한 어린아이가 하나의 어른으로 성장해가면서 겪는 의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동물들 역시 자신들의 집단과 사회 속에서 인간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다시 또 다음 세대로 이어나감을 알 수 있다. 아니다. 인간 또한 동물이기에 ‘동물들 역시’가 아니라 ‘인간도 역시’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 보면, 한 편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 든다. 흩어졌던 코끼리 가족은 고생 끝에 무리를 찾아 돌아온 코끼리를 겹겹이 에워싸고 기쁨의 소리를 지르며 축하하고, 싸우는 건가 싶던 검은 코뿔소는 뿔을 맞대며 인사를 나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코끼리 거북은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매우 부지런하게 느린 속도로’ 야생 토마토를 선물하고, 선물을 받은 회색앵무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었던 새에게 금속 링 선물로 보답을 한다.
무엇보다 동료, 가족을 잃은 동물들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를 지키거나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우울해 하는 모습, 새끼 기린이 한 달밖에 살지 못하고 숨지자 어미기린뿐 아니라 수많은 어른 기린들이 며칠씩 함께 자리를 지키던 모습 등 동물들의 ‘애도 의례’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일 년 전에 세상을 떤 친구 ‘그레그’의 울음소리를 듣고 한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가 두리번거리며 친구 그레그를 찾아다니던 코끼리들의 모습은 마음이 아팠다. 저자가 이전에 코끼리들이 으르렁거릴 때 녹음해두었던 소리를 틀어주자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35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은 결코 얇지는 않지만, 동물들의 울고 웃는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쉽게 읽힌다. 저자의 남편인 팀 로드웰의 실감나는 사진도 책의 재미를 한껏 살려준다. 책 표지의 색감과 디자인도 예뻐서 더 좋았던 것 같다. 평소에 동물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던 사람이라면 더욱 즐겁게 읽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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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