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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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꼭 읽어봐야지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고전들이 있다. 그런 책들이 한두 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잊지 않고 마음에 품고 있다 보면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읽게 되곤 한다. 예전에는 <백경(白鯨)>이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졌던 <모비 딕>도 그중 하나다. 어렸을 때는 대략 거대한 흰고래와 에이해브 선장의 평생을 건 사투를 다룬 해양모험소설 정도로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서 읽는 <모비 딕>은 인생에 대한 고찰 및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서사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치려고 하면 바로 그 가면을 쳐야 하네. 죄수가 감방 벽을 부수지 않으면 어떻게 밖으로 나올 수 있겠나? 나에게는 그 흰고래가 바로 그 벽일세. 아주 가까이 다가선 벽 말이야. 가끔은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해. (p.220)

 

문득 이 날줄은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내 손으로 이 불변의 실 속에 나의 운명을 부지런히 짜 넣고 있는 것이다. (p.283)

 

<모비 딕>은 허먼 멜빌이 1851년에 여섯 번째로 발표한 장편 소설로 허먼 멜빌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의 대표 걸작 중 하나다. 멜빌은 자신의 정서적, 예술적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던 너새니얼 호손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기도 하였다.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난파된 에식스호의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쓰여진 이 작품은 포경선 피쿼드호의 에이해브 선장과 흰머리 향유고래 모비 딕사이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모비 딕에 맞서는 에이해브 선장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 파이가 생각나기도 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폭풍우 속에서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올라탄 소년 파이가 같이 탔던 동물들을 차례로 잃고 호랑이 리차드 파커와 대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호랑이는 파이에게 있어 또 다른 자기 자신, 자기 내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모비 딕 역시 에이해브 선장에게는 그런 의미였겠구나 싶다. 물론 에이해브 선장은 파이와 달리 선주나 선원들과의 관계나 고래에 대한 복수심 등 좀 더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들이 있지만, 그에게 흰 고래 모비 딕역시 자신의 삶 혹은 자신의 내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면에서 <라이프 오프 파이><모비 딕>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파이와 대결과 화해, 서로에 대한 인정을 보여줬던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정글 속으로 사라지며 파이와 이별한다. 이에 비해 에이해브의 작살에 찔린 모비 딕이 바닷속으로 사라지면서 밧줄에 걸린 에이해브 선장도 모비 딕과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모비 딕>에서 인물 내면의 심리 묘사나 화자의 관점 등은 이전의 사실주의 소설과 구분되는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모비 딕>은 멜빌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멜빌 사후 100년이 지난 후에야 크게 주목받는다. 멜빌이 살았던 19세기는 리얼리즘 소설이 주류를 이루었기에, 모더니즘적 성격을 띤 멜빌의 작품이 당시에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은 어쩌면 시대가 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비 딕>은 표면적으로는 해양모험소설의 옷을 입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소설인 동시에 고래학책이기도 하고, 한 권의 철학서 같기도 하다. 책의 두께도 두께지만 내용이 심오해서 한 번의 독서로 다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기도 하다.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보면 또 어떤 숨겨진 의미가 읽힐지 다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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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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