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 박물지 - 인문학과 미학을 넘나드는 이어령의 시선 63
이어령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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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보다 조금 더디 도착한 책. 책이 오기를 기다리던 중에 이어령 선생의 부고를 들었다. 인터넷에 뜬 부고 기사를 읽는 순간 기어이 가시고 말았구나...’하며 뭔지 모를 상실감에 마음 한 자락이 쿵!하면서 착잡해졌다. 아쉽게도 직접 뵐 기회는 없었지만, 이전부터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익숙했던 분. 이전에도 최근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었기에 이별에 대한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던가 보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가 뜻밖의 글귀에 다시 한번 마음이 출렁했다.

내 마지막 동행을 스캔한 영혼의 동반자

독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듯 남겨져 있는 글귀와 흘림체로 쓰여있는 이어령이라는 저자 서명. 원래 연예인이나 유명작가의 싸인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눈앞에서 선생에게 직접 받은 싸인인 듯 한참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그런저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오래전에 쓰신 책이라 2007년에 초판이 나오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터라 전혀 낯선 책은 아닌데도, 이번에는 어쩐지 활자보다는 내용으로, 마음으로 읽은 듯하다.



책은 가나다순으로 해서 갓, 골무, 낫과 호미, , 매듭, 맷돌, 버선, 엽전, 처마, , , 태극, 항아리, 호랑이, 화로 등 듣기만 해도 정겨운 단어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생활상이 바뀌며 일상에서 사용이 많이 줄어든 물건들도 있지만 가위, , 바구니, 보자기, 부채, 수저, 이불과 방석, 풍경, 한글 등 여전히 우리 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도 있다. ‘한국인의 마음을 그려낸 별자리라는 저자의 서문처럼 단어 하나하나가 별빛처럼 반짝거리며 쏟아지는 느낌이다.

 

단어를 듣고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정겹고 따뜻해지는 단어들인데, 선생은 그 속에 들어있는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찾아내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일정한 곳에 계속 깔아놓는 서양의 융단과 달리 용도와 장소에 따라 하늘을 나는 융단으로 변모하는 돗자리’, 누워있는 악기 거문고’, 자기를 향한 칼날 낫과 호미를 보면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극명하게 대비되기도 하고, 상대를 향한 공격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겸손을 우선시했던 한국인의 의식을 깨닫게 된다. 전혀 별개일 듯한 화장대장독대가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는 것도 재미있다. 책을 읽다보면 물건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조상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기도 하고, 그것을 예리하게 찾아낸 선생의 눈썰미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책에 소개된 사물들은 한국 사람이라면 흔히 보고 사용했을 어쩌면 흔할 수도 있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한국인의 의식과 무의식, 삶의 지혜를 알고 나면 그런 문화유전자가 내 안에도 들어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옛것을 다시 읽는 독서의 기쁨과 자유를 위하여, 문화의 암호문을 해독하려는 지혜와 노력을 위하여, 그리고 사물의 시학을 통해서 한국인의 마음이나 그 영상의 차이를 찾으려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작은 책을 바친다.

 

선생의 이러한 말씀은 남은 후학들에게 밝은 눈과 맑은 영혼을 일깨우기 위한 가르침이 아닐까. 사회의 큰 어른이 그리운 시대. 더 오래 계셔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한 장 한 장 곱씹어가며 다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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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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