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미셸 딘 지음, 김승욱 옮김 / 마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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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불친절한 책이다. 글 하나만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낸 유명한 작가들을 다룬 책인데 작가의 성만으로는 언뜻 그의 full name과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다. 보통은 헤세, 오웰, 헤밍웨이, 벤야민, 샐린저 등 성만 들어도 작가의 풀네임과 작품이 거의 동시에 떠올려지는데 말이다. 기껏해야 떠올릴 수 있는 작가는 한나 아렌트와 수잔 손택 정도? 목차에는 작가 이름이 나와 있겠거니 하고 목차를 봤는데, 또 한 번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 목차에도 역시 작가의 성만 나와 있을 뿐 그가 누구인지, 무슨 작품을 썼는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참 난감하다.

   

 

난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도 궁금해진 이 책을 받아보니, 표지에는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깐깐한 여인이 독자를 응시하고 있다. 이 책은 그렇게 표지와 목차에서부터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그 불편함은 글로 세상을 호령한책 속의 그녀들이 살아온 세계가 가졌던 불편함이기도 하다. 남성 작가의 경우, 성만으로도 통용이 되지만 여성에게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불편함 말이다. 같은 직업임에도 굳이 여류 작가, 여류 화가, 여교사, 여교수, 여사장 하는 식의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행히 최근에 와서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첫 장을 펴는데 “‘넌 너무 머리가 좋아서 탈이야.’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알게 모르게 이런 말을 들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울컥하면서 확 와닿는 말이다. 아마도 이 책에서 다뤄진 작가들 역시 그런 편견 아닌 편견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간 사람들일 것이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인 미셸 딘이 오로지 자신의 글과 지성으로 20세기 문화의 중심지 뉴욕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간 작가 12명에 대해 쓴 책이다. 책에 다뤄진 작가 모두의 공통점은 여성이라는 점이지만, 그것은 단지 성별일 뿐 이 책은 오로지 작가와 글에 대한 부분에만 주목한다. , 잊을 수 없는 글을 쓰는 재주를 지닌 작가라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다. 이 책에서 다뤄진 작가들은 흔히들 떠올릴 수 있는 손택, 아렌트 외에도 파커, 웨스트, 매카시, 케일, 디디언, 애프런, 애들러, 맬컴 등이다. 시인으로, 작가로, 칼럼니스트나 영화 비평가로, 그들 각자는 자신의 영역에서 오로지 글로써 승부한 작가들이다.

 

이 책은 이제 핀 조명을 끄고 무대 전체의 조명을 켜는것으로 앞서 말한 작가들을 우리 앞에 등장시킨다. 12명의 작가에 대한 글 속에는 우리가 여전히 성만 들어도 아는 학자와 작가들이 다수 등장한다. 모두 이 책의 주인공들과 동시대에 직간접적으로 교류하고, 사유하고, 토론하며 자신의 지성을 각자의 글로 표현했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글과 지성으로는 대등하거나 혹은 더 우월한 작가들이었으나 이제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은, 핀 조명에 가려져 부각되지 않았던 탓이다.

    

저자는 12명의 작가에 대해 감탄하거나 열광하며 띄워주거나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자료와 전기에 남아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듯이 객관적인 말투로 서술할 뿐이다. 말 그대로 또 다른 핀 조명을 켜는 것이 아니라 무대 전체의 조명을 밝힐 뿐이다. 그런 저자의 서술은 그래서 침착하고 객관적으로 읽힌다.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중요한 작품을 남겼기에이들을 다룬다는 저자의 의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만약 저자가 책 속의 작가들을 여성 작가로서 다뤘다거나, 단점까지도 감싸고 덮어주는 팬심(?) 같은 시각에서 글을 썼다면, 이 책은 실패했을 것이다. 있는 자료와 팩트를 바탕으로 공과를 모두 서술해서 그 작가에 대해 더 잘 알게 하는 것이 그 인물을 더 제대로 알리고 널리 사랑받게 하는 지름길임을 저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제대로 평가된 작가여야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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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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