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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평점 :
걷기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주로 언제 걷느냐’고.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내 대답은 ‘기분 좋을 때, 기분 안 좋을 때, 생각할 것이 많을 때’였다. 그 대답은 지금도 같지만, 지금은 거기에 ‘아무 이유 없이’라는 말도 덧붙여져야 할 것 같다. 건강을 위해서는 달리기나 속보가 더 좋지만, 그보다는 ‘소요유(逍遙遊)’라는 말처럼 혼자 노닐 듯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와 함께 걸어도 좋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걸음 가는 대로 걷기에는 혼자가 좋다. 그렇게 한참 걷다 보면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못 보던 것들이 보이고, 걷는 자체에 집중하게 되면서 머릿속이 단순해진다. 한동안 걷고 나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이 산책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혼자 걷는 산책의 여유로움이 여자들에게 허용(!)된 것은 이제 겨우 백 년 남짓한 일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여자 혼자 거리에 나서는 것은 말 그대로 ‘거리의 여자’가 대부분이었고, 그녀들조차 어디든 걸어 다녀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구역의 거리에 나와 있는 정도만 허용되었다. 19세기 말 이전까지 여성이 혼자 거리에 나간다는 것은 평판과 정숙함에 오명을 쓸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으며, 상류층 여성 역시 ‘지붕이 없는’ 마차를 타고 숲을 돌아다니거나 보호자와 함께 공원 산책을 하는 정도만 허락되었다 한다.
러시아 귀족이었던 마리 바시키르체프. 그녀는 그림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반 만에 파리 살롱에 작품을 전시할 정도로 재능을 지녔었지만 25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녀는 1879년 1월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혼자 집 밖에 나갈 자유를 갈망한다. 가고, 오고, 튀일리 정원 벤치에 앉고, 무엇보다도 뤽상부르에 가서 상점마다 장식된 진열창을 구경하고 교회와 박물관에 들어가고 저녁에는 오래된 거리를 배회하고 싶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게 그거다. 이런 자유가 없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걷고, 구경하고, 배회하는 일들이 19세기 이전까지는 (여성들에게만) 금지된 행동이었다니! 이런 시대 배경을 알고 나니 그 찬란한 르네상스 시대에 ‘왜 유명한 여성 화가는 없을까’에 대한 질문의 답도 어느 정도는 짐작이 된다. 이런 금기가 깨진 것은 1차대전 동안 여성이 노동시장에 대규모로 유입된 이후의 일이다. 그러면서 반(半) 공공장소인 카페 등에 여성용 화장실이 생기고, 독신 여성이 쓸 수 있는 하숙집도 비로소 등장한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저자인 로런 앨킨은 스스로를 ‘플라뇌즈 flâneuse(산책하는 여자)’라고 부른다. ‘거닐다, 산책하다’라는 프랑스어 동사 flâner에서 파생된 플라뇌르 flânuer는 ‘한가롭게 거니는(사람), 빈둥대는(사람)’이라는 뜻의 형용사, 명사로 쓰인다. 그런데 플라뇌르가 여성형이 되면 ‘침대형 의자’라는 뜻만 있을 뿐이다. ‘혼자 산책하는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때라 그에 해당하는 단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산책하는 여성이라는 뜻의 ‘flânuese’는 현재도 웹이나 위키사전에만 있는 가상의 정의다.
플라뇌즈인 로런은 뉴욕, 파리, 런던, 베네치아, 도쿄 같은 도시를 거닐며 자신보다 앞서 걸었던 진 리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소피 칼 등을 자주 떠올린다. 그녀의 산책길을 따라 걷는 동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다시 읽히기도 했고, 소피 칼이나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도 떠올랐으며, 나 역시 그녀처럼 도시 구석구석을 걸었던 파리나 도쿄 등의 풍경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녀는 인용한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책이나 주소를 이용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게 아니라 걸어서, 눈으로 보아서, 습관으로, 경험으로 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끝으로 사족 몇 가지. 저자는 루스 오킨의 유명한 사진을 예로 들며 ‘20세기 중반 거리 성희롱 장면’이라고 했는데,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이 사진은 ‘남자 혼자는 여자들 사이를 못 지나가도, 여자는 남자들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는 속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슬며시 웃음이 지어진다. 사진의 주인공인 모델 크레이그 역시 사진가 루스 오킨과 둘이 도시에서 장난치듯 놀며 찍은 사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하나는 걷는 행위와 관련하여 역자는 계속 ‘산보, 산보하는 사람’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일본식 한자어인 산보(散步)보다는 산책(散策)이란 말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지금 우리가 혼자 걷고, 벤치에 앉고, 상점 진열장을 구경하고, 박물관에 가고, 오래된 거리를 배회하는 일은 19세기의 여성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다. 그 자유로움에 감사하며 더 자주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