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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평점 :
어렸을 때 무심코 읽었거나 알고 있던 사실들이 어른이 된 뒤에야 새삼 이해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마녀사냥’ 같은 것들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마녀사냥은 기독교가 절대권력화되었던 중세시대에 이교도를 박해하는 수단이었고, 억눌린 민중들의 불만을 해소하고자 희생양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악습이었다. 15세기초부터 18세기까지 이어진 마녀사냥을 통해 희생된 여성들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를 읽으며 갑자기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된 건 ‘얼마나 많은 재능있는 여성들이 마녀사냥이란 이름으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갔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녀로 희생된 여성들 대부분은 부유한 과부들이나 무신론적 지식을 가진 미혼 여성들이 많았고, 이들 대부분은 마녀재판에서 증언해줄 가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의 시각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재능있고, 똑똑하고, 예술적인 감각이 있고,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 ‘마녀’라는 억지굴레를 씌워 희생의 제물로 삼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문학, 예술,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선구적으로 활동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녀들 대부분이 남성 위주로 구성된 기존 사회에 파문과 반향을 일으키며 힘겹게 활동한 경우가 많다. 남성의 전유물이던 대학에 입학하거나 학술원 회원이 되거나 할 때도, 기득권 세력인 남성들은 그녀의 전문성을 논하기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공부하기를 꺼려했다는 경우들이 꽤 많다. 편견과 차별 가득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이 작품활동을 하고, 작가로서 인정을 받기란 얼마나 어려웠을지….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들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미술사에 이름을 남길 수조차 없었던 여성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일 씨앗에 정교한 조각을 했던 프로페르치아 데 로사, 네델란드 정물화의 개척자였떤 클라라 페테르스, 직물 디자인을 예술로 승화시켰떤 안나 마리아 가스웨이트, 과학자의 눈과 예술적 감성을 모두 갖추고 다윈이나 월리스보다 훨씬 앞서 열대지역의 곤충을 채집하고 연구 관찰했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등. 모두 이제껏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독보적이고 전문적인 예술성까지 모두 갖춘 여성화가들이다.

이 책에는 ‘여성화가’라는 굴레에 갇혀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이 다양하게 실려있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 우리가 기존의 미술사에서 익히 알고 있는 유명화가들의 작품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거나 혹은 더 독창적인 작품들도 많이 보인다. 이렇게 좋은 작품과 작가들이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이 책은 ‘왜 유명한 여성화가는 없을까?’라는 질문에 대답과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 위주의 진행되어온 사회적, 역사적인 배경에 있을 것이다. 그런 억압된 사회 속에서도 자신의 작품 세계를 꾸준히 만들어갔던 여성들의 작품을 보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