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 인류의 생존을 이끈 선택과 협력의 연대기
앨리스 로버트 지음, 김명주 옮김 / 푸른숲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초등학교 때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의 전기를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까지는 주로 역사, 문화적인 인물에 대한 위인전을 읽었는데, 우연히 멘델의 전기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DNA니, 유전이니, 자연선택이니 하는 생소한 용어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그때까지 그냥 한 종류로만 알고 있던 ‘완두콩’이 사실은 엄청난 형질 경쟁과 교배를 통해 자연선택을 해 온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이었다. 그 뒤로 중학생이 되어 생물 시간에 유전 관련 내용이 나오자 얼마나 재미있고, 반갑던지. 문과면서도 생물, 화학이 재미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다.
서론이 좀 길었지만, 이 책은 어떤 면으로는 앞서 말한 책들의 어른 버전 같기도 하다. 위인전과는 전혀 거리가 먼 책이지만, 인류와 지구상의 생물들이 종족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발전하고, 적응해 왔는지를 ‘길들임’이라는 공통된 화두를 통해 얘기하고 있다. ‘길들임’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와 장미 사이의 교감 정도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길들임은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책에서의 ‘길들임’은 때로는 상대방과의 교감이나 공생이거나 혹은 생존 본능에 따른 번식과 진화를 위한 자기 자신의 변형 등 여러 가지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개는 인간이 야생 늑대를 길들여서 지금의 개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길들였다기보다는 각자의 이해 관계 내지 필요에 의해서 서로를 길들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계, 탐색, 적응을 통한 오랜 길들임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서 늑대 무리 중에 조금 더 호의적이거나 호기심이 많은 특성을 지닌 개체가 결국 어느 순간에 늑대가 아닌 ‘개’로 분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 사과의 경우에는 자손을 더 멀리 퍼뜨리기 위해 인간이나 동물 같은 ‘발 달린 존재’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과는 그런 ‘이동 수단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자신의 형태나 크기, 냄새 등을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변형시키도록 스스로를 ‘길들인다.’ 인류의 ‘길들임의 역사’는 사과나 개처럼 몇 줄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를 얘기하기 위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은 ① 개, 소, 말, 닭 같은 인류 생활에 중요한 동물들과 ② 밀, 옥수수, 감자, 쌀 같은 생존에 필요한 곡식들 ③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우리들 자신, 바로 인류다. 이들은 ‘인류 자신’까지 모두 포함해서 ‘인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들이다. 또한 자기 종족(개체)의 생존과 번성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길들여온 주체이자 객체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 번에 전부 이해하기는 어렵기도 하고, 읽기에도 나름의 인내심이 필요한 책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구에 같이 살고 있는 존재들 그리고 인류의 진화 역사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