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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닐 때 우리는 무엇이 되기도 한다
김인자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3월
평점 :
어떤 책은 읽으며 내용 자체에 집중이 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책을 읽다가 종종 상념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전자는 책 자체에 몰입이 되어 좋고, 후자는 행간 사이사이에 쉬어가며 내 상황이나 생각으로 치환할 수 있어 좋다. 책을 통해 같거나 혹은 다른 생각으로 확장될 수 있는 행간의 여유. 김인자의 책은 후자에 속한다.
저자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세계 각지를 여행한 저자는 대관령에 정착하여 십 수 년째 살고 있는데,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겨울 풍경 사진과 함께 들려주고 있었다. 그니의 글을 읽으며 겨울의 맑은 공기가 느껴져서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번 책 <아무 것도 아닐 때 우리는 무엇이 되기도 한다>에서는 숲의 냄새가 난다. 4부로 나뉘어진 책에서 저자는 초록색 가득한 숲, 겨울이 지나간 뒤의 휑한 숲, 야생화가 귀엽게 피어나는 숲길을 걸으며 독백을 하듯 조곤조곤 속삭인다.
- 아무 것도 아닐 때 우리는 무엇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 그렇다.
- 상처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우울한 선물이다.
- 저 굵은 전나무 옹이도 시작은 작은 상처였을 것이다.
책에는 ‘그대, 그 분, 우리’에 대한 언급도 여러 번 나오지만 느낌상으로는 그녀 혼자 오롯이 걷는 듯하다. 하지만 외롭거나 고독한 느낌이 아니라 홀로 있어 충만한 시간을 흠뻑 누리는 그런 느낌. 그리고 내면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어 좋은 혼자만의 숲길을 산책하는 느낌이다.
책은 숲을 주제로 한 에세이지만 읽다 보면 언뜻언뜻 아포리즘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랜 시간 글과 여행으로 다져진 저자의 깊은 사유와 철학이 곳곳에서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몇 줄 읽다가 잠시 나만의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쉬었다가 다시 읽곤 했다. 휘리릭 빨리 읽히는 책들도 있지만 아마도 이 책은 숲의 풍경을 떠올리며, 천천히 숲길을 산책하듯 음미하며 읽는 게 어울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