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0일 목요일

제목 : 18(일~팔)

 입 밖으로 욕을 뱉어본 적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있었을까? 그리 많지 않다. 욕할 일이 없었으니. 속으로도 욕을 해본 적이 거의 없건만, 요즘엔 혀끝에서 맴도는 욕들을 삼켜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 때도 있다. 한 땐 머리 속에 욕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불량스럽게 느꼈는데 이젠 많이 익숙해졌다.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난 수없이 18 18 18 18 18을 속으로 되뇌였다. 이 18. 이 18. 어휴. 시원스레 상대편 면상에 침을 튀기며 18 18 18 18 하지 못하고 마냥 삼키기만 했더니 소화가 되질 않고 속이 좋지 않다. 이 18~

 기분이 드럽다. 어휴~ 구토가 날 것 같다. 이 18~ 왜 그 자리를 뜨지 못했을까? 왜 불편한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했을까? 난 수없이 나 자신에게 18 18 18 18을 퍼부었다. 함께 술을 마셨던 사람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낯설기만 했다. 홀로 이방인처럼 그곳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이 18~

  농락당한 기분이다.  자기들이나 실컷 즐기시지 왜 나까지? 술을 즐기지도 않고 집에도 꼬박꼬박 늦지 않게 들어가야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는 나 라는 아이를 알면서 그네들은 왜 나와의 술자리를 만든걸까? 기분이 진짜 드럽다. 에이씨~18..

 한도 끝도 없이 나오는구나. 18 18 18 18 18  이젠 무뎌지는 기분이다. 누군가 나에게 18 이라고 욕을 해도 그리 요란할 것 같지 않다. 예전에 윤선생님께서 그러셨지. 욕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기가 욕을 먹었을 때 요란하지 않다고... 요란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 경계임을 알고 그 요란한 마음 챙겨 공부할 수 있는거라고. 그래. 맞는 말이지.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탔으면 700원만으로 집에 갈 수 있었는데, 민기적 거리다 버스를 타지 못했다. 자그마치 2400원, 버스비의 3배가 넘는 돈을 들여 집에 왔다. 택시를 탈 생각도 없었는데.... 살방살방 걸어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동생이 이미 정차해있는 택시 문을 열고 타라는 듯이 서 있었다. 대충 인사하고 급히 떠나는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져서 순간 혼란스러웠다.

 낡은 카세트 테잎처럼 질~ 질~ 민기적거리던 시간은 가고, 총알처럼 귀가 시간이 돌아왔다.

 그래도 기쁘지 않다.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내내 18 18 18 18 18 다시는... 다시는... 하고 다짐했다. 예전 어느 날의 다짐처럼. 그때도 다시는 이런 술자리엔 가지 않으리 다짐했건만, 어느새 잊어버리고 난 그런 술자리에 동석한 것이다. 에이씨~ 누구를 탓하리요. 마음을 놓고 있던 나의 탓이지~ 에이씨~

 500cc 두잔 마신 것이 고작이건만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자꾸만 구토가 쏠린다. 에이씨~ 18~  술을 즐기지 않는 그 사람을 닮아가는걸까? 몸과 마음이 하나로 뭉쳐 술을 거부한다. 또한 술과 함께인 소중한 인연까지도....

 에이씨... 몰라........................................... 갈테면 가라지 뭐! 18 18 18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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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19일 수요일

제목 : 신호

 어제는 오돌토돌한 작은 물집 같은 것이 입 가에 보기 흉하게 자리를 잡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때면 신호탄처럼  나타나서는 한동안 미운 얼굴을 더 밉게 만들곤 한다. 그리 피곤하다고 느끼진 않았는데, 몸은 피곤했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 몸무게가 이리 많았던가 의심이 들 정도로 몸이 무겁다. 정신은 말짱한테 몸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자꾸만 아래로 쳐진다.

  신체에 드러나는 이상징후는  더이상 오버하지 말고 쉬라는 몸이 보내는 신호라고 한다. 오늘은 어떻게 할까? 이 신호를 받아들여 집에 가서 쉬는 것이 좋을까? 아님 수요공부방으로 직진할까? 망설여진다.

  한동안 착실하게 참석했으니 이번 한 번 빠져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 있구나. 몸을 핑계 삼아 빠질까? 하는 마음이 있다가도, 공부방 결석할 정도는 아닌데 하면서 마음을 접으려고도 하는구나.

 공부방에 가는 대신 헬스장 가서 비오듯 땀 흘리며 운동하고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다는 마음 간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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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18일 화요일

제목 : 상실

  무기력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해야할 일이 있지만 하기 싫다. 마음이 없다. 없는 것이 아니겠지.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지.  습관처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된 기분이다. 무거운 공기가 가슴팍을 짓누르고 있다. 숨 쉬기가 곤란하다. 규칙적으로 크게 한숨을 쉬어주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체된 듯한 이 기분을 견딜수가 없다. 가끔씩 이런 때가 예고도 없이 엄습해온다. 이젠 무뎌질때도 되었건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나 혼자만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고속의 시대에 아직 출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출발점이 어디인지도 종착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니 갑갑할 노릇이다.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처럼 지금 난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갖추어져 있지만 동시에 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바람이 부는대로 수동적으로만 움직이는 풍향계처럼 휩쓸리고 있다. 도대체 난 어디에 있는가? 난 나를 잃어버렸다. 모르겠다. 내가 진정으로 나였던 순간이 있었던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수많은 질문 공세가 쏟아지지만 질문은 오로지 하나다.

  "난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때론, 이 중차대한 의문 하나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들의 속편한 고민으로만 느껴진다. 등 따시고 배부르니 할 수 있는 고민이랄까?

 한 할머니를 뵙게 될 때면 이런 생각은  순식간에 둔탁한 온 신경에 예리한 표창처럼 와서 꽂힌다.

 그 할머니를 보게 된 그 어느날의 충격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타고 있던 차가 도로위에 멈춘다. 몇 미터 전방에 냉장고 한 대가 중앙선에 가로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의아한 눈으로 냉장고 주변을 살피다 한 할머니를 발견했다. 할머니 키만한 냉장고를 좌우 균형을 맞추어 정 중앙부분에서 둥글게 밧줄을 묶고 있었다. 냉장고를 달랑 들었을 때 잠깐 동안은 좌우로 휘청이다 금새 균형을 잡을 것 처럼 정중앙에 묶인것 같았다.   밧줄에 묶인 냉장고의 모습이 짚세기에 가지런히 엮여있는 조기를 떠올리게 했다. 도대체 할머니는 당신 몸체만한 냉장고를 어쩌시려고 하는걸까? 라는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리라. 앞에 멈춰선 차를 보시곤 할머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겹게... 혼자가 아니라 밧줄에 댕강 몸이 묶인 냉장고와 함께라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다. 할머니 몸에 힘없이 붙어 있는 힘줄이 금새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힘겨운 삶이구나. 할머니는 그 냉장고를 고물상에게 가져가는 것이다. 이렇게 힘겨운 노동에 대한 대가가 얼마일까를 생각하니 나 자신이 한심하기 조차 하다.

  힘겨운 삶이구나. 머리엔 흰서리가 내린지 이미 오래인 듯 하나 얼굴은 아직 할머니란 호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바싹 마른 몸이 나로 하여금 고개를 돌리게 한다. 힘겨운 삶이구나.

  하루하루가 힘겨운 전쟁인 사람들이 있다. 있다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일 것이다.  그들에게 자아성찰 이란 말은 배부른 자들의 콧노래 쯤으로 들릴 것 같다. 불공평한 세상이구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상하게도 난 더 깊은 무기력 속으로 빠져든다. 도대체 난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원론적인 질문만 되뇌일 뿐이다.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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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15일 토요일

제목 : 마네킹

 지하철 문이 열리고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선다. 토요일이라 평일에 비해선 사람들이 적다. 의자는 다 차고 몇 명은 서 있을 정도로 한산하다.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선다.

 안경을 벗어 통에다 안전하게 넣어둔다. 양쪽 다리를 어깨 넓이만큼 벌리고 양 발은 11자 모양이 되게 잡는다. 양 발 안쪽에 힘을 싣고 허리를 곧추 세운다.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면서 안정적인 자세가 된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바닥 바깥쪽에 힘들 싣고 걷는다.  신발 밑창의 양쪽 끝이  심하게 닳아 없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런데다 난 8자로 걷기 까지 한다. 이런 모습을 고쳐보려고  친구에게 전수받은 비법이다. 조금 과장됐군. 비법이라기엔 무리가 있는 듯 하군.  

   발바닥 안쪽에만 힘을 주면서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균형을 잡는다. 벌리고 있는 폭이 좁아서 자칫 잘못하면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 넘어진 적은 없군. 운동 신경이 좋으니... 자화자찬.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하얀 블라우스를 입혀 놓은 마네킹 처럼 보인다. 안경을 벗으면 사물의 형체가 뚜렷하지 않다. 화선지에 그려진 그림처럼 외곽선이 번진듯 희미할 뿐이다.

 마네킹이라...... 여러가지 단상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난 마네킹처럼 수동적이지. 내 의식은 온통 독립된, 능동적인 인간이기를 간절히 바라오나, 세상은 나에게 수동적인 복종만을 강요하는구나.

 세상으로부터... 정확히 표현하자면,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도피하고 싶구나. 자꾸만 지금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 나를 옭아메는 것은 세상의 시선 따위가 아니라 바로 나 라는 것을 알기에........ 알고 있었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 나 라는 상에 맞지 않으니 자책하고 힘들어 했던 것이지. 인정하는 공부를 하자. 일단은 인정하는 것 부터 공부하자. 그러면 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겠지.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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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15일 토요일

제목 : 안경을 벗고

  요즘처럼 안경 끼기 싫었던 적이 있었을까? 렌즈를 껴봤기 때문일까?

 렌즈를 끼고 봐라본 내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변신을 한 듯한 느낌.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이것이 본래 내 모습이지.

 안경을 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안경 너머 나의 진실된 모습을 모두 가려버리는 것 같아서.

 가끔 출근길에 안경을 벗고 움직인다. 오늘도 역시. 지하철 안에서 안경을 벗은 채 서 있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희미한 형체가 보인다. 시력이 많이 떨어졌구나... 안경을 벗으면 많은 것들이 그저 희미한 형체.... 그저 그곳에 있는 어떤 것으로만 다가온다. 그럴때면 마음이 심란해지곤 한다.

 커다란 행복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   

 안경을 벗고 바라본 세상은 얇은 회색빛 커튼이 쳐진 하나의 방처럼 느껴진다. 회색빛으로 물든 공간에 존재하는 건 오직 나 뿐이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을 때면 이와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음악 소리가 클수록 난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타인의 시선따위에 신경쓸 필요 없게 된다.

 안경을 벗고는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지만.,그래서 화가 났지만. 오늘은 안경을 끼고 있는 상황이 감사하다 생각된다. 안경이 필요없는 사람들은 전혀 느껴보지 못하는 상황을 나는 체험할 수 있으니.

 안경을 끼고  바라본 세상에서  나 라는 존재는 전체 속에 매몰된 하나의 미물에 지나지 않지만, 안경을 벗으면 세상은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세상은  그림자처럼 옅게 존재할 뿐이다.     

 안경을 벗고 바라본 세계에는 차별이 없다. 모든 것이 그저 '그곳에 있는 것'으로만 표현된다. 내 앞에 앉은 여성의 다리가 이쁘다 혹은 옆에 서 있는 남자가 잘 생겼다 같은 차이를 알지 못한다.  사람이 있구나., 혹은 여자구나, 남자구나 정도로만 표현할 수 있다.

 안경을 벗어버리고 싶다. 내 콧등에 놓인 안경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인정하는 것을 방해하는 마음의 안경(我像)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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