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18일 화요일

제목 : 상실

  무기력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해야할 일이 있지만 하기 싫다. 마음이 없다. 없는 것이 아니겠지.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지.  습관처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된 기분이다. 무거운 공기가 가슴팍을 짓누르고 있다. 숨 쉬기가 곤란하다. 규칙적으로 크게 한숨을 쉬어주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체된 듯한 이 기분을 견딜수가 없다. 가끔씩 이런 때가 예고도 없이 엄습해온다. 이젠 무뎌질때도 되었건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나 혼자만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고속의 시대에 아직 출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출발점이 어디인지도 종착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니 갑갑할 노릇이다.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처럼 지금 난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갖추어져 있지만 동시에 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바람이 부는대로 수동적으로만 움직이는 풍향계처럼 휩쓸리고 있다. 도대체 난 어디에 있는가? 난 나를 잃어버렸다. 모르겠다. 내가 진정으로 나였던 순간이 있었던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수많은 질문 공세가 쏟아지지만 질문은 오로지 하나다.

  "난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때론, 이 중차대한 의문 하나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들의 속편한 고민으로만 느껴진다. 등 따시고 배부르니 할 수 있는 고민이랄까?

 한 할머니를 뵙게 될 때면 이런 생각은  순식간에 둔탁한 온 신경에 예리한 표창처럼 와서 꽂힌다.

 그 할머니를 보게 된 그 어느날의 충격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타고 있던 차가 도로위에 멈춘다. 몇 미터 전방에 냉장고 한 대가 중앙선에 가로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의아한 눈으로 냉장고 주변을 살피다 한 할머니를 발견했다. 할머니 키만한 냉장고를 좌우 균형을 맞추어 정 중앙부분에서 둥글게 밧줄을 묶고 있었다. 냉장고를 달랑 들었을 때 잠깐 동안은 좌우로 휘청이다 금새 균형을 잡을 것 처럼 정중앙에 묶인것 같았다.   밧줄에 묶인 냉장고의 모습이 짚세기에 가지런히 엮여있는 조기를 떠올리게 했다. 도대체 할머니는 당신 몸체만한 냉장고를 어쩌시려고 하는걸까? 라는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리라. 앞에 멈춰선 차를 보시곤 할머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겹게... 혼자가 아니라 밧줄에 댕강 몸이 묶인 냉장고와 함께라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다. 할머니 몸에 힘없이 붙어 있는 힘줄이 금새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힘겨운 삶이구나. 할머니는 그 냉장고를 고물상에게 가져가는 것이다. 이렇게 힘겨운 노동에 대한 대가가 얼마일까를 생각하니 나 자신이 한심하기 조차 하다.

  힘겨운 삶이구나. 머리엔 흰서리가 내린지 이미 오래인 듯 하나 얼굴은 아직 할머니란 호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바싹 마른 몸이 나로 하여금 고개를 돌리게 한다. 힘겨운 삶이구나.

  하루하루가 힘겨운 전쟁인 사람들이 있다. 있다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일 것이다.  그들에게 자아성찰 이란 말은 배부른 자들의 콧노래 쯤으로 들릴 것 같다. 불공평한 세상이구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상하게도 난 더 깊은 무기력 속으로 빠져든다. 도대체 난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원론적인 질문만 되뇌일 뿐이다.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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