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의 소녀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
티에리 르냉 지음, 조현실 옮김 / 비룡소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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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온이 몇 도만 더 내려가면, 사람들까지도 영원히 얼어버릴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각자의 삶은 바로 그 순간에 느끼는 행복이나 고통의 덩어리로 굳어버리지 않을까.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그것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을 것이다." (책 57쪽에서)

  운하가 꽁꽁 얼어버렸다. 사람들은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다.  이곳에 갇힌 것이다. 언젠가는 운하가 녹고 사람들은 이 도시를 벗어날 수 있겠지만, 상처에 갇힌 사람들은 그것과의 대면이 두려워 기억 저편 깊숙히 봉인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 상처가 이미 어둡고 음침한 감옥이되어 자신의 삶을 가두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 책은 성추행 문제를 다루고 있다. 11살 소녀 사라는 지금 성추행을 당하고 있고, 사라의 담임 선생은 20년 전에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사라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담임 선생은 사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는 사이 잊어버린 줄 알았던 20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담임 선생이 20년 전 자신이 겪은 일을 회상하면서 사라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주제로 한 책은 지끔껏 기피해왔기 때문에 이 책이 다른 책에 비해 어떤 점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성추행 당하는 소녀의 심리나 행동을 조심스러우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단순히 '니 잘못이 아니야'라고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라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여 사라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는 '쾌감'의 문제까지를 짚어주고 있다. 성추행 당한 소녀들의 내면 깊숙히 파고든 상처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치유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사라의 행동에서 2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단서를 통해 사라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알아내는 과정은 몇 개의 단서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가는 탐정 수사 같은 느낌을 준다. 독자는 담임 선생이 찾아내는 단서를 통해 사라와 담임 선생의 심리뿐만 아니라 성추행 당한 소녀들의 절망적인 심리까지 알게 된다.

이 책은 여러 번 읽을 수록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아지고,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책이다. 함축적인 문장이 많아서 반복해서 읽을 수록 각각 떠다니던 의미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을 참 잘 쓰는 작가인 것 같다. 치밀하게 짜놓은 구조 속에서  마음껏 상상하고, 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여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은 것 같은 느낌..... 확실하게 정의내릴 순 없지만.... 내 스타일의 책이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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