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15일 토요일

제목 : 안경을 벗고

  요즘처럼 안경 끼기 싫었던 적이 있었을까? 렌즈를 껴봤기 때문일까?

 렌즈를 끼고 봐라본 내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변신을 한 듯한 느낌. 내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이것이 본래 내 모습이지.

 안경을 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안경 너머 나의 진실된 모습을 모두 가려버리는 것 같아서.

 가끔 출근길에 안경을 벗고 움직인다. 오늘도 역시. 지하철 안에서 안경을 벗은 채 서 있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희미한 형체가 보인다. 시력이 많이 떨어졌구나... 안경을 벗으면 많은 것들이 그저 희미한 형체.... 그저 그곳에 있는 어떤 것으로만 다가온다. 그럴때면 마음이 심란해지곤 한다.

 커다란 행복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   

 안경을 벗고 바라본 세상은 얇은 회색빛 커튼이 쳐진 하나의 방처럼 느껴진다. 회색빛으로 물든 공간에 존재하는 건 오직 나 뿐이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을 때면 이와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음악 소리가 클수록 난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타인의 시선따위에 신경쓸 필요 없게 된다.

 안경을 벗고는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지만.,그래서 화가 났지만. 오늘은 안경을 끼고 있는 상황이 감사하다 생각된다. 안경이 필요없는 사람들은 전혀 느껴보지 못하는 상황을 나는 체험할 수 있으니.

 안경을 끼고  바라본 세상에서  나 라는 존재는 전체 속에 매몰된 하나의 미물에 지나지 않지만, 안경을 벗으면 세상은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세상은  그림자처럼 옅게 존재할 뿐이다.     

 안경을 벗고 바라본 세계에는 차별이 없다. 모든 것이 그저 '그곳에 있는 것'으로만 표현된다. 내 앞에 앉은 여성의 다리가 이쁘다 혹은 옆에 서 있는 남자가 잘 생겼다 같은 차이를 알지 못한다.  사람이 있구나., 혹은 여자구나, 남자구나 정도로만 표현할 수 있다.

 안경을 벗어버리고 싶다. 내 콧등에 놓인 안경뿐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인정하는 것을 방해하는 마음의 안경(我像)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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