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프니 듀 모리에 - 지금 쳐다보지 마 외 8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0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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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치콕 영화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다. 영화를 좀 본다는 아이들은 히치콕의 어떤 작품이 좋다느니 하면서 떠들었다. 누군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도 히치콕만 한 것이 없었다. 그런 히치콕 감독의 뮤즈가 ‘대프니 듀 모리에’인지는 몰랐다.

 

 현대문학에서 출간한 『대프니 듀 모리에 단편선』에는 총 9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다. 귀신이나 살인마가 상황을 옥죄어 오는 것도 아닌데 책을 읽는 내내 자못 긴장된다. 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감상하며 정교한 복선과 설정을 따라가다 만나는 반전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글은 온 감각을 자극하는데 이러한 감각의 자극 이야말로 영화에 안성맞춤이니 어떤 감독이라도 영화화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작품들은 현재까지 50여 차례나 영화 혹은 드라마로 옮겨졌다고 하니 아마도 보는 눈은 모두 비슷한가 보다.

앞으로 마주할 시간도 1이라는 숫자처럼 티 없이 깔끔해야 했다. 무엇 하나 지저분해서는 안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

수술 후 몇 주가 흐르는 동안 특별한 신체적 고통은 없었으나 암흑 속에서 주변 세상과 삶이 자기만 빼놓고 흘러가는 느낌이 낯설었다. <푸른 렌즈>

한 시대의 신성모독이 다음 시대에는 거룩한 말씀이 되고 오늘의 이단이 내일의 교리가 되는 것이다. <몬테베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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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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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술은 어릴 때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이후 처음이었다. 24살의 히라노 게이치로에게 아쿠타가와 상을 안겨준 작품이라는 수식어보다 이 소설이 더 눈에 뜨였던 것은 두 단어 때문이었다. 기독교와 연금술. 즉 마녀사냥이 횡행했던 중세 유럽에서 신성 모독일 수 있는 연금술의 의미가 궁금했다.

 

 내용은 15세기 프랑스에서 한 수도사가 겪은 기묘한 체험담이다. 수도사 니콜라는 이교의 사상을 다룬 헤르메스 선집의 완본을 구하고자 파리에서 리옹까지의 여정을 떠난다. 그러던 중 주교의 추천으로 독실한 연금술사인 피에르를 만나고 신비로운 장면을 목격한다. 한편 전염병이 돌고 있는 마을에선 사람들이 하늘을 원망하고, 이단 심문관은 마녀를 처벌해야 한다며 사람들을 선동한다.

 

 결국엔 연금술사가 마녀로 지목되는데 그 모든 과정을 수도사의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시선은 종교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자 비판이다. 또한 시간이 흘러 초로의 수도사가 연금술을 시작하는 것 또한 작가가 15세기를 배경으로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였다.

피에르의 말에 따르면 무릇 월하(月下) 피조물계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질료가 형상과 일치하고, 그뿐만이 아니라 결여태(缺如態)로부터 소유태(所有態)로의 복귀까지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눈먼 자는 그 눈장자에 빛을 밝히고, 귀 먹은 자는 음을 가려 들으며, 나병은 치유된다. 현자의 돌을 두고 만능의 약이라 칭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특히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에 그는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식전 기도의 경건함에서도, 식사중의 침묵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식탁에서의 모든 동작은 대단히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이루어지고, 소리 하나 내는 법 없이 진행되었다. 거기에는 길고 긴 단식을 끝낸 이가 마주한 최초의 식사를 입에 넣으려고 하는 순간과도 같은 외경(畏敬)이라 부를 만한 고요함과 눈앞 음식과의 진지한 교류가 보였다. 생리적인 욕구는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욕구가 핍박받고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형태를 부여받아서 인간에게 적합하게 고양되었다고 해야 할 그런 엄격함이었다. 그 순간 음식은 피에르에게는 분명하게 외적이고 이질적인 것이면서도 몸 안에 들어가기 이전에 한 발 앞서 이미 동질성을 획득한 듯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피에르가 연금로를 마주하고 있을 때에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불가사의하리만치 충실감이 넘치는, 외계와의 일치성의 현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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