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지식의 쇠퇴 - 오마에 겐이치의 21세기 집단지성론
오마에 겐이치 지음, 양영철 옮김 / 말글빛냄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라 불리는 오마에 겐이치가 현대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식의 쇠퇴 현상을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분야 등에서 진단했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아 각자 자신의 명확한 판단 기준이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매스컴에 쉽게 휘둘리고 초저금리에도 저축만 열심히 하며 선거 때마다 이름만 달라진 정당에 투표를 한다. 대중의 선택에 편승한 결과, 일본의 집단IQ가 저하 되었다는 것. 게다가 버블 붕괴 이후 성장한 젊은이들에게 욕망이 없어 많은 것을 포기한 채로 사는 점도 문제라고 한다.


  해결책은 교육 개혁이다. 정저지와의 상태인 일본인에게 영어, 파이낸스, IT, 리더십을 가르쳐 국제적인 감각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개개인을 만들자고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덤으로사는인생 2017-03-2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세기의 교양에 대해
 
디지로그 digilog - 선언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을 뜻한다. 대개는 마케팅이나 경제 분야에서 한정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저자는 그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그는 디지로그가 아날로그와 디지털, 두 문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라 했다.


 융합의 관점에서 저자는 한국의 음식문화에 집중한다. 한국인이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는 ‘먹는다’란 표현이 가진 의미와 문화를 분석한다. 또 김치나 비빔밥과 같은 음식에서부터 도마나 젓가락 등의 식기를 통해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는 융합과 조화의 정신이 깔려 있었음을 시사한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대에 양자택일적인 선형적 사고에서, 양자를 모두 포용하는 순환적 사고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저자의 말은 시간이 흘러도 설득력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1975년, UN은 이 날을 기념일로 지정했고, 그 해 독일은 알리스 슈바르처의 『아주 작은 차이』로 쑥대밭이 되었다.


  사람들은 남녀에게 아주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작은 차이가 하나의 신념으로 변질되어 서로를 감금하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차이 자체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주장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던 보부아르의 목소리로 더욱 힘이 실린다.


  아주 작은 차이의 인식은 사회적 권력과 계급을 정당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남녀를 구분하기 이전에 같은 인간일 뿐, 성별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일침이 한국에는 좀 더 울려 퍼져야 할 것 같다.

 

"사회주의 혁명이 경제적 특권계급뿐 아니라 계급의 차이 자체를 종식시키려는 이상을 갖고 있듯, 여성주의 혁명은 남성의 특권뿐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차이 자체를 철폐한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성기 모양의 차이가 사회적 불평등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슐라미쓰 파이어스톤,『여성해방과 성혁명』

쉽게 말해서 인간은 먼저 인간일 따름이고, 그 다음 생물학적으로 살펴볼 때라야 여자 혹은 남자라는 것이다. 여자냐 남자냐를 가지고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따라서 여자가 하는 일과 남자가 하는 일로 구분한 채 억지로 그 역할을 떠맡기면서 사나이의 우월함과 아낙네의 열등함을 강요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겠다는 얘기다. 여자 일과 남자 일을 따로 나누고 이를 통해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착취하는 일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여성의 삶과 남성의 삶을 규정하는 패턴에 따라서가 아니라 개인적 성향이나 욕구에 따라 각자의 삶을 꾸려갈 수 있어야 한다. 남자라고 반드시 능동적일 리 없으며 여자라고 반드시 수동적일 리 없다. 여자라는 혹은 남자라는 제한 없이 훨씬 다양한 면모를 자연스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성적인 욕망은 나이와 인종 그리고 성별과 상관없이 어떤 인간과도 소통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 공연한 권위나 억압이 없는 사회에서, 계급의 개념은 이미 의미가 없다.

"몸의 기능을 근거로 사회적 역할을 고정시키는 참 위험하고 치사한 계략이 있습니다. 아이는 물론 여자가 낳는 것이죠. 이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자명한 사실은 여자 혼자 아이를 배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애비 없이 태어나는 아이가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어머니 뱃속에서 보내는 열 달이야 어머니 혼자서 감당하는 기간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아기를 돌보는 기쁨과 노고는 엄마 아빠 두 사람이 함께 나누어야 할 몫입니다. 아기가 살았던 자궁이 어머니 뱃속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후에도 아이 양육은 모두 어머니 몫이라는 얘기는 정말 터무니 없는 주장입니다." -맥브라이드, 『넋빠진 가정주부의 평범한 일상』

여자들은 이제 드디어, 여성다운 미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던 그 여성다움을 결연히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