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늦은 시각, 난 올림픽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비가 오다 그친 뒤라 거리는 깨끗했는데, 그보다 더 기분이 좋았던 건 93.1 MHz에서 유난히 주옥같은 노래들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노래도 안치환이 부른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이하 사람꽃>만큼은 아니었다. 이 노래의 신나는 전주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난 꺅꺅 비명을 질러댔고, 전주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어 댔다. 그러고보면 춤이라는 건, 우리 몸에 새겨진 유전자의 발현이 아닐까 싶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내가 아직 서른이 되기 전의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술과 더불어 그저 그런 노래들을 불렀던 날. 일행 중에는 여자도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런지 그녀의 남동생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왔는데 그냥 보내면 예의가 아니어서 동생한테 노래를 시켰다. 그는 우리들이 생전 처음 보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바로 <사람꽃>이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더불어 그 노래는 우리들 마음을 뒤흔들었고, 그네들이 집에 간 뒤에도 우린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야, 그 노래 뭐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둥 가사가 좀 이상하지 않데?”
“그러게 말야. 그나저나 그 친구, 노래 진짜 잘하더라.”
한겨레에서 주최한 마라톤 대회에 나갔을 때, 몸을 푸는 우리에게 틀어준 노래가 바로 이거였다. 그땐 내가 <사람꽃>을 몇 번 더 들었던지라 무슨 노래인지는 알았는데, 아쉽게도 가사를 몰라 따라부를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대목은 “누가 뭐래도~”로 시작하는 후렴구, 그건 다른 이들도 다 마찬가지인지라 웅얼웅얼하던 노래소리는 후렴 때부터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 3월, 탄핵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있던 그 시절, 광화문에 나갈 때마다 우린 그 노래를 한번씩 불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데, 거기 무슨 저항의식이 들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 노래가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불리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사람꽃>은 노래방같은 음침한 곳보단 그런 데서 불리는 게 더 어울리는 노래였다. 어느 날인가는 안치환 본인이 직접 나와서 그 노래를 불러 줬는데, 반응이 어찌나 뜨거운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가사집을 미리 배포한 게 도움이 됐다).
아직도 난 그 좋아하는 <사람꽃>의 가사를 외우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누가 뭐래도”로 시작하는 후렴구부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오늘 가만히 가사를 들어보니 후렴 전까지의 가사가 양이 많고 외우기도 만만치 않다. 에이, 가사를 모르면 어떠랴. 들으면서 즐거우면 그만이지. 네이버를 찾아가 <사람꽃>을 듣는 이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래는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