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된 임진왜란 - 근세 일본 고문헌의 삽화로 보는 7년 전쟁
김시덕 지음 / 학고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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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도 시대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에 실린 324점의 삽화를 통하여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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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1593년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벽제관 전투, 1597~98년 가토 기요마사의 울산성 전투, 1598년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의 사천 전투를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3대첩이라고 칭한다. 조선·한국 측이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을 1592년 김시민(金時敏)의 1차 진주성 전투, 이순신의 한산도 전투, 1593년 권율의 행주산성(幸州山城) 전투로 꼽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국은 자국군이 승리한 전투를 기억하고 패한 전투는 기억에서 지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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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본 임진왜란 - 근세 일본의 베스트셀러와 전쟁의 기억
김시덕 지음 / 학고재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임진왜란이 여몽 연합군의 일본 침략에 ‘복수‘하는 전쟁이며,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인들도 섬기는 자비로운 ‘도깨비 장군‘이었다는 에도 시대 일본인들의 인식은 당혹스럽다. 하지만 당혹스러워서 그들이 그렇게 여기는 까닭을 살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임진왜란의 비극을 또다시 겪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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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여 년 사이에 일본인들이 임진왜란, 한반도, 그리고 자국 일본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이들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실(事實)이다. 그러나 이들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와 같이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내고 임진왜란에 참전한 한·중·일 삼국의 관점을 대입하려는 시도는 이제까지 없었다. 역사학에서는 사료에 근거하여 임진왜란의 사실(史實)을 추구하다보니, 일본인들이 쓰고 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이들 이야기는 사료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도외시되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평화 일본‘의 기치를 내건 현대 일본 사회에서는 임진왜란이라는 침략 전쟁을 담은 이들 이야기에 대해 자기 검열, 또는 무의식적 편견이 작용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이 진행되던 당시부터 19세기 말에 이르는 3백여 년간 인구에 회자되어 온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는 적어도 일본 사회의 표면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 이야기는 결코 소멸되지 않고, 일본 우익들의 발언이나 중세 전국시대의 유행 속에서 마치 발작처럼 불쑥불쑥 되살아나고는 한다. 이들 이야기는 일본인 자신들도 잊은, 또는 똑바로 쳐다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일본의 또 다른 면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눈으로 근세 일본인들이 향유한 임진왜란 이야기를 살펴보는 일은 필수적이다. 임진왜란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일본 사회를 바라볼 중요한 도구를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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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임진왜란이 동북아시아를 포괄한 국제전인 이상, 한국·중국·일본·유럽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임진왜란이 기록으로 남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장이 되었던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기록뿐 아니라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한 국가들에서 만들어진 기록까지 살펴보아야 ‘임진년에 일어난 7년간 계속된 국제 전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방식은 한쪽에 치우치거나 협소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문헌만이 ‘진실‘을 전하고 있고 중국·일본의 문헌은 역사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살펴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필자는 여러 차례 접한 바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임진왜란에 대해 이야기되는 내용들의 상당수는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와 같은 근현대 일본 역사학자들이 한·중·일 3국의 기록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들 학자들의 지적 배경에는 근세 일본의 방대한 임진왜란 관련 문헌과 담론이 존재한다. 광복 이후, 적어도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측 상황에 관한 연구는 한국 학자들이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당시 일본 측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렬한 민족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 사회는 근현대의 일본 학자들이 만들어낸 임진왜란상을 직·간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려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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