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임진왜란이 동북아시아를 포괄한 국제전인 이상, 한국·중국·일본·유럽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임진왜란이 기록으로 남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장이 되었던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기록뿐 아니라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한 국가들에서 만들어진 기록까지 살펴보아야 ‘임진년에 일어난 7년간 계속된 국제 전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방식은 한쪽에 치우치거나 협소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문헌만이 ‘진실‘을 전하고 있고 중국·일본의 문헌은 역사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살펴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필자는 여러 차례 접한 바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임진왜란에 대해 이야기되는 내용들의 상당수는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와 같은 근현대 일본 역사학자들이 한·중·일 3국의 기록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들 학자들의 지적 배경에는 근세 일본의 방대한 임진왜란 관련 문헌과 담론이 존재한다. 광복 이후, 적어도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측 상황에 관한 연구는 한국 학자들이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당시 일본 측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렬한 민족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 사회는 근현대의 일본 학자들이 만들어낸 임진왜란상을 직·간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려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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