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7년의 정묘호란은 후금의 입장에서 모문룡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당시 조선의 인조 정권은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등으로 비롯된 내정의 동요를 추스르는 데도 겨를이 없었다. 따라서 인조 정권이 집권 이후 비록 ‘친명배금‘을 표방했지만 현실에서는 ‘배금‘을 실천할 능력이나 여유가 없었다. 인조 정권은 ‘친명‘을 강조하면서도 후금과의 관계에서는 최소한 현상을 유지하려는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따라서 조선은 후금에게 이렇다 할 전쟁 도발의 명분을 제공하지 않았거니와 그 같은 상태에서 후금이 호란을 일으킨 것은 조선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즉 후금은 내부의 모순을 밖으로 배출하여 홍타이지의 권력을 강화하는 한편, 조선을 움직여 교역선을 확보하고, 자신들의 턱밑에서 서진西進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모문룡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기병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강홍립과 한윤 등이 홍타이지를 부추겨 광해군을 위해 복수하기 위해 쳐들어온 전쟁‘이라고 정묘호란을 정의하는 일각의 설명은 조선 후기 특정 당파를 중심으로 형성된 편향된 시각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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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왕국의 풍경, 그리고 새로운 시선
이근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현대인인 우리는 오늘날의 잣대로 고대인과 그들이 살던 옛날을 바라보기 쉽다. 그러나 선입관과 편견을 버리고서 고대인의 시선에 가깝게 고대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고대사 속에 숨은 풍부한 이야기를 캐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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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있었던 과거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원래의 모습으로 전해질 수는 없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굴절 없이 그대로 우리의 망막에 와 닿는 것일까. 망막에 와 닿더라도 우리의 뇌가 또 다른 굴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라도 현재의 우리가 하는 일을 미래의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나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두에 두면 오늘 내 머릿속에 만들어내는 굴절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과거보다 더 많은 사건과 일, 생각들로 차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할 수도 없다. 전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두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과연 우리들이 과거가 되었을 때 우리가 한 일 중에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의 행동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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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처럼 우리가 배웠던 우리의 과거에 대한 지식은 많은 부분들이 오늘날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지식의 상당 부분은 우리 시대가 공유하였던 신화인 셈이다. 당연히 그런 지식이 미래에도 유용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내일은 또 내일의 역사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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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중독 - 새것보다 짜릿한 한국 고전영화 이야기
조선희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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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년의 밑바탕을 이룬 옛 영화들과 옛 영화인들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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