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7년의 정묘호란은 후금의 입장에서 모문룡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당시 조선의 인조 정권은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등으로 비롯된 내정의 동요를 추스르는 데도 겨를이 없었다. 따라서 인조 정권이 집권 이후 비록 ‘친명배금‘을 표방했지만 현실에서는 ‘배금‘을 실천할 능력이나 여유가 없었다. 인조 정권은 ‘친명‘을 강조하면서도 후금과의 관계에서는 최소한 현상을 유지하려는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따라서 조선은 후금에게 이렇다 할 전쟁 도발의 명분을 제공하지 않았거니와 그 같은 상태에서 후금이 호란을 일으킨 것은 조선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즉 후금은 내부의 모순을 밖으로 배출하여 홍타이지의 권력을 강화하는 한편, 조선을 움직여 교역선을 확보하고, 자신들의 턱밑에서 서진西進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모문룡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기병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강홍립과 한윤 등이 홍타이지를 부추겨 광해군을 위해 복수하기 위해 쳐들어온 전쟁‘이라고 정묘호란을 정의하는 일각의 설명은 조선 후기 특정 당파를 중심으로 형성된 편향된 시각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