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여 년 사이에 일본인들이 임진왜란, 한반도, 그리고 자국 일본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이들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실(事實)이다. 그러나 이들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와 같이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내고 임진왜란에 참전한 한·중·일 삼국의 관점을 대입하려는 시도는 이제까지 없었다. 역사학에서는 사료에 근거하여 임진왜란의 사실(史實)을 추구하다보니, 일본인들이 쓰고 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이들 이야기는 사료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도외시되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평화 일본‘의 기치를 내건 현대 일본 사회에서는 임진왜란이라는 침략 전쟁을 담은 이들 이야기에 대해 자기 검열, 또는 무의식적 편견이 작용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이 진행되던 당시부터 19세기 말에 이르는 3백여 년간 인구에 회자되어 온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는 적어도 일본 사회의 표면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 이야기는 결코 소멸되지 않고, 일본 우익들의 발언이나 중세 전국시대의 유행 속에서 마치 발작처럼 불쑥불쑥 되살아나고는 한다. 이들 이야기는 일본인 자신들도 잊은, 또는 똑바로 쳐다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일본의 또 다른 면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눈으로 근세 일본인들이 향유한 임진왜란 이야기를 살펴보는 일은 필수적이다. 임진왜란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일본 사회를 바라볼 중요한 도구를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