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책방입니다
임후남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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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십대를 함께 한 골목길 안에 자리잡은 도서대여점은 퇴근 후 나의 쉼터가 되어준 곳이었다. 늦은 저녁까지 운영하는 그 곳은, 들어서자마자 손님을 기다리는 넓은 나무 테이블이 나를 맞이하였고, 그 곳에 앉아 대여할 책을 선택하는 과정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엄마와 딸이 운영하는 그 곳은 항상 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고, 엄마 사장님에게 책 추천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기도 하였다.

창가를 바라보는, 넓은 테이블에 앉으면 사실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멍~하게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은 유혹을 느끼곤 한다. 그 곳을 드나들면서 처음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없이 많은 이들과 책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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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피어나는 꽃이 다르고 향기가 다른, 책이랑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무엇보다 책과 참 잘 어울리는 곳, 그 곳에 시골책방이 있다. 흙 냄새가 정겹고 나무 냄새가 구수한, 숲으로 싸인 그곳에 '생각을담는집', 시골책방이 하나 있다. 바로 주말 동안 내 눈과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준 책 『시골책방입니다』 의 배경이 된 바로 그 곳이다.

자유롭게, 자기만의 숨소리를 갖고 있는 이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을 통해 배운다. 특히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틀 속에 자기를 가두지 않고, 자기의 모습을 갖고 있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자연스레 젊은 시절의 나를 돌이켜 보게 되고, 지금이라도 내 숨소리를 갖고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36쪽

도시 생활을 접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픈 꿈과 좋아하는 일, 노후를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차려낸 시골책방은, 작가이자 기자였던 임후남님이 남편님과 가꾸어가고 있는 공간이다. 책방에서의 하루 일과와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시간, 책방이기에 가능한 새로운 만남들을 담담하고도 깊이 있게 담아낸 책이 『시골책방입니다』 이다.

나도 한때 나중에 돈을 벌어, 책 한권 팔면 얼마가 남지? 하는 계산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자그마한 나만의 책방을 하나 갖고 싶은 꿈을 가졌더랬다. 난 그 꿈을 항상 소박하다고 표현해 왔는데, 동네 한 켠에 자리한 책방이 어느 날 간판을 내렸고, 도시에서 벗어난 곳에 들어선 다양한 책방을 보면서, 책방을 가꾸어가는 많은 이들의 열정이 느껴지면서 나의 꿈은 결코 소박하지도, 돈 걱정이 없다고 차려낼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에라도 그걸 알았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 여기는 요즘이다.

지금의 작은 책방들이 책을 중심으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다. 그래서 서점이라는 단어보다 동네 문화 사랑방 역활을 하는 책방이라는 단어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런 작은 책방들이 최소한 마을마다 한개씩 생긴다면. 181쪽

[중략]

작은 책방이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그것을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이런 문화를 물려주는 것은 부모의 역활이다. 187쪽

지인 한 분이 두 자녀를 키우고, 혼자서 가까운 동네부터 먼거리 동네까지,구석구석에 차려진 책방을 탐방하는 부지런함으로 일상을 즐기시는 분이 계신다. 책을 참 좋아하던 분다운 일상을 가꾸어가시는 그 분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여유가 생긴다. 잘 차려진 책방을 둘러보며 갖게 되는 여유가 얼마나 달콤하고 따스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며 땀이 차오를 때쯤 만나게 되는 책방의 모습에 환한 미소 하나 지어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용솟음쳐 온다.

요즘은 도시 한가운데에서부터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곳에 자리한 '책방'이 주인을 닮은 모습으로 차려져 그 마을의 이야기를 모으고, 마을만이 가진 냄새를 담아내는 새로운 공간으로 피어나고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할인받고 적립받고, 이벤트 당첨을 기다리는, 어설프고 욕심많은 독자인 나를 '책방'으로 마음을 기울게 한다. 『시골책방입니다』 를 읽으면서 나는 책방 주인에게 어떤 이야기를 펼쳐보일까, 나는 내 이야기를 얼마나 진솔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밤을 보낸다.

선생이 간 후 좋다는 말을 오래 생각했 다.'행복'이라는 단어는 일상으로 쓰여도 생활에서는 낯설다. 그러나 '좋다' 라는 단어는 생활 속 단어다. 책을 읽어도, 풍경을 봐도, 먹을 때도, 그림과 음악을 만나도 우리는 '좋다'라는 단어를 쓴다. 이 좋음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좋음의 순간들이 있고, 나쁨의 순간들이 있다. 순간들이 이어져 일생을 만들어내고, 그 순간들보다 좋은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199쪽

시골책방을 운영하면서, 책을 읽고, 잡초를 뽑고, 먹거리를 위한 채소를 키우고 그리고 본업으로 돌아와 책을 사고 팔고, 작가 강연회 일정을 짜고 손님을 맞이하고, 책방을 찾는 손님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들을 하나하나 곱게 접아 담아낸 책이 『시골책방입니다』 이다. '시골'과 '책방'이 하나가 된 시골책방은 말만 들어도 따듯하고 외갓집을 다녀온 푸근함이 절로 느껴진다. 시골 어르신들을 모아 시 수업을 한 박혜란 작가의 이야기와 다방을 참 좋아하는 손자 이야기, 워킹맘으로 지쳐가는 아내를 위한 책방 휴가, 책방에서 프로포즈를 계획한 손님과 커플을 바라보며 더 설레고 긴장했던 책방지기 부부의 이야기, 정혜신박사 내외의 치유를 담은 메모까지 잔잔한 이야기가 모아져 떨림으로, 감동으로 나를 둘러싼다.

시골책방, 생각을담는집에서의 하루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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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엄마 처방전
김미영 지음 / 미문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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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두 소녀를 둔 엄마인 나는,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온 첫째와 사춘기라는 터널을 앞에 둔 둘째를 약간 두려운 마음으로 마중나와 있다. 두 소녀를 내 손으로 양육하면서 '엄마'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각인시켰고, 누구보다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성장해가는 소녀들의 속도만큼 엄마인 나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순간 당황스럽고, 뾰족한 답안을 내놓지 못해 맘이 복잡해지는 때가 꽤 종종 일어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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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엄마 처방전』은 남매의 엄마인 김미영님이 사춘기라는 터널 속에서 잠깐 길을 잃었던 첫째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글로 표현한 책이다. 엄마의 어깨에 힘을 불어넣어주었던 첫째와 그에 반응한 부모의 기대 그리고 욕심과 함께 찾아온 첫째의 무기력과 반항의 시간을 회상하며 그 시간에 느꼈던 흥분과 처절함을 담아 읽는 동안 이웃집 이야기같고, 지인과의 수다에서 나눌 법한 이야기들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피식 웃음이 베어나온다. 이미 한 번 지난 엄마의 여유로움일 수도 있고 또 한 번 다가옴을 기다리는, 생각만으로도 힘이 빠지는 내가 마치 바람빠진 풍선이 된 것 같아 그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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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6학년 봄부터 중학교 1학년 봄까지 만 2년에 걸쳐 사춘기 터널을 건넜다. 난 첫째의 사춘기 시간을 '파도와 같다'고 말한다. 햇볕이 쨍해도 파도는 칠 수 있고, 먹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하늘과 힘을 합해 물결이 거칠어지고, 어른들말로 대중없이 치고 들어오는 파도가 어느 날은 당황스러울 만치 평온하여 한시름 놓기도 한다. 그러다 크게 당하기도 하고. 그랬던 날들이 반복되는 동안 나는 아이의 파도를 잠잠히 받아주는 우아하고 품격있는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따지고 드는 아이의 말에 더 치열하게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었고, 싸움을 걸어오는 아이와 치열하게 싸워주었고, 말하다 터진 눈물에 함께 펑펑 울어주었다. 그리고 나보다 큰 키인 소녀를 많이 안아주면서 내가 경험한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작년 여름이 시작되면서 첫째는 가족에게 선언했다.

"나의 사춘기는 끝났어요."

라고.

 

다른 집에 비하면 수월하고 무난하게 지나간 파도지만 첫째의 선언과 함께 나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곧 예민하고 자신이 계획한 대로 움직이는 자기애가 뚜렷한 둘째의 사춘기 터널이 다가와 첫째와는 또다른 시간을 보내겠지만, 오기 전까지 난 무조건 쉬어가기 모드에 기다림을 장착하고 때를 기다릴 뿐이다. 파도가 지나고 잠깐의 휴식기인 지금, 색다르게 몰아칠 파도가 기대되는 건, 아이의 성장을 보고 싶은 엄마의 또다른 마음이 아닐까.

 

 

나는 사춘기 아이를 대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우선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욕심이 생겼다 하면 무조건 성취하기 위해 나 자신을 달달 볶는 경향이 있었는데 내 뜻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지 않음으로써 느긋한 마음이 생겼다. 두 번째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아이가 자신한테 집착하는것을 너무 부담스러워했고, 이로 인해 나도 아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써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세 번째는 아이 나름대로 서서히 독립심이 키워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림으로써 아이도 엄마에 대한 의존 경향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춘기 엄마 처방전. 45쪽

 

사춘기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견디는 시간이라고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첫째의 파도와 직면하고 있을 때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쉴새 없이 흘렀다. 내가 잘 견뎌야 한다는 의무감과 내가 첫째를 많이 안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나를 일으켜세웠는지도 모른다. 사춘기 터널을 지났다고 선언한 첫째지만, 가끔은 소녀의 표정을 살필 때가 있다. 자신이 선언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애써 감정을 숨기고는 있지 않을까, 엄마의 포옹이 너무 얄팍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정한 마음이 엄마인 나에게는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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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 또는 부모교육 관련된 책을 정말 오랜만에 읽는다. 사춘기를 지난 소녀와 곧 겪을 소녀를 키우는 나에게 『사춘기 엄마 처방전』는 지인과 나누었던 이야기,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첫째이기에 가졌던 기대와 욕심, 엄마가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행했던 보이지 않는 횡포 그리고 반복되는 미안함과 결심들, 여전히 후회스럽고 가슴 아프게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상처만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더 깊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처 돌보지 못한 상처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는 새 아물었기에 나라는 사람이 엄마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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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엄마 처방전』은, 사춘기의 시간을 겪고 있는 많은 엄마들에게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처방전'이라는 제목에는 미흡함이 느껴져 살짝 아쉬움이 깃든다.

지금 이 순간 사춘기 아이로 마음을 다치고 있는 많은 엄마들에게, 진심을 다한 마음 처방전을 팁으로 안겨주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마음의 파도를 내려놓기 위한 좋은 책이나 음악 또는 취미를 위한 온라인 공간들을 소개하며 엄마 스스로 상처를 보듬을 기회를 주었다면,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희망과 기다림으로 발전해갈 수 있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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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김그린 옮김 / 모모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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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시 읽고 싶었던 책이다.

도서 대여점이 성행했던 나의 이십대, 퇴근하면서 줄기차게 다녔던 그 곳에서 여사장님이 추천해서 읽은 책 중 하나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이었다. 중고로 들여온 책은 표지도 속지도 상태가 좋지 못한 상태였지만, 작가의 말도 해설도 채 읽기 전에 눈을 뗄 수 없이 한번에 읽어내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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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 지냈다. 읽는 동안 느꼈던 그리고 가슴 아팠던 충격도 다른 책으로 덮이고 덮여 잊고 지냈다. 그런 나에게 2020년 다시 출판한, 일러스트까지 가미된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문체 하나 상황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다시금 읽어내면서 20대와는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매너 농장의 주인 존스는 술에 취해 동물들에게 먹이 주는 것을 잊고 만다. 소비만을 하는 인간과 생산만을 강요당하는 동물 사이엔 결코 조율이라는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들의 의지가 담긴 봉기는 존스를 농장에서 내쫓게 되고, 동물농장의 진정한 주인이 된 동물들이 서로를 위한 7계명을 만들어 서로의 존재를 지켜나가며 자유의 해방감을 누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목적은 다르되, 새로운 집단이 생기면 집단을 이끌어가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매너 농장이 '동물농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면서 인간의 글씨를 독학하였다는 이유로 스스로 지도자가 된 돼지 스노우볼과 나폴레옹 그리고 그들의 행동대장 스퀼러를 앞세워 꿈꾸던 세상을 열어나간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 동물들은 절대로 동족을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약하든 강하든, 영리하든 우둔하든, 이들 모두가 서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우리 동물들은 모두가 평등하니 말이에요.

동물농장. 34쪽.

 

모두의 뜻이 같은 세상은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 누구의 성과도 중요하지 않으며, 함께 나아가는 세상은 아락함을 주기에 탁월한 곳이다. 그러나 시작은 같았으나 끝이 같다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동물농장의 많은 동물들은 먹이도 함께 나누고, 농장을 운영해 가기 위해 서로의 노동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인간의 억압 속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먹이와 자유를 느끼며 살아간다. 이는 권력의 힘을 모르는, 권력보다는 열심히 살아가면 지금의 먹이와 자유가 보장될 거라고 믿는 동물들 사이에서만 유지되는 행복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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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의 봉기에서 권력의 맛을 느낀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은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스노우볼을 농장에서 쫓아내면서 나폴레옹의 독재 통치는 시작된다. 스노우 볼과 나폴레옹 곁에서 행동대장이었던 스퀼러는 나폴레옹의 독재를 옹호하며, 회유와 설득 그리고 기억의 오류를 들춰내며 동물들의 강제 노역을 강요한다. 동물들은 어리석을 만큼이나 스퀼러의 회유에 녹아들어 농장의 변화에 적응해간다. 마치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발벗고 나선, 수많은 백성과 부모님 세대를 보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해 내내 동물들은 마치 노예처럼 일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행복했다. 그들이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게으르고 착취만 일삼는 인간 패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의 노력과 희생도 아끼지 않으려 했다.

동물농장. 97쪽

 

배부른 나폴레옹. 권력의 힘을 제대로 맛본 그는 존스가 살던 인간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스퀼러와 개들의 호위를 받으며 혐오하던 인간의 삶을 닮아가는, 절대 인간이 될 수는 없는 독재자가 되고 말았다. 동물들의 의심이 싹이 돋을 때쯤이면 행동대장 스퀼러를 통해 동물들을 선동하여 그들의 노동력을 당당하게 착취하는 잔악한 독재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백성의 진심을 권력자의 배부름에 사용하는 그들의 악행은 하루가 다르게 잔인해지고, 백성의 진심을 사탕발림 소리로 이용하는 그들의 지능적인 술수는 더욱더 치밀해지고, 백성이 아닌 권력을 키우는 도구로 삼기에 이른다.

 

메이저가 처음 봉기의 기운을 고취시켰던 그날 밤에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지금의 이런 공포와 살육의 현실이 아니었다. 그녀 나름대로 그려 보았던 미래의 모습은 굶주리지 않고 학대받지 않으며, 모두가 평등하고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 맞게 일하며, 오래전 메이저가 연설을 하던 그날 밤에 어미 잃은 새끼 오리들을 그녀가 앞발로 감싸 보호했던 것처럼,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동물사회였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반대로,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표독하게 으르렁거리는 개들이 사방으로 활보하며, 동물들이 끔찍한 죄를 자백하고는 갈기갈기 찢겨져 죽어 나가는 참상을 보아야만 하는 때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동물농장. 129쪽.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서민들만이 하는 어리석은 생각일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여전히 권력이 난무하고 있으며, 권력을 무기 삼아 서민들을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처럼 악행을 처단하는 빠른 전개를 보이다가도 권력을 쥐는 순간 나라보다는 자신의 뱃속 챙기기에 급급한 지도자 무리들과 그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자신의 몫을 해내려고 애쓰는 수많은 백성 복서가 있다. 그리고 지도자의 말이라면 액면가대로 믿으며 그들의 꿍꿍이에 의심은 가지만 그들이 가진 권력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숨죽여살아가는 나와 같은 백성도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이들의 참혹한 실체를 동물에 비유하여 담아낸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서문에서 「목숨을 걸고 스페인을 탈출한 1937년 이후로 오웰은,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을 다시 전개하면 허구적인 소련의 체제는 필연적으로 붕괴될 것이라는 확신’을 계속 피력했었다. 더불어 이런 ‘허구의 소련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일조하려는 의도로 동물농장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세상을 향해 말하고자 한 것은 단순히 고발이 아닌 우매한 백성들의 눈을 뜨게 하고, 소리를 가려낼 수 있는 귀를 열게 하고자 했을 것이다.

 

창문 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의 시선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서,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

분간하기란 이미 불가능해져 있었다.

동물농장. 196쪽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이라면 인간답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주는 평온함을 다함께 누려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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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박종원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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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노을의 빛 그대로를 옮겨놓은 듯한 색과 아름다운 몸짓의 두 댄서를 잔잔하게 표현한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은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읽기 시작한다. '로맨스'와 '스릴러' 가 합해진 '로맨틱 스릴러' 란 장르를 처음 접하기도 하고, '스릴러' 장르에 대해 살짝 거부감이 있기에 도전이라는 맘으로 책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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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빈. 그는 부인을 잃었다. 화재 사고로 딸을 잃은 후부터 자신의 방식으로 무던히도 지켜내기 위해 애쓰던 부인의 죽음은, 성빈에게 진실을 밝혀낼 의무감을 심어준다. 성빈이 모르던 부인의 시간과 부인이 말하고 싶었던 진실이 무엇인지 그 속으로 한걸음씩 다가간다. 부인이 보낸 시간 속에 진지하게 다가온 '댄스'라는 새로운 소재를 만나고, 성빈은 부인 지현이 마지막으로 보낸 그 시간을 만나기 위해 댄스의 세계로 입문한다.

염장이의 말이 떠올랐다. '표정을 보니 무엇인가 꼭 전할 말이 있는것 같아. 이승에서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지.'

여기에 온 흔적이었다. 며칠 전에 왔다 갔다는표시였다. 명백한 사실이었다. '아내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걸까. 아내가 없는 지금 …….'

묽게 물든 석양은 점점 엷어졌다. 잿빛 구름이 영역을 넗히고 있었다. 호랑나비의 잔상이 잿빛 구름 위에 살포시 놓인다. 드넓은 세상을 한 쌍의 호랑나비처럼 거침없이 살아가자고,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영원히 함께하자고. 청혼을 기념한 행복의 선물이었다.

아내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왜 호랑나비를 남겼는지 의문의 틈새를 좁히고, 숨겨진 사실이나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있다면 밝혀야 했다.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27쪽.

 

 

부부는 가장 가까운 관계라고 단정짓고 싶지만, 가깝지만 그 만큼의 서로 다름이 존재하는 관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하게 된다. 서로를 위한 배려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 부부 관계이지만, 그것이 때로는 서로의 다름을 방관하는 것으로 전향되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성빈과 지현이는 서로 사랑했다. 딸을 키우며 가정이란 울타리를 지키며 일상이라는 평범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현은 글쓰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여고동창의 소개로 '춤'이라는 신세계를 만나게 된다. 신세계는 말 그대로 지현의 삶에 새로운 바람으로 다가오고, 그 바람과 마주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지현은 댄스라는 세계와 손을 잡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을 눈여겨 보는 사람들 사이에 놓이게 된다. 지현이 선택하지 않은, 그 무엇도 기억나지 않은 밤, 그녀의 딸은 혼자서 부모를 기다리다 화재로 숨을 거두고 만다. 지현은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 딸이 느꼈을 공포와 외로움이 얼마나 깊었을지, 스스로 혼자의 시간을 선택하고 생을 마감한다. 딸에게 갚지 못할 미안함과 엄마로서의 불성실함 그리고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불편함이 성빈의 곁을 떠나는 것으로 정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통스러운 과거, 불행한 일을 겪고 무언가 삶의 동기를찾았다.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던 삶이, 행복을 찾아 발걸음을 띠지 못하던 현실이, 성빈을 만난 후로 점점 어떤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자신의 혼자만이 아닌 두 사람으로.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496쪽.

 

 

지현은 친구의 권유와 필요할 거라는 핑계를 채운 호기심으로 댄스를 시작하고, 성빈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지현의 시간과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알기 위해 댄스를 시작한다. 서로가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 속에서 성빈은 지현의 자취를 찾아가고, 부인이 다가갔던 문들을 하나씩 열면서 지현과 손을 잡았던 이들의 손을 기꺼이 잡는다.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은부인의 죽음과 댄스, 댄스와 가면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진실, 그 동안 내가 읽어왔던 로맨스 소설과는 또 다른 깊이를 느끼게 하며, 스릴러라는 장르가 주는 무거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가슴 떨리는 사랑이 아닌 묵직하고도 책임감이 있는 사랑으로 안정감을 주는 성빈과 지현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도는 다양한 형체를 한 사랑의 양상이 드러나면서 사랑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주어진다.

 

"보이는 것이 사실인 것만은 확실해. 사실을 전부 밝히기도 전에, 행여나 자신이 믿었던 사실이 틀릴까 두려워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지. 어쩌면, 진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미 똬리를 틀고 있는지도 몰라.

아마 우리가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거나 모를 수도 있을 거야."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577쪽.

 

부인의 죽음에 감춰진 진실을 찾기 위해 새로운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성빈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세상을 향해 진실을 쏟아내려한 댄서의 이메일 한 통, 갑작스런 부인의 죽음과 거짓으로 상처받은 댄서까지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은 '죽음과 댄스'라는 소재를 엮어낸 이야기이다.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는 묵직함과 댄스가 주는 화려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가면 속에 감춰둔 진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시간의 실체를 풀어내는 로맨틱 스릴러 소설이다.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흐르는 진실과 마주하는 또 다른 시간을 만나는,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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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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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에서 만난 『침입자들』 은 제목이 주는 무게감에 살짝 흔들렸다. 누군가에게 다가간 침입자 그리고 그 침입을 받아야만 하는 누군가, 그들의 관계는 무엇이고, 그들이 각각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소개글을 살펴보게 되었다.

"택배·인생·행운동·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긴장감·하드보일드 소설" 로 소개된 글을 보면서 궁금증은 호기심으로 변해갔고, 너무나 낯설게 들려오는 '하드보일드'라는 소설 장르에 대한, 나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도전 의식이 일었다. 책장을 펴기 전, 미리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에 대해 의미를 바르게 알고 읽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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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동'이란 불리는 중년의 남자는 목적없이 터미널에 내려 구인 광고 중에 숙소 제공이라는 글 한 줄에 솔깃하여 택배 일을 시작한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되고, 인간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되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일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한 만큼 벌어가는 벌이도 꽤 괜찮은 편이다. 그가 맡은 구역은 행운동. 이름대신 그렇게 불리기 시작한다.

마흔이 넘었다는 이 남자의 일상을 따라간다. 내가 걸어가보지 못한, 내가 알지 못한 마흔이라는 나이를 쫓으면서 행운동이란 사내의 생각에 자꾸만 감동을 하게 된다. 대단한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배포를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잘 들어준다.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칠 땐 과감하고 냉철하게 치고, 빠질 땐 말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만을 지킨다. 나이가 주는 여유로움도 있겠지만, 나를 보면 나이는아닌 것 같고, 지나온 삶이 그에게 준 용기와 물러섬을 안겨준 거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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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동 사내는 조용하게 살고 싶었던, 혼자만의 생활을 누리고 싶었던 그림자같은삶에 다양한 빛을 쏘아대는 침입자들이 생겨난다.

가방줄 짧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말하는 것이 마냥 좋은 주창이와 고된 삶 속에서 사랑을 꿈꾸는 청림, 우울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춘자라는 아가씨와 손 씻을 물과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다니는 동네 바보천재 마이클, 시간 맞춰 택배를 가져다주면 팁을 준다는 게이바의 그녀들과 폐지줍는 꽃다운 이십대 아가씨 마스크 그리고 노망든 열정 교수 할아버지와 손녀까지.

행운동이란 삶의 시간 속으로 과감하게 들어온 이들은 서로의 삶 속에 얽혀 있는 매듭을 그의 손을 빌어 풀려고 한다. 아주 과감하고도 욕심많은 침입자들이다.

"하지만 이 말은 해두는 게 좋겠군요."

여자가 반쯤 열려 있는 창문을 오른쪽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전 당신을 죽이려고 했어요."

[중략]

하지만 죽음이란 단어만은 잔상에 남았다. 죽음이라…….

마틴 쿠르즈 스미스는 《레드 스퀘어》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아무도 내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아는 채로 죽어가는 것', 이라고. 비참한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죽음을 맞을 것 같긴 했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38~39쪽

 

행운동 사내는 항상 진지하다. 그의 말에는 가시도 있고 진실도 있고 농담도 있다. 그는 재미없는 사람이고, 이미 그런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내려놓는다. 그것이 그의 매력이라고 말들 하지만, 말을 아끼는 그에게서도 꽤 긴 말을 늘어놓는 그에게서도 꽤 깊은 상처가 느껴져 그의 삶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죽은 남편을 잊기 위해 돈으로 시간을 사는 춘자와 마약 중독 아버지로 힘겨움을 안고 살아가는 마스크, 수학 천재에서 동네 바보의 삶을 살아가는 마이클과 그를 끝내 포기 못하는 교수 할아버지, 3년을 병상에 누워 계신 지게꾼 아버지와 병간호를 위해 택배일을 선택했다는 남현동, 그들이 꿈꾸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행운동이란 사내의 시간 속에 더불어 살게 된 그들과 그들의 삶에 짧은 흔적을 남긴 행운동이란 사내란 존재는 무엇으로 연결되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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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은 서로의 삶을 굳건히 지키는 사람들의 하루살이를 담고 있다. 삶이 힘겨운 이·삶이 버거운 이·삶이 무거운 이·삶이 무의미한 이까지 다양한 삶 속에 놓여진 이들이 '행운동'이란 사내의 침입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행운동'이란 사내의 침입자가 나타난다. 서로의 삶에 일어난 변화의 이야기를 담담하고도 울컥하게, 피식 웃음이 나는가 하면 짠해서 마음이 쓰리게 하는, 객관적이고도 감정을 자제한 문체들이 '하드보일드' 라는 스타일을 정확하게 집어준다.

행운동 사내는 침입자들과의 대화 중에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의 한 구절을 읊는다. 대화든 독백이든. 그가 소개한 많은 책과 글귀는 독자에게 또 다른 자극이 되어주고, 또 다른 생각으로 파장을 일으킨 채 그대로 넘겨준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잠깐도 놓칠 수 없는, 한 자리에서 읽고 한 자리에서 멈춘 듯 멍하게 만드는, 꽤 오랜만에 느껴본 완독의 희열감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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