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박종원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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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노을의 빛 그대로를 옮겨놓은 듯한 색과 아름다운 몸짓의 두 댄서를 잔잔하게 표현한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은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읽기 시작한다. '로맨스'와 '스릴러' 가 합해진 '로맨틱 스릴러' 란 장르를 처음 접하기도 하고, '스릴러' 장르에 대해 살짝 거부감이 있기에 도전이라는 맘으로 책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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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빈. 그는 부인을 잃었다. 화재 사고로 딸을 잃은 후부터 자신의 방식으로 무던히도 지켜내기 위해 애쓰던 부인의 죽음은, 성빈에게 진실을 밝혀낼 의무감을 심어준다. 성빈이 모르던 부인의 시간과 부인이 말하고 싶었던 진실이 무엇인지 그 속으로 한걸음씩 다가간다. 부인이 보낸 시간 속에 진지하게 다가온 '댄스'라는 새로운 소재를 만나고, 성빈은 부인 지현이 마지막으로 보낸 그 시간을 만나기 위해 댄스의 세계로 입문한다.

염장이의 말이 떠올랐다. '표정을 보니 무엇인가 꼭 전할 말이 있는것 같아. 이승에서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지.'

여기에 온 흔적이었다. 며칠 전에 왔다 갔다는표시였다. 명백한 사실이었다. '아내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걸까. 아내가 없는 지금 …….'

묽게 물든 석양은 점점 엷어졌다. 잿빛 구름이 영역을 넗히고 있었다. 호랑나비의 잔상이 잿빛 구름 위에 살포시 놓인다. 드넓은 세상을 한 쌍의 호랑나비처럼 거침없이 살아가자고,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영원히 함께하자고. 청혼을 기념한 행복의 선물이었다.

아내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왜 호랑나비를 남겼는지 의문의 틈새를 좁히고, 숨겨진 사실이나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있다면 밝혀야 했다.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27쪽.

 

 

부부는 가장 가까운 관계라고 단정짓고 싶지만, 가깝지만 그 만큼의 서로 다름이 존재하는 관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하게 된다. 서로를 위한 배려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 부부 관계이지만, 그것이 때로는 서로의 다름을 방관하는 것으로 전향되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성빈과 지현이는 서로 사랑했다. 딸을 키우며 가정이란 울타리를 지키며 일상이라는 평범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현은 글쓰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여고동창의 소개로 '춤'이라는 신세계를 만나게 된다. 신세계는 말 그대로 지현의 삶에 새로운 바람으로 다가오고, 그 바람과 마주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지현은 댄스라는 세계와 손을 잡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을 눈여겨 보는 사람들 사이에 놓이게 된다. 지현이 선택하지 않은, 그 무엇도 기억나지 않은 밤, 그녀의 딸은 혼자서 부모를 기다리다 화재로 숨을 거두고 만다. 지현은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 딸이 느꼈을 공포와 외로움이 얼마나 깊었을지, 스스로 혼자의 시간을 선택하고 생을 마감한다. 딸에게 갚지 못할 미안함과 엄마로서의 불성실함 그리고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불편함이 성빈의 곁을 떠나는 것으로 정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통스러운 과거, 불행한 일을 겪고 무언가 삶의 동기를찾았다.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던 삶이, 행복을 찾아 발걸음을 띠지 못하던 현실이, 성빈을 만난 후로 점점 어떤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자신의 혼자만이 아닌 두 사람으로.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496쪽.

 

 

지현은 친구의 권유와 필요할 거라는 핑계를 채운 호기심으로 댄스를 시작하고, 성빈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지현의 시간과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알기 위해 댄스를 시작한다. 서로가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 속에서 성빈은 지현의 자취를 찾아가고, 부인이 다가갔던 문들을 하나씩 열면서 지현과 손을 잡았던 이들의 손을 기꺼이 잡는다.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은부인의 죽음과 댄스, 댄스와 가면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진실, 그 동안 내가 읽어왔던 로맨스 소설과는 또 다른 깊이를 느끼게 하며, 스릴러라는 장르가 주는 무거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가슴 떨리는 사랑이 아닌 묵직하고도 책임감이 있는 사랑으로 안정감을 주는 성빈과 지현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도는 다양한 형체를 한 사랑의 양상이 드러나면서 사랑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주어진다.

 

"보이는 것이 사실인 것만은 확실해. 사실을 전부 밝히기도 전에, 행여나 자신이 믿었던 사실이 틀릴까 두려워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지. 어쩌면, 진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미 똬리를 틀고 있는지도 몰라.

아마 우리가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거나 모를 수도 있을 거야."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577쪽.

 

부인의 죽음에 감춰진 진실을 찾기 위해 새로운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성빈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세상을 향해 진실을 쏟아내려한 댄서의 이메일 한 통, 갑작스런 부인의 죽음과 거짓으로 상처받은 댄서까지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은 '죽음과 댄스'라는 소재를 엮어낸 이야기이다.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는 묵직함과 댄스가 주는 화려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가면 속에 감춰둔 진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시간의 실체를 풀어내는 로맨틱 스릴러 소설이다.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흐르는 진실과 마주하는 또 다른 시간을 만나는,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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