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책방입니다
임후남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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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십대를 함께 한 골목길 안에 자리잡은 도서대여점은 퇴근 후 나의 쉼터가 되어준 곳이었다. 늦은 저녁까지 운영하는 그 곳은, 들어서자마자 손님을 기다리는 넓은 나무 테이블이 나를 맞이하였고, 그 곳에 앉아 대여할 책을 선택하는 과정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엄마와 딸이 운영하는 그 곳은 항상 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고, 엄마 사장님에게 책 추천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기도 하였다.

창가를 바라보는, 넓은 테이블에 앉으면 사실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멍~하게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은 유혹을 느끼곤 한다. 그 곳을 드나들면서 처음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없이 많은 이들과 책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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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피어나는 꽃이 다르고 향기가 다른, 책이랑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무엇보다 책과 참 잘 어울리는 곳, 그 곳에 시골책방이 있다. 흙 냄새가 정겹고 나무 냄새가 구수한, 숲으로 싸인 그곳에 '생각을담는집', 시골책방이 하나 있다. 바로 주말 동안 내 눈과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준 책 『시골책방입니다』 의 배경이 된 바로 그 곳이다.

자유롭게, 자기만의 숨소리를 갖고 있는 이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을 통해 배운다. 특히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틀 속에 자기를 가두지 않고, 자기의 모습을 갖고 있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자연스레 젊은 시절의 나를 돌이켜 보게 되고, 지금이라도 내 숨소리를 갖고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36쪽

도시 생활을 접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픈 꿈과 좋아하는 일, 노후를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차려낸 시골책방은, 작가이자 기자였던 임후남님이 남편님과 가꾸어가고 있는 공간이다. 책방에서의 하루 일과와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시간, 책방이기에 가능한 새로운 만남들을 담담하고도 깊이 있게 담아낸 책이 『시골책방입니다』 이다.

나도 한때 나중에 돈을 벌어, 책 한권 팔면 얼마가 남지? 하는 계산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자그마한 나만의 책방을 하나 갖고 싶은 꿈을 가졌더랬다. 난 그 꿈을 항상 소박하다고 표현해 왔는데, 동네 한 켠에 자리한 책방이 어느 날 간판을 내렸고, 도시에서 벗어난 곳에 들어선 다양한 책방을 보면서, 책방을 가꾸어가는 많은 이들의 열정이 느껴지면서 나의 꿈은 결코 소박하지도, 돈 걱정이 없다고 차려낼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에라도 그걸 알았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 여기는 요즘이다.

지금의 작은 책방들이 책을 중심으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다. 그래서 서점이라는 단어보다 동네 문화 사랑방 역활을 하는 책방이라는 단어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런 작은 책방들이 최소한 마을마다 한개씩 생긴다면. 181쪽

[중략]

작은 책방이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그것을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이런 문화를 물려주는 것은 부모의 역활이다. 187쪽

지인 한 분이 두 자녀를 키우고, 혼자서 가까운 동네부터 먼거리 동네까지,구석구석에 차려진 책방을 탐방하는 부지런함으로 일상을 즐기시는 분이 계신다. 책을 참 좋아하던 분다운 일상을 가꾸어가시는 그 분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여유가 생긴다. 잘 차려진 책방을 둘러보며 갖게 되는 여유가 얼마나 달콤하고 따스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며 땀이 차오를 때쯤 만나게 되는 책방의 모습에 환한 미소 하나 지어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용솟음쳐 온다.

요즘은 도시 한가운데에서부터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곳에 자리한 '책방'이 주인을 닮은 모습으로 차려져 그 마을의 이야기를 모으고, 마을만이 가진 냄새를 담아내는 새로운 공간으로 피어나고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할인받고 적립받고, 이벤트 당첨을 기다리는, 어설프고 욕심많은 독자인 나를 '책방'으로 마음을 기울게 한다. 『시골책방입니다』 를 읽으면서 나는 책방 주인에게 어떤 이야기를 펼쳐보일까, 나는 내 이야기를 얼마나 진솔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밤을 보낸다.

선생이 간 후 좋다는 말을 오래 생각했 다.'행복'이라는 단어는 일상으로 쓰여도 생활에서는 낯설다. 그러나 '좋다' 라는 단어는 생활 속 단어다. 책을 읽어도, 풍경을 봐도, 먹을 때도, 그림과 음악을 만나도 우리는 '좋다'라는 단어를 쓴다. 이 좋음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좋음의 순간들이 있고, 나쁨의 순간들이 있다. 순간들이 이어져 일생을 만들어내고, 그 순간들보다 좋은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199쪽

시골책방을 운영하면서, 책을 읽고, 잡초를 뽑고, 먹거리를 위한 채소를 키우고 그리고 본업으로 돌아와 책을 사고 팔고, 작가 강연회 일정을 짜고 손님을 맞이하고, 책방을 찾는 손님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들을 하나하나 곱게 접아 담아낸 책이 『시골책방입니다』 이다. '시골'과 '책방'이 하나가 된 시골책방은 말만 들어도 따듯하고 외갓집을 다녀온 푸근함이 절로 느껴진다. 시골 어르신들을 모아 시 수업을 한 박혜란 작가의 이야기와 다방을 참 좋아하는 손자 이야기, 워킹맘으로 지쳐가는 아내를 위한 책방 휴가, 책방에서 프로포즈를 계획한 손님과 커플을 바라보며 더 설레고 긴장했던 책방지기 부부의 이야기, 정혜신박사 내외의 치유를 담은 메모까지 잔잔한 이야기가 모아져 떨림으로, 감동으로 나를 둘러싼다.

시골책방, 생각을담는집에서의 하루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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