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처방전
김미영 지음 / 미문사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십대 두 소녀를 둔 엄마인 나는,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온 첫째와 사춘기라는 터널을 앞에 둔 둘째를 약간 두려운 마음으로 마중나와 있다. 두 소녀를 내 손으로 양육하면서 '엄마'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각인시켰고, 누구보다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성장해가는 소녀들의 속도만큼 엄마인 나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순간 당황스럽고, 뾰족한 답안을 내놓지 못해 맘이 복잡해지는 때가 꽤 종종 일어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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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엄마 처방전』은 남매의 엄마인 김미영님이 사춘기라는 터널 속에서 잠깐 길을 잃었던 첫째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글로 표현한 책이다. 엄마의 어깨에 힘을 불어넣어주었던 첫째와 그에 반응한 부모의 기대 그리고 욕심과 함께 찾아온 첫째의 무기력과 반항의 시간을 회상하며 그 시간에 느꼈던 흥분과 처절함을 담아 읽는 동안 이웃집 이야기같고, 지인과의 수다에서 나눌 법한 이야기들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피식 웃음이 베어나온다. 이미 한 번 지난 엄마의 여유로움일 수도 있고 또 한 번 다가옴을 기다리는, 생각만으로도 힘이 빠지는 내가 마치 바람빠진 풍선이 된 것 같아 그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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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6학년 봄부터 중학교 1학년 봄까지 만 2년에 걸쳐 사춘기 터널을 건넜다. 난 첫째의 사춘기 시간을 '파도와 같다'고 말한다. 햇볕이 쨍해도 파도는 칠 수 있고, 먹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하늘과 힘을 합해 물결이 거칠어지고, 어른들말로 대중없이 치고 들어오는 파도가 어느 날은 당황스러울 만치 평온하여 한시름 놓기도 한다. 그러다 크게 당하기도 하고. 그랬던 날들이 반복되는 동안 나는 아이의 파도를 잠잠히 받아주는 우아하고 품격있는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따지고 드는 아이의 말에 더 치열하게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었고, 싸움을 걸어오는 아이와 치열하게 싸워주었고, 말하다 터진 눈물에 함께 펑펑 울어주었다. 그리고 나보다 큰 키인 소녀를 많이 안아주면서 내가 경험한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작년 여름이 시작되면서 첫째는 가족에게 선언했다.

"나의 사춘기는 끝났어요."

라고.

 

다른 집에 비하면 수월하고 무난하게 지나간 파도지만 첫째의 선언과 함께 나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곧 예민하고 자신이 계획한 대로 움직이는 자기애가 뚜렷한 둘째의 사춘기 터널이 다가와 첫째와는 또다른 시간을 보내겠지만, 오기 전까지 난 무조건 쉬어가기 모드에 기다림을 장착하고 때를 기다릴 뿐이다. 파도가 지나고 잠깐의 휴식기인 지금, 색다르게 몰아칠 파도가 기대되는 건, 아이의 성장을 보고 싶은 엄마의 또다른 마음이 아닐까.

 

 

나는 사춘기 아이를 대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우선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욕심이 생겼다 하면 무조건 성취하기 위해 나 자신을 달달 볶는 경향이 있었는데 내 뜻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지 않음으로써 느긋한 마음이 생겼다. 두 번째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아이가 자신한테 집착하는것을 너무 부담스러워했고, 이로 인해 나도 아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써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세 번째는 아이 나름대로 서서히 독립심이 키워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림으로써 아이도 엄마에 대한 의존 경향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춘기 엄마 처방전. 45쪽

 

사춘기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견디는 시간이라고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첫째의 파도와 직면하고 있을 때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쉴새 없이 흘렀다. 내가 잘 견뎌야 한다는 의무감과 내가 첫째를 많이 안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나를 일으켜세웠는지도 모른다. 사춘기 터널을 지났다고 선언한 첫째지만, 가끔은 소녀의 표정을 살필 때가 있다. 자신이 선언한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애써 감정을 숨기고는 있지 않을까, 엄마의 포옹이 너무 얄팍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정한 마음이 엄마인 나에게는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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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 또는 부모교육 관련된 책을 정말 오랜만에 읽는다. 사춘기를 지난 소녀와 곧 겪을 소녀를 키우는 나에게 『사춘기 엄마 처방전』는 지인과 나누었던 이야기,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첫째이기에 가졌던 기대와 욕심, 엄마가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행했던 보이지 않는 횡포 그리고 반복되는 미안함과 결심들, 여전히 후회스럽고 가슴 아프게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상처만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더 깊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처 돌보지 못한 상처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는 새 아물었기에 나라는 사람이 엄마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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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엄마 처방전』은, 사춘기의 시간을 겪고 있는 많은 엄마들에게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처방전'이라는 제목에는 미흡함이 느껴져 살짝 아쉬움이 깃든다.

지금 이 순간 사춘기 아이로 마음을 다치고 있는 많은 엄마들에게, 진심을 다한 마음 처방전을 팁으로 안겨주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마음의 파도를 내려놓기 위한 좋은 책이나 음악 또는 취미를 위한 온라인 공간들을 소개하며 엄마 스스로 상처를 보듬을 기회를 주었다면,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희망과 기다림으로 발전해갈 수 있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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