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살인
엘리자베스 조지 지음, 김정민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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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사기 전 저자와 이 책의 주인공들이 시리즈로 활약하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영국의 '무슨 무슨 백작 8세' 이러는 부분은 그다지 정겹게 혀에 붙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현재 티비 시리즈로까지 만들어져서 인기리에 방송 중이라니 그 캐릭터들에 대한 흥미가 충분히 생겨나서 구매하게 되었다.

 

각기 남녀 주인공으로 나오는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려져있는 것 같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란 것은, 온갖 내전 중에서도 조용히 지켜온 마을에서,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다 아는 그 작은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또는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사건/사고들의 내용이었다.  소설의 시작은, 끔찍한 살인현장에서 잡힌 용의자가 살인을 자백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용의자의 범행을 믿을 수 없다는 암시 속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전제조건이 사실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찾기 위해서 별 것(내지는 별 일) 없어보이는 시골마을로 주인공 형사들은 들어간다.  그런데, 기껏 일이 있으면 집 나간 오리의 가출신고라든가 철없는 어린아이의 불장난 수준이어야 할 것 같은 그 곳에서, 뚜껑을 열면 열수록 감춰진 진실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생아 출산, 영아 살해, 애정에 뒤엉켜서 갖고 있는 재능을 묵혀가면서까지 시골마을에서 분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잃어버린 애정에 대한 보상으로 새로운 것을 갈구하다가 더 큰 상실감으로 갈 바를 잃은 사람 등등..  그 사이 사이 나오는 영국식 유머라고 해야하나, 영국의 고전들을 인용하며 적당히 상황을 비트는 위트는 번역자의 훌륭한 주석 덕분에, 이 우매한 독자도 함께 즐기며 웃을 수 있었다.

 

보통 추리소설을 읽으면 뒤로 갈수록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 가능하게 하는데, 이 소설은 끝까지 오리무중이었다.  심지어 결말은 오히려 허를 찔리는 느낌이었는데 결국 범인으로 드러난 이의 상처에 대한 그 사실적 묘사에, 허구임을 알고 접하는 나조차도 가슴아프게 느끼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소설의 여운으로 한동안 씁쓸하기까지 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1949년생으로, 그간 내가 주로 읽어온 추리작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편인데 책의 시대배경은 어딘지 모르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라기 보다는 몇십 년 전의 과거 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으로, 그래서 오히려 더 정겹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특히 번역가의 맛깔스러운 번역으로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다 읽어버릴 수 있었다.  간혹 하이틴 로맨스 스타일의, 남자 주인공에 대한 찬양 부분이 지루하게 나올 때는 좀 "영국인이란..."하는 느낌으로 훌쩍훌쩍 책장을 넘겨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정말 오래간만에 흥미진진하게 읽은 추리소설이었다.  이 주인공들의 다른 활약내용도 보고 싶은데, 혹시라도 거기서도 주인공들의 출신성분과 외모에 대한 지루한(?) 묘사가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정도가 유일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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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아사다 지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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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개의 단편이 실린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이다.  시대배경은 200여년 이어온 도쿠가와 막부가 시대 속으로 사라진 뒤 日王이 다시 권력의 중점으로 돌아온 메이지유신 이후.  갑자기 변모하는 사회 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요동하는 무사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에서 근대로 접어들기 전까지의 무사라는 것은, 자기가 모시는 주군을 위해서는 죽음을 불사하며 비겁함이 제일 수치스러운 일이라 여기는, 나름 기개가 있는 신분이었다.  그것이, 어느 날 자신들이 모시던 주군들이 눈 앞에서 영지를 뺏기고 성을 부수고 평민으로 격하되더니, 어제까지 시대의 그림자 마냥 존재감도 희미했던 왕이 - 사실 그래서 그 일족이 계속 왕조를 지켰지 아니면 중국이나 한국처럼 벌써 여러 번 왕조교체가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살아있는 신이랍시고 나타나더니 모든 권력을 다 회수해가고, 여태 자신들이 믿고 있었던 신념과 존재이유를 송두리채 땅에 쳐박아버리는 작업이 계속 진행된다.  믿을 거라곤 칼 한 자루에 배운 것이라곤 공병술과 전술, 그리고 우리네 양반들이 그랬던 것처럼 긍지 하나로 남루함을 견뎌내며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믿고 검술을 연마했던 이들이 갑자기 당장 할 일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그리고 현재에 그나마 무사라면 누렸을 주변의 공경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무가의 딸이었고 무가의 며느리였던 아내는 술집 작부로 나서고 검술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아버지는 땅을 파고 있든가 아니면 집안 어디선가 침잔해서 사라져 버린다.  아들들은 은근히 무시했던 상인들 밑에 들어가서 상술을 배우고 딸들은 어딘가로 팔려간다.  이렇게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며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근대화를 진행시켜야 했던 극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낯설지만은 않은 모습들이 소설 속에서 담담히 펼쳐진다.

 

 

이 중에서, 제목으로 나오는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 마무리"는 6편 중 제일 뒤에 실린 단편이다.  왜 이 이야기가 맨 뒤로 배치되었고 그 제목이 그대로 책 제목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아마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이기에 그랬을 것이라 추측된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작품이 더 다가왔다, "석류고갯길의 복수." 

 

 

뛰어난 검술을 인정받아서 모시고 있던 주군의 최측근 호위무사로 임명된 주인공은, 주군이 가마를 타고 어디론가 출타할 때는 그 가마의 호위무사로 그 주인의 안위에 대한 최종적 책임자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네들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주인이 살아있으면 같이 살아있어도 되지만 주인이 습격으로 죽는다면 그 자리에서 싸우다가 주인보다 먼저 죽든가, 아니면 주인을 대신해서 죽든가 해야지 그 반대는 허용이 안 되는 위치인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 주인공은 출타를 나선 길에 주인은 습격을 받고 동료 무사들 포함 주인마저 목이 잘렸는데, 자기는 멍하니 넋을 놓고 상처 하나 안 입고 살아남고 말았다 - 역시 그네들의 표현방식대로라면 "분하게도.." 살아남고 만 것이다, 죽을 자리에서 안 죽고 기회를 놓쳐버렸으니..  실은 바로 할복감인데 역시 무사와 무사의 아내였던 부모가 낙향한 곳에서 못난 아들을 대신해 할복하고 자살해주는 바람에 살아남아서 주군의 복수를 갚으라는 명을 받고 방출되고 만다.  그런데 어쩌나, 누가 자객들인지 알아내지도 못 했는데 그만 메이지 유신이 터지고 이제는 칼부림도 할복도 다 불법이다.   얼씨구나 하고 그냥 살아있자니 괴롭고 힘들다고 혼자 덜컥 죽자니 개죽음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면서 생계는 술집작부로 나선 아내에게 맡기고 자기는 꾸준히 자객들의 뒤를 알아보고 다닌다.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이제는 주군가문도 무사시대도 끝났으니 그만 하지 그러나 하는 말과 함께 사건 당시 이미 처리가 끝난 자객들 외 - 자살이나 또는 자수로 할복한 이들- 살아남은 자들의 근황을 듣고 그 중 한 명을 찾아간다.

 

 

둘이 조우하는 가운데, 찾아간 이도 그를 맞이하게 되는 이도 상대방이 서로 누구인지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함께 한적한 산길로 들어선다.  십여 년 전 칼부림할 때는 각기 주군의 원수, 또 주군 가문의 원수였지만 이제는 이도 저도 아닌 인생들..  메이지 유신 후 각 주인 아래 너네 편 내 편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 안에서 존재하는 그냥 같은 나라 백성들인 그들에게 또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새로운 시대/새 역사에 동참하지 못 하고 그만 그 습격사건 이후 그 날 그 자리에서 시간이 멈춘 채 살아온 유령같은 존재들이라는 것.  그러니, 죽어야 할 때 죽지 못 해서 제대로 가장 역할도 못 하면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남자와 마음의 짐을 털지 못 해서 가정조차 이루지 못 하고 그냥 부유초처럼 둥둥 흘러가 듯이 살아가는 남자에게는, 이렇게 과거와 똑바로 대면하게 된 이 순간이 차라리 고마울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난 세월의 짐을 그 자리에서 떨칠 수 있었다.  짓누르고 있던 과거의 망령들로부터 벗어나서 이름(신분/명예)에 얽매였던 모습들을 던져버리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끝부분은 묘하게 이인화 소설가의 정조대왕을 얘기한 "영원한 제국"을 연상시켰다.  먼저 떠나간 주군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 대왕이 승하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어제 헤어진 양 생생히 들리는 주인의 따뜻한 목소리..  영원한 제국을 덮으며 내 귀에도 같이 들렸던 정조대왕의 부름처럼 마무리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따스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아사다 지로의 단편들은 국경을 초월해서 사람들의 그리움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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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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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참 재미있게 보면서 이해도 다 된 일본탐정소설이다.  "이해도 다 된"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간혹 지역에 얽힌 역사나 토속신을 소재로 한 일본 탐정(또는 형사)소설들 중에서는 해당 소재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부각되느라 정작 사건 그 자체나 또는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추리과정이 많이 약식화된 느낌에 내 사고능력이 따라가지 못 한 경우들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 이건 어디까지나 내 독해능력의 문제일 테니 해당작품들에 대해서 시비를 걸 생각은 당연히 없는 것이고.. 

 

 

여하튼,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설명하고자 중언부언하며 늘어진 몇몇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숨돌리지 않고 사고를 빙자한 사건과 그 해결을 향해 달려가며, 또 사건의 무대가 되는 지역의 지형 및 전승되어 오는 지역전설들이 상당히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마치 그림으로 보여주듯 글로써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깊은 숲을 둘러싸고 외부에 단절되어 고립된 느낌의 마을들 속에서 물을 다스리는 토속신과 그를 모시는 신사들에 얽힌 과거사는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과 얽혀 으스스하게 전개된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얽힌 인연들과 애증관계에 따른 사건들이라면 공포감까지 주기는 힘들 텐데, 여기서는 악령과 같은 느낌의 그 "무언가"가 존재하므로 괴기스러운 느낌을 감지할 수 있기에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21세기에 토속신 등 무속신앙이 웬 말이냐 하고 웃어넘기기도 하겠지만, 나는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일본의 토속신들이나 신사에 "봉해졌다"는 신(영)들에 대해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경험이 원인이지만.. 

 

사실 나는 그 나라에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쭈볏한 경험을 두 번 해봤다, 그것도 환하디 환한 맑고 화창한 날씨의 대낮에.  한 번은 8년 정도 전이려나..  친구랑 휴가를 유후인으로 갔다.  머무는 작은 여관에서 다른 유명 온천여관들 지도를 받아들고 하루종일 목욕순례를 했었다.  하도 작은 마을이다보니 유명 여관들만 4~5군데 다니는데도 다 걸어다닐 수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논두렁 밭두렁 사이로 샛길로도 빠져보고..  남의 동네를 괜히 쏘다니기도 했다.  관광객이 들어오기에는 약간 떨어진 곳들이라 환한 대낮의 논두렁 밭두렁인데도 인기척 하나 없고, 그래서 더 호기롭게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작은 신사를 하나 발견했는데, 친구가 미국교포인지라 절이냐고 들어가보자고 하더라.  입장료가 있으면 안 들어갈 텐데, 워낙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작은 마을 전용 신사인가, 입구에도 사람이 없고 그냥 개방된 작은 절에 문을 통과하니 바로 사당이었다.  그런데  개방되어 놓여있는 사당 옆에 일본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옛날방식의 짚단지붕 아래 장지문은 꽁꽁 커다란 옛날식 자물쇠로 잠궈걸어둔 작은 사당인지 집이 또 있었는데, 거기를 마침 중국인 부부같은 사람들이 속을 들여다본다고 어슬렁대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사실 그게 별 거였겠냐만서도..  우스운 것은, 그들은 온 동네가 다 개방된 마을의 역시 개방된 작은 신사 안에 보란 듯이 큰 자물쇠를 걸어놓은 집이니 그 속이 궁금했을 테고, 나는 또 속을 들여다보겠다고 기웃대는 사람들을 보니 역시 호기심이 동한 것이고..  그러다보니 교포친구는 일본문화 경험을 위하여 제대로 단장된 신사의 메인빌딩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나는 그 곁다리 건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돌계단을 올라서서 꽉꽉 닫아둔 그 장지문 너머로 어떻게든 눈을 들이대고 속을 들여다보려 애쓴 순간, 시커멓게 컴컴하면서도 텅 빈 공간이 얼핏 보였는데 뭐랄까..  그 어둠에는 단순히 빛이 들어가지 않아서 존재하는 어둠 이상의 무거움이 느껴지며 그냥 오싹해졌다.  화창한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음습한 기운이 뻗어나오는..  이 곳은 "신"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악령을 "누르고자" 위치한 곳이구나 하는 느낌이 한 번에 왔다.  허둥지둥 친구를 불러서 밖으로 나가자고 무조건 끌고나가는데 마침 신사 입구에 석상이 있길래 얼핏 보니(왜 들어갈 때는 못 봤을까) 뱀 모양인 것이 뱀을 모시는 신사였던 것 같다.  그때 그 오싹했던 기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들어가기 전부터 그곳을 기웃대고 내가 뛰쳐나올 때까지 그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그 중국인 부부의 무신경함은 지금도 놀라움으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니까.   

 

또 다른 기억은..  교토에 가면 고베시와의 사이에 히에이잔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 속에는 일본에 불교를 처음 받아들인 절로 아주 유서깊고 유명한 고찰이 있다.  일본역사에서도 유명한 인물들이 전란 등 혼란기에 거쳐가고 일을 만들고 등등 일본고대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재미있는 곳인데, 5년 전쯤 혼자서 룰루랄라 그 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도 늦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깊은 산 속의 고찰이다 보니 산사 건물들이 여기저기 뚝뚝 흩어져있어서 동쪽 탑에서 서쪽 탑으로 이동하며 경내 버스를 안 탈 때는 숲 속의 산책로를 이용하여 걸어다녔는데, 사람들이 다니는 길 옆으로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공터가 얼핏 보이더라.  워낙 천년 고찰이다 보니 공터에는 또 누군가의 비석이 있을까 해서 호기심에 올려보다가 아무 생각 없이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텅 빈 그 공터에 더 이상 다가가면 안 된다는 느낌이 순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거기서 누군가가 덫에 걸리길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내가 걸어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고, 문제는 그 존재가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느낌?  '그래봐야 난 바다 건너 온 외국인인데 별 수 있겠어?' 싶은 마음에 그래도 한 번 가볼까 하며 잠시 망설였지만 더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어떤 느낌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산책로로 돌아온 뒤 되돌아보니, 그 곳의 공기만 뭔지 모르게 더 환하고 깨끗하게 보이는 것이 뭐랄까.. 더 큰 이질감이 들었었다.  마치, 쥐덫으로 유인하기 위해 먹음직한 치즈 한 덩어리로 꾀어내듯이 말이다.  

 

 

그 후 내가 일본신사들이 대해 느끼는 것은, 믿음이 현실을 만들어간다고 땅에 얽힌 토속신들과 원령들의 존재를 평생 믿으며 살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있는 나라인지라 정말 그런 존재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보니 실제로 그 나라의 신사들은 종류에 따라서는 신을 모시기도 하지만(여기서 말하는 신은 god가 아니라 spirit 정도로 하자), 경우에 따라서는 놔두면 그 지역에 해악을 입힐 수 있기에 그런 존재들을 달래거나 누르기 위해 만들어진 신사들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 이 나라에서도 풍수지리 상 기가 센 곳이거나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곳에는 암자나 절이 들어섰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을 때 그 전제조건이 별 거부감없이 그냥 감으로 젖어들어왔다, 일본인 작가가 일본이란 나라에서 지리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못 하는 외딴 마을들에서 무서운 영적 존재를 달래기 위해 존재하기 시작한 신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사고방식이나 배경이..  그리고 작가의 필력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실제로 신사에 대해서는 무서움과 경의를 함께 느끼는 일본인으로서 소설을 쓰면서도 그 경계를 묘하게 무너트리지 않고 토속신앙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얽힌 사람들의 아집과 교만을 콕 집어내어 사건을 만들고 풀어나가는 솜씨가..  덕분에 끝까지 읽고나면 소설 내용 상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지만(가령 소설 속에서  감옥에 갇혔던 편집자가 느낀 그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토속신앙의 靈性을-神性일 수는 없고- 부인하지 못 하는 작가에게 그 정도의 여지는 허용해줘야 하지 않을까.

 

 

여하튼, 인간세계와 영적 세계의 그 묘한 경계선을 오가며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 덕분에, 간만에 잠 오지 않는 밤에 별 생각없이 집어든 책으로 앉은 자리에서 새벽을 맞이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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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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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본 책.  법이 專業인 前職 검사가 작가로 轉業하며 낸 소설로 흥미를 갖게 되어 주문했다.  책의 주인공은 역시 설정 상 "前職" 검사가 상황 상 "백수"가 되어서 용의자를 형사범으로 재판에 기소할 수 있는지를 사전심리하는 자리에서 증인으로 나서며 구술하는 증언 및 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하기는 이제 한국도 그렇게 되긴 했지만) 소위 로스쿨이란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 시험을 통하여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연방제국가로 각 state마다 주법이 따로 있다보니 해당 주에 등록한 뒤로는 그 안에서 자유로이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으며, 선거제가 아닌 직위에 한해서는 검사로 지원하여 검찰에 소속될 수도 있고, 주립법원의 판사는 대부분의 경우 그 지역에서 오랜 법조인 생활을 거쳐 사회적으로 직업적으로 그 판단의 공정성과 전문성이 인정받은 법조인에 한하여 임명 또는 선거로 판사로 자리하게 된다.  그러한 법조계의 배경 하에 이 소설의 장소는 보수적이며 새로운 가정의 이동이 비교적 적은 동부의 보스턴 근처에 위치한 작은 bed town으로, 그러한 동네의 특성상 판사/검사/변호사가 얼추 지역사회에서 알려지고 또 서로 알고지내는 환경에서 일어난 한 고등학생의 피살사건에 대한 수사와 그에 얽혀들어간 현직 검사가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일으키게 되는 회상과 悔念에 대한 내용이다.  그래서인가, 소설의 진행을 따라가면서 혼자서 생각한 것은 '과연 진짜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점보다는 부모로서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자식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대응하는 자세였다.  나라면 어땠을까.. 

 

 

잡다하게 주어듣고 읽은 짧은 선무당 사람잡기식 지식으로는, 싸이코패스는 치료없이 놔둘 경우 (사회 및 가정에서의) 교육의 힘으로 어떻게든 본인의 욕망을 억제하며 사회 속에 녹아들어 살아갈 수 있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지 못 할 경우 연쇄살인범이나 기타 강력범죄의 주요범인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타인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것.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크게 될 떡갈나무가 아니라 패대기를 쳐야할 썩은 나무라도 역시 어린 시절부터 뭔가 신호를 보내는데 그 부모가 잘 모르면 이후 사회가 함께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정도?  그래서 내 자식 뿐만 아니라 주변의 아이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의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에 좀 더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내 자신을 가끔 본다.  이상하다 싶으면 피하기라도 하려고..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용의자인 제이컵은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평범하게 대해지다가 용의자로 급부상된 뒤에는 어린 시절 유난히 주변인들의 부상이 많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집안의 유전내력까지 더해져서 잠재적 싸이코패스로 보여지게 된다.   

 

 

문제는 제이컵의 "미친" 유전자가 제이컵을 유죄로 여겨지게 만드는 주요요소로 작용하는 부분.  나라면 집안의 선대들이 설사 강력범죄자들이었다고 해도 그걸로 내 자신의 몸 속에 폭력성이 흐르고 있고 그것이 내 아이들에게 유전될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미국이란 나라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연구가 더 심화되고 또 그런 연구내용이 실제 재판에서 피고나 원고 측의 논리를 보충하는 자료로 활용되어서 그런가, 이 소설에서는 나름 제이컵을 심적으로 유죄로 몰아가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 부분이 읽는 내내 납득이 안 되어 껄끄럽단 느낌이 들었다.

 

 

소설의 그런 기본전제가 옷 속의 작은 모래알갱이처럼 껄끄럽게 느껴지는 부분을 빼고는..  엄마의 마지막 결정과 그에 대해 회고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현실성을 갖고 다가왔다.  유영철, 김길태 등등 이 사회가 배출(?)해낸 기록에 남을 희대의 싸이코패스들을 생각해보면,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다 그들처럼 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남보다는 높단 점을 고려할 때, 자식을 사랑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아마 소설 속에서 제이컵의 엄마가 택한 방법이 아닐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아이가 자라나서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어른으로 성장하게끔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회에 지대한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존재로 자라날 것이란 묘한 현실감이 들 때..  부모로서 사랑하는 내 자식을 눈 앞에 두고 나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읽고나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소설이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데..  활자로 읽었을 때 다가오는 그 묘한 긴장감과 끝까지 다 읽고난 뒤에야 앞뒤 그림이 맞아떨어지게 되는 증언대 위에서의 화자의 모습을 절묘하게 영상으로도 잡아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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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그리고 역사 - 고고학과 유물, 사진과 지도로 복원해낸 성서의 세계
장-피에르 이즈부츠 지음, 이상원 옮김 / 황소자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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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예루살렘"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오직 오늘날 예루살렘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소도시에 초점을 맞추고 지리적으로 결코 그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그 도시의 역사를 썼다.  그런데 그것이 중국의 황하문명을 축으로 한 동양의 역사만 빼고는 전 인류의 문명의 발원과 역사를 다루는 내용이 되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 책 한 권 아니 예루살렘이란 곳에 대한 확고한 지식만 있으면 유럽과 중동의 역사를 다 아우를 수 있겠구나 하고 감탄하고 놀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면에서 그 책은 정말 잘 씌여진 책이고, 그 책을 잃어버린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 책은, 같은 책을 두번 사기는 싫고 새로이 그런 인문학적 고찰과 문화적 충격을 다시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구매했다.(운도 좋게 중고로 나름 합리적인 가격으로 나와있었다.)

 

책의 크기는 보통 생각하는 책보다 크다.  미술도감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진도 많다.  특히 이집트 문명과 중동에서 출현했다가 사라져간 고대의 우월했던 문명유적지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사진, 컬러화된 지도 등은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이해까지는 아니고..  난 원래 학교 다닐 때도 지리를 너무 싫어했었는데 그 이유가 지도가 싫어서였다.)  성서에서 나온 여러가지 일화들을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인류학적 측면에서 유추해내는 시도는, 아마 몇몇 기독교인들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발상이겠지만 (나름) 신자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시대상을 이해함으로써 성서에 나온 사람들의 일화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당시 선택이 납득이 되고,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장점이 있어서 나로서는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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