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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ㅣ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평점 :
간만에 참 재미있게 보면서 이해도 다 된 일본탐정소설이다. "이해도 다 된"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간혹 지역에 얽힌 역사나 토속신을 소재로 한 일본 탐정(또는 형사)소설들 중에서는 해당 소재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부각되느라 정작 사건 그 자체나 또는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추리과정이 많이 약식화된 느낌에 내 사고능력이 따라가지 못 한 경우들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 이건 어디까지나 내 독해능력의 문제일 테니 해당작품들에 대해서 시비를 걸 생각은 당연히 없는 것이고..
여하튼,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설명하고자 중언부언하며 늘어진 몇몇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숨돌리지 않고 사고를 빙자한 사건과 그 해결을 향해 달려가며, 또 사건의 무대가 되는 지역의 지형 및 전승되어 오는 지역전설들이 상당히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마치 그림으로 보여주듯 글로써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깊은 숲을 둘러싸고 외부에 단절되어 고립된 느낌의 마을들 속에서 물을 다스리는 토속신과 그를 모시는 신사들에 얽힌 과거사는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과 얽혀 으스스하게 전개된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얽힌 인연들과 애증관계에 따른 사건들이라면 공포감까지 주기는 힘들 텐데, 여기서는 악령과 같은 느낌의 그 "무언가"가 존재하므로 괴기스러운 느낌을 감지할 수 있기에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21세기에 토속신 등 무속신앙이 웬 말이냐 하고 웃어넘기기도 하겠지만, 나는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일본의 토속신들이나 신사에 "봉해졌다"는 신(영)들에 대해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경험이 원인이지만..
사실 나는 그 나라에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쭈볏한 경험을 두 번 해봤다, 그것도 환하디 환한 맑고 화창한 날씨의 대낮에. 한 번은 8년 정도 전이려나.. 친구랑 휴가를 유후인으로 갔다. 머무는 작은 여관에서 다른 유명 온천여관들 지도를 받아들고 하루종일 목욕순례를 했었다. 하도 작은 마을이다보니 유명 여관들만 4~5군데 다니는데도 다 걸어다닐 수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논두렁 밭두렁 사이로 샛길로도 빠져보고.. 남의 동네를 괜히 쏘다니기도 했다. 관광객이 들어오기에는 약간 떨어진 곳들이라 환한 대낮의 논두렁 밭두렁인데도 인기척 하나 없고, 그래서 더 호기롭게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작은 신사를 하나 발견했는데, 친구가 미국교포인지라 절이냐고 들어가보자고 하더라. 입장료가 있으면 안 들어갈 텐데, 워낙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작은 마을 전용 신사인가, 입구에도 사람이 없고 그냥 개방된 작은 절에 문을 통과하니 바로 사당이었다. 그런데 개방되어 놓여있는 사당 옆에 일본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옛날방식의 짚단지붕 아래 장지문은 꽁꽁 커다란 옛날식 자물쇠로 잠궈걸어둔 작은 사당인지 집이 또 있었는데, 거기를 마침 중국인 부부같은 사람들이 속을 들여다본다고 어슬렁대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사실 그게 별 거였겠냐만서도.. 우스운 것은, 그들은 온 동네가 다 개방된 마을의 역시 개방된 작은 신사 안에 보란 듯이 큰 자물쇠를 걸어놓은 집이니 그 속이 궁금했을 테고, 나는 또 속을 들여다보겠다고 기웃대는 사람들을 보니 역시 호기심이 동한 것이고.. 그러다보니 교포친구는 일본문화 경험을 위하여 제대로 단장된 신사의 메인빌딩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나는 그 곁다리 건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돌계단을 올라서서 꽉꽉 닫아둔 그 장지문 너머로 어떻게든 눈을 들이대고 속을 들여다보려 애쓴 순간, 시커멓게 컴컴하면서도 텅 빈 공간이 얼핏 보였는데 뭐랄까.. 그 어둠에는 단순히 빛이 들어가지 않아서 존재하는 어둠 이상의 무거움이 느껴지며 그냥 오싹해졌다. 화창한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음습한 기운이 뻗어나오는.. 이 곳은 "신"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악령을 "누르고자" 위치한 곳이구나 하는 느낌이 한 번에 왔다. 허둥지둥 친구를 불러서 밖으로 나가자고 무조건 끌고나가는데 마침 신사 입구에 석상이 있길래 얼핏 보니(왜 들어갈 때는 못 봤을까) 뱀 모양인 것이 뱀을 모시는 신사였던 것 같다. 그때 그 오싹했던 기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들어가기 전부터 그곳을 기웃대고 내가 뛰쳐나올 때까지 그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그 중국인 부부의 무신경함은 지금도 놀라움으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니까.
또 다른 기억은.. 교토에 가면 고베시와의 사이에 히에이잔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 속에는 일본에 불교를 처음 받아들인 절로 아주 유서깊고 유명한 고찰이 있다. 일본역사에서도 유명한 인물들이 전란 등 혼란기에 거쳐가고 일을 만들고 등등 일본고대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재미있는 곳인데, 5년 전쯤 혼자서 룰루랄라 그 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도 늦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깊은 산 속의 고찰이다 보니 산사 건물들이 여기저기 뚝뚝 흩어져있어서 동쪽 탑에서 서쪽 탑으로 이동하며 경내 버스를 안 탈 때는 숲 속의 산책로를 이용하여 걸어다녔는데, 사람들이 다니는 길 옆으로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공터가 얼핏 보이더라. 워낙 천년 고찰이다 보니 공터에는 또 누군가의 비석이 있을까 해서 호기심에 올려보다가 아무 생각 없이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텅 빈 그 공터에 더 이상 다가가면 안 된다는 느낌이 순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거기서 누군가가 덫에 걸리길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내가 걸어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고, 문제는 그 존재가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느낌? '그래봐야 난 바다 건너 온 외국인인데 별 수 있겠어?' 싶은 마음에 그래도 한 번 가볼까 하며 잠시 망설였지만 더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어떤 느낌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산책로로 돌아온 뒤 되돌아보니, 그 곳의 공기만 뭔지 모르게 더 환하고 깨끗하게 보이는 것이 뭐랄까.. 더 큰 이질감이 들었었다. 마치, 쥐덫으로 유인하기 위해 먹음직한 치즈 한 덩어리로 꾀어내듯이 말이다.
그 후 내가 일본신사들이 대해 느끼는 것은, 믿음이 현실을 만들어간다고 땅에 얽힌 토속신들과 원령들의 존재를 평생 믿으며 살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있는 나라인지라 정말 그런 존재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보니 실제로 그 나라의 신사들은 종류에 따라서는 신을 모시기도 하지만(여기서 말하는 신은 god가 아니라 spirit 정도로 하자), 경우에 따라서는 놔두면 그 지역에 해악을 입힐 수 있기에 그런 존재들을 달래거나 누르기 위해 만들어진 신사들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 이 나라에서도 풍수지리 상 기가 센 곳이거나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곳에는 암자나 절이 들어섰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을 때 그 전제조건이 별 거부감없이 그냥 감으로 젖어들어왔다, 일본인 작가가 일본이란 나라에서 지리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못 하는 외딴 마을들에서 무서운 영적 존재를 달래기 위해 존재하기 시작한 신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사고방식이나 배경이.. 그리고 작가의 필력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실제로 신사에 대해서는 무서움과 경의를 함께 느끼는 일본인으로서 소설을 쓰면서도 그 경계를 묘하게 무너트리지 않고 토속신앙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얽힌 사람들의 아집과 교만을 콕 집어내어 사건을 만들고 풀어나가는 솜씨가.. 덕분에 끝까지 읽고나면 소설 내용 상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지만(가령 소설 속에서 감옥에 갇혔던 편집자가 느낀 그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토속신앙의 靈性을-神性일 수는 없고- 부인하지 못 하는 작가에게 그 정도의 여지는 허용해줘야 하지 않을까.
여하튼, 인간세계와 영적 세계의 그 묘한 경계선을 오가며 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 덕분에, 간만에 잠 오지 않는 밤에 별 생각없이 집어든 책으로 앉은 자리에서 새벽을 맞이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