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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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본 책.  법이 專業인 前職 검사가 작가로 轉業하며 낸 소설로 흥미를 갖게 되어 주문했다.  책의 주인공은 역시 설정 상 "前職" 검사가 상황 상 "백수"가 되어서 용의자를 형사범으로 재판에 기소할 수 있는지를 사전심리하는 자리에서 증인으로 나서며 구술하는 증언 및 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하기는 이제 한국도 그렇게 되긴 했지만) 소위 로스쿨이란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 시험을 통하여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연방제국가로 각 state마다 주법이 따로 있다보니 해당 주에 등록한 뒤로는 그 안에서 자유로이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으며, 선거제가 아닌 직위에 한해서는 검사로 지원하여 검찰에 소속될 수도 있고, 주립법원의 판사는 대부분의 경우 그 지역에서 오랜 법조인 생활을 거쳐 사회적으로 직업적으로 그 판단의 공정성과 전문성이 인정받은 법조인에 한하여 임명 또는 선거로 판사로 자리하게 된다.  그러한 법조계의 배경 하에 이 소설의 장소는 보수적이며 새로운 가정의 이동이 비교적 적은 동부의 보스턴 근처에 위치한 작은 bed town으로, 그러한 동네의 특성상 판사/검사/변호사가 얼추 지역사회에서 알려지고 또 서로 알고지내는 환경에서 일어난 한 고등학생의 피살사건에 대한 수사와 그에 얽혀들어간 현직 검사가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일으키게 되는 회상과 悔念에 대한 내용이다.  그래서인가, 소설의 진행을 따라가면서 혼자서 생각한 것은 '과연 진짜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점보다는 부모로서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자식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대응하는 자세였다.  나라면 어땠을까.. 

 

 

잡다하게 주어듣고 읽은 짧은 선무당 사람잡기식 지식으로는, 싸이코패스는 치료없이 놔둘 경우 (사회 및 가정에서의) 교육의 힘으로 어떻게든 본인의 욕망을 억제하며 사회 속에 녹아들어 살아갈 수 있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지 못 할 경우 연쇄살인범이나 기타 강력범죄의 주요범인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타인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것.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크게 될 떡갈나무가 아니라 패대기를 쳐야할 썩은 나무라도 역시 어린 시절부터 뭔가 신호를 보내는데 그 부모가 잘 모르면 이후 사회가 함께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정도?  그래서 내 자식 뿐만 아니라 주변의 아이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의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에 좀 더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내 자신을 가끔 본다.  이상하다 싶으면 피하기라도 하려고..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용의자인 제이컵은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평범하게 대해지다가 용의자로 급부상된 뒤에는 어린 시절 유난히 주변인들의 부상이 많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집안의 유전내력까지 더해져서 잠재적 싸이코패스로 보여지게 된다.   

 

 

문제는 제이컵의 "미친" 유전자가 제이컵을 유죄로 여겨지게 만드는 주요요소로 작용하는 부분.  나라면 집안의 선대들이 설사 강력범죄자들이었다고 해도 그걸로 내 자신의 몸 속에 폭력성이 흐르고 있고 그것이 내 아이들에게 유전될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미국이란 나라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연구가 더 심화되고 또 그런 연구내용이 실제 재판에서 피고나 원고 측의 논리를 보충하는 자료로 활용되어서 그런가, 이 소설에서는 나름 제이컵을 심적으로 유죄로 몰아가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 부분이 읽는 내내 납득이 안 되어 껄끄럽단 느낌이 들었다.

 

 

소설의 그런 기본전제가 옷 속의 작은 모래알갱이처럼 껄끄럽게 느껴지는 부분을 빼고는..  엄마의 마지막 결정과 그에 대해 회고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현실성을 갖고 다가왔다.  유영철, 김길태 등등 이 사회가 배출(?)해낸 기록에 남을 희대의 싸이코패스들을 생각해보면,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다 그들처럼 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남보다는 높단 점을 고려할 때, 자식을 사랑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아마 소설 속에서 제이컵의 엄마가 택한 방법이 아닐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아이가 자라나서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어른으로 성장하게끔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회에 지대한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존재로 자라날 것이란 묘한 현실감이 들 때..  부모로서 사랑하는 내 자식을 눈 앞에 두고 나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읽고나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소설이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데..  활자로 읽었을 때 다가오는 그 묘한 긴장감과 끝까지 다 읽고난 뒤에야 앞뒤 그림이 맞아떨어지게 되는 증언대 위에서의 화자의 모습을 절묘하게 영상으로도 잡아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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