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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살인
엘리자베스 조지 지음, 김정민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사기 전 저자와 이 책의 주인공들이 시리즈로 활약하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영국의 '무슨 무슨 백작 8세' 이러는 부분은 그다지 정겹게 혀에 붙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현재 티비 시리즈로까지 만들어져서 인기리에 방송 중이라니 그 캐릭터들에 대한 흥미가 충분히 생겨나서 구매하게 되었다.
각기 남녀 주인공으로 나오는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려져있는 것 같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란 것은, 온갖 내전 중에서도 조용히 지켜온 마을에서,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다 아는 그 작은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또는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사건/사고들의 내용이었다. 소설의 시작은, 끔찍한 살인현장에서 잡힌 용의자가 살인을 자백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용의자의 범행을 믿을 수 없다는 암시 속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전제조건이 사실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찾기 위해서 별 것(내지는 별 일) 없어보이는 시골마을로 주인공 형사들은 들어간다. 그런데, 기껏 일이 있으면 집 나간 오리의 가출신고라든가 철없는 어린아이의 불장난 수준이어야 할 것 같은 그 곳에서, 뚜껑을 열면 열수록 감춰진 진실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생아 출산, 영아 살해, 애정에 뒤엉켜서 갖고 있는 재능을 묵혀가면서까지 시골마을에서 분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잃어버린 애정에 대한 보상으로 새로운 것을 갈구하다가 더 큰 상실감으로 갈 바를 잃은 사람 등등.. 그 사이 사이 나오는 영국식 유머라고 해야하나, 영국의 고전들을 인용하며 적당히 상황을 비트는 위트는 번역자의 훌륭한 주석 덕분에, 이 우매한 독자도 함께 즐기며 웃을 수 있었다.
보통 추리소설을 읽으면 뒤로 갈수록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 가능하게 하는데, 이 소설은 끝까지 오리무중이었다. 심지어 결말은 오히려 허를 찔리는 느낌이었는데 결국 범인으로 드러난 이의 상처에 대한 그 사실적 묘사에, 허구임을 알고 접하는 나조차도 가슴아프게 느끼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소설의 여운으로 한동안 씁쓸하기까지 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1949년생으로, 그간 내가 주로 읽어온 추리작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편인데 책의 시대배경은 어딘지 모르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라기 보다는 몇십 년 전의 과거 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으로, 그래서 오히려 더 정겹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특히 번역가의 맛깔스러운 번역으로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다 읽어버릴 수 있었다. 간혹 하이틴 로맨스 스타일의, 남자 주인공에 대한 찬양 부분이 지루하게 나올 때는 좀 "영국인이란..."하는 느낌으로 훌쩍훌쩍 책장을 넘겨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정말 오래간만에 흥미진진하게 읽은 추리소설이었다. 이 주인공들의 다른 활약내용도 보고 싶은데, 혹시라도 거기서도 주인공들의 출신성분과 외모에 대한 지루한(?) 묘사가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정도가 유일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