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걸 권미진의 개콘보다 재밌는 다이어트 - ‘개콘’ 보다 웃긴 에세이, 살 안 찌는 요리, 쉽고 재밌는 운동까지
권미진 지음 / 조선앤북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14년간의 비엔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오기로 마음먹었을 때 참 많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히곤 했습니다. 너무나도 다른 두 문화 가운데서 항상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고 있던 터라 어느 한 문화를 선택하기란 어렵기만 한 결정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런 결단력(?)을 가지고 한국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신랑을 참 많이 사랑했던 것 같아요 ㅎㅎ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여러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을 때 그 문제들 가운데 이상하게 껴있는 하나의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뜬금없는 "다이어트"였답니다. 인생의 기반과 그동안의 인맥, 직업과 학업 등 중요하기 그지없는 것들 생각하기도 바쁜데 갑자기 왠 다이어트? 하지만 그 때 만큼은 그 문제가 다른 문제들만큼이나(??) 심각하게 느껴졌답니다. 그 이유인즉슨 다른 사람의 외모나 자신의 외모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유럽 문화에 적응해있던지라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지나친 외모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큰 스트레스였답니다.

자기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몸매를 가꾸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관심을 가지는 일부 한국 사람들이었습니다.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면 수군수군, 뚱뚱한 사람이 지나가도 수군수군, 뭔가 유행에 맞지 않는 화장을 한 사람이 지나가도 수군수군. 개인주의 사회에서 자라나 다른 사람에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익숙했던 저에게는 (게다가 소심하기까지한 A형인지라) 이런 지나친 관심은 굉장한 스트레스였는데, "아, 이 사람들이 내 뒤에서는 나 역시 이렇게 판단하겠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나라에서야 100킬로가 넘는 여성이 이슈가 되고 지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훨씬 육중한(?) 몸매의 여성이 지나가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행여 그 분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돌아다니시면 모를까. 아마 그래도 경범죄를 묻기 위해 경찰 아저씨나 뭐라고 할 것 같네요. 다른 민족에게는 상당히 배타적인 오스트리아에서도 개개인의 취향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수군대지 않으니까요.

아무튼 이런 환경에 익숙해져있던 저에게 한국은 참 신세계였는데, 몇 년 만에 처음 만난 사람이 살쪘다고 살을 빼라고 하고, 심지어 좌판 장사를 하시던 할머니께서 제게 "저 다리에 짧은 바지를 입냐"고 하셨을 때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답니다. 당시 몸무게가 52, 53 정도였으니 통통한 편이긴 했어도 뚱뚱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희안한 경험을 많이 했네요. 친하다는 표현으로 허벅지도 꼬집고 팔살(?)을 부여잡기도 하는 한국 문화가 익숙해지기 어려워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던 그 시기 "다이어트는 어쩌지?"라는 웃지못할 고민을 했었답니다. 돌이켜보면 그저 웃음만 나오네요.

 

이제 한국에 들어온지 만 2년이 지났고 문화에도 어느정도 적응해가는 중입니다만, 다이어트는 여전히 크고 어려운 과제로 저에게 남아있답니다. 물론 "뚱뚱하다"라는 말을 듣지는 않지만, 이 악물고 성공했던 다이어트가 결혼하고 1년만에 도루묵이 되는 바람에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었으니까요. 한 번 성공하고 나니 "날씬해져야겠다"는 욕심은 더욱 커졌는데 나약하기만 한 정신과 육체 탓에 그저 "욕심"에서 끝나다보니 점점 상황이 나빠져만 가더라고요. 효과적인 단기 다이어트라는 말에 덴마크 다이어트도 레몬 디톡스 다이어트도 해봤지만 상처만 남았고, 영광의 시절(?) 스키니 진은 그저 관상용으로 변해버려 속상하기만 했습니다.

시쳇말로 "웬수같은" 다이어트. 무시하고, 없는 듯 살았으면 너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정말 그럴 수 없는 여자의 가장 큰 적이자 애증의 존재. 앞으로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살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도약을 꿈꿀 것이냐? 이런 쓸데없이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던 중 만난 책이 있는데요, 몇 년 전 개그콘서트의 코너 "헬스걸"로 엄청난 감량에 성공한 권미진씨의 다이어트 에세이였습니다. 제목부터가 새로웠는데, 다른 것도 아닌 "재미있는" 다이어트라니! 다이어트가 재미있기만 하다면 성공 못할 이유가 없겠죠? 부푼 가슴으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한 그 책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헬스걸 권미진의 개콘보다 재미있는 다이어트"입니다.

 

 

그녀가 할 수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뚱뚱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개그우먼 권미진씨는 친구들이 이름 대신 "돼지야"라고 부르는 것이 개의치 않을 정도로 놀림받는 것에도 익숙(?)했다고 합니다. 남들보다 크고 넓은(??) 탓에 생활하는데도 참 많은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 불편함을 불편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생활의 당연한 일부분이 되어있었던 것이죠. 고도비만으로 심지어 생명이 위태로워져도 오히려 그 상황을 개그 소재로 삼을만큼 그녀는 타고난 낙관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그러던 그녀가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된 계기 역시 특별한 필요성보다는 개콘 코너를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먹는 것 만큼이나 큰 즐거움이 없는 그녀에게서 먹을 것을 제한다는 것은 정말로 큰 도전이자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식사량에서 일반인조차 힘들어한다는 다이어트 식단으로 변경하고, 가까운 거리도 꼭 택시를 탔었는데 강도높은 운동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게 되었습니다. 얼만큼 괴롭고, 힘들고, 참기 힘들었을지는 아마 비장한 각오로 다이어트를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오늘의 그녀는 너무나도 달라졌습니다. 103킬로에서 51킬로로 그야말로 2분의 1이 되어버린 권미진씨. 주변에서는 성형을 했냐고 할정도로 얼굴마저 너무 달라졌습니다.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그녀의 말처럼, 친한 사람들조차 알아볼 수 없게 변해버린 그녀가 말합니다. "늦게 빠지는 살은 있어도 안 빠지는 살은 없다"고.

이 세상 수많은 다이어트 도서와 에세이 중에 권미진씨의 책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그녀가 대단히 의지가 강하고 독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책을 낸 사람들 혹은 다이어트 방법을 권하는 트레이너들은 일반인으로써는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인내와 끈기력을 보여주곤 합니다. "저렇게 하니까 당연히 빠지지"라고 말이 나올 정도로 독하디 독한 일정을 소화해낸 끝에 결실을 맺게 된 것이고요. 그런 책을 읽으면 도전을 받기 보다는 자신의 무력함과 나약함에 더욱 실망의 나락으로 빠지곤 합니다. "이러니까 나는 살이 빠질 수가 없어"라고 말이죠.

하지만 권미진씨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녀는 너무나도 평범한 "우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뭔가 독하거나 대단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물론 그녀가 이렇게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대단합니다만!) 그야말로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성공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어떠한 비법보다는 우직하게 끝까지 해보는 것. 그녀는 그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증명해보였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다이어트의 성공 비밀

다이어트의 악순환은 참 단순하면서도 치명적입니다. 단기간에 살을 뺄 수 있다는 말에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뭔가 생각했던 것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자 실망합니다. 대부분은 이 때 자제하고 참아왔던 모든 인내심이 폭발하여 오히려 폭식을 하는데요, 오히려 살 빼기 전보다 몸무게가 올라가고 푸짐해지는 비극이 되곤 합니다. 그 후에 한참을 포기하고 있다가 좀 더 강하고 좀 더 독한 단기간 다이어트가 등장하면 다시한번 혹해서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또 실망하고...

점점 불어만 가는 자신을 보면 (혹은 굳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주변이 너무 마르고 날씬하다면) 밀려오는 위기의식에 안전한 왕도보다는 일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에 혹하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있다고 하면 뭔가 더 효과가 있을 것 같고, 과장된 허위 광고 문구에 자꾸자꾸 속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그렇게 먹지 않으면 속버린다는 말에 "속이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살이 빠졌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뚱뚱한 것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아니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요요입니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시간과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요요라는 현상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게 해준 설명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팔을 꾹 쥐었다가 놓으면 피부가 건강한 이상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복귀가 되곤 하죠. 그것이 바로 요요라는 것입니다. 즉, 요요는 우리 몸이 아직 건강하다는 뜻이고, 우리가 쥐었던 팔을 놓았을 때처럼 몸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물리적으로 변화를 가하지 않는 이상 예전으로 몸이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만큼 단기간의 다이어트는 요요와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요. 평생 그 식단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면 언젠가는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다이어트의 길이 그토록 험난하고 불가능해보이기까지 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권미진씨는 바보스러울만큼 교과서적인 답을 제시합니다. 반쪽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비밀을 기대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방법은 놀라우리만큼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합니다. 생활습관을 바꾸고 식단을 조절할 것 (하지만 절대 굶지 말 것!), 건강한 몸을 위해 운동하고 무엇보다 절.대.로 스트레스 받지 말 것. 자신에게 관대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긍정적인 마음이야말로 다이어트의 첫걸음이자 필수요소라고 그녀는 강조합니다.

뚱뚱했을 때보다 오히려 점점 라인을 찾아가며 예뻐지던 그 때 그녀에게 더 큰 유혹이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돈을 들이고 물리적인 힘을 가해서라도 좀 더 빨리 좀 더 예뻐지고 싶다는 욕심 말입니다.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그저 우직하게 기본만 지키고 노력해온 그녀이기에 탈모, 생리불순, 살쳐짐 현상 등의 다이어트 부작용 없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감량에 성공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요요도 마찬가지고요.

 

땀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참 많이 속습니다. 사람에게 속고, 일에 속고, 또 시간에 속습니다. 너무 많이 속아서, 속지 않은 경험이 특별해질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처럼 불신이 기반이 된 사회이다보니 사람들은 정도(바른 길)보다는 요행을 바라고 있습니다. "열심히 해서 이러이러하게 되었대"라는 말은 이제 진부한 동화책 결말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권미진씨는 말합니다. 우리가 흘린 땀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그녀 한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그녀가 온 몸으로 체험하고 또 온 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결과입니다. 어떠한 요행이나 마법 없이 오직 신념과 노력으로만 일구어낸 그녀가 감량 후 더욱 아름다워진 것은 단순히 몸이 예뻐져서가 아니라 자신의 노력의 결실로 인한 자신감을 얻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흔히들 살을 빼면 모든 것이 해결될마냥 상상하곤 합니다만, 결국 살이 빠지고도 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살을 뺀 후에 더 의기소침해지거나 불균형한 몸과 건강에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다이어트에 성공했는데도 그 반응이 미적지근하다면 그것보다 실망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요.

그렇다면 다이어트는 신기루에 불구할까요? 뭔가 내가 살을 쪽 빼고 나면 텔레비젼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이뻐질 뿐만 아니라 그렇게 관심과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고 있다면 확실히 그것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망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권미진씨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그녀는 다이어트를 통해 물리적인 체중을 잃었을 뿐 아니라 단지 뚱뚱했기 때문에 평생 달고다녀야 했던 "자존감 부족"이라는 딱지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려 얻은 결실은 그 무엇보다도 달콤하고, 그 만족감은 그 무엇보다도 오래 지속된다고 합니다. 일확천금의 요행이 오히려 독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노력하지 않은 불로소득은 오히려 미숙한 대처에 귀결되고 이것은 심하게는 인생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비극을 초래하곤 합니다. 하루하루의 땀과 노력, 그리고 오랜 시간의 인내로 인해 무엇을 달성한 사람은 요행을 바라지 않습니다. 일을 성취했을 때의 짜릿함보다 오랜 기간의 꾸준한 노력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만 해결되면 소원이 없겠어"라고 말하곤 합니다. 과장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 때만큼은 진심이 담긴 하소연인데요,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지가 않아서 하나의 역경을 극복하면 그 다음 것이 금세 나타나곤 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죠. 이 사람만 없었으면 살 것 같은데, 없어지고 나면 금새 다른 사람과 부딛히게 됩니다.

다이어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3킬로만 빠졌으면 소원이 없겠어 했다가도 핫팬츠가 입고 싶고, 소화하기 어려운 옷도 입어보고 싶고, 나중에는 아는 사람 중 가장 날씬한 사람이 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연예인에 비교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살빼기 전보다 의기소침해지기도 합니다.

권미진씨가 끝까지 건강한 다이어트를 실행하고 또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의 마음가짐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녀는 뚱뚱했던 자신의 과거를 창피해하지도, 숨기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녀를 알던 사람들은 그녀가 체중에 관계없이 밝고 긍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조금 몸집이 컸을 뿐 다른 사람들처럼 연애도 하고 예쁜 것도 좋아하는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철저히 기본에 충실하였고 지금의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성공스토리가 그저 인생역전에 성공한 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언가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말로 평범하고 긍정적인 그녀가 우직하게 기본에 충실하여 성공한 이야기. 꼼수와 요행이 유행하는 요즘 다시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권미진의 다이어트는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시종일관 깔깔거리고 웃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건강하게 시작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다이어트라 재미있습니다. 그 목표가 꼭 날씬해져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라 재미있습니다. 10일, 30일 혹은 80일 시간을 정해두고 그 때만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평생 즐겁게 하는 것이라 재미있습니다.

언제나 꿈꾸는 "내 생애 마지막 다이어트". 즐겁고 유쾌한 생활 속의 다이어트를 꿈꾸는 분들께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의 변화"를 겪은 듯 합니다. 다이어트가 얄밉고 끔찍한 적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생활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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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가 살아야 내 몸이 산다 - 긁지만 않아도 피부질환은 낫는다
박치영.유옥희 지음 / 이상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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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건강한 피부는 외모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지향하고자 하는 "미의기준"이지만 바로 그 피부때문에 말 못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저 피부가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답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말썽만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는 피부질환자들의 애환은 "겪어본 사람들만 안다"고 할만큼 참 괴로운 것이라고 하는데, 심하면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생명을 위독하게 만들 수도 있다니 "그까짓 피부 트러블" 하고 쉽게 넘길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우리 몸에 나타나는 증상들은 참 복합적입니다. 피부 트러블이 피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몸의 독소배출 그리고 면역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것은 또 다시 우리 장의 안녕과 큰 상관이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책들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 있습니다. 그에 따라 11, 간헐적단식, 또는 장청소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독소 배출을 돕고 장의 건강을 되돌려야 한다는 의견 역시 대중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남의일"이 아닐정도로 빈번해진 아토피가 기승을 부리는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처럼 곱고 매끄러운 피부는 아니더라도 아프지 않고 건강한 피부를 가지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그동안 수많은 의사들이 책과 강연을 통해 건강한 피부를 가꾸어가는 방법을 공개하곤 하였습니다. 

항상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아무리 전문가들이라도 결국은 의견이 상이하게 갈릴 수 밖에 없기에, 우매한(?) 대중에게 서로 상반되는 정보를 알려주어 더욱 혼란스럽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서로 합의를 보고(??) 의견을 통합하여 이야기해주었으면 할 때가 있답니다. 여기선 이 말, 저기선 저 말을 듣다 보니 결국은 아무 말도 신뢰가 가지 않게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그리고 많고 많은 여러가지 의견들 가운데 오늘 한 권의 책을 더 소개할까 합니다. '읽을만큼 읽지 않았나?' 생각해왔지만 오늘의 책은 그 제목부터 제 마음을 확 사로잡았는데요, 박치영, 유옥희 선생님 공저 "피부가 살아야 내 몸이 산다"를 소개합니다.




피부? 제말 말썽만 부리지 않길


하는 일이 워낙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보니 대학에 들어가 일을 병행하다보며 스트레스는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 관계의 스트레스, 도발적이고 앞을 예측하기 힘든 업무상의 특성,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여 경쟁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감 등이 큰 원인이었는데, 그닥 변화에 익숙하지 않고 즉흥적인 일을 좋아하지 않는 A형인지라(?) 성격에 반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스트레스와 맞서야만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느덧 즐겁고 활기찬 20대가 지나고 30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스트레스는 더이상 "머리"가 아닌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답니다. 얼마 전, 일촉즉발의 긴급한 상황을 정리하면서 집에 들어와서 보니 평소에는 나지도 않던 여드름에 얼굴이 뒤덮여버렸습니다. 집에 와서 화장을 지우고 그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한참 여드름이 기승을 부리던 사춘기 시절에도 이렇게 (혹은 이거 비슷하게라도!) 많은 여드름이 얼굴을 습격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고 나면 가라앉겠지 하는 마음에 쿨링팩을 해주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 후 2주일 가량을 여드름 덕분에 참 괴로웠답니다. 하필이면 프로필 촬영, 중요한 공연 등과 겹쳐 그야말로 "떡칠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구제불능 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매끄럽고 아름다운 피부가 아니더라도 화산 분화구처럼 스팩터클하지만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희고 깨끗한 피부를 가지지 못한 것은 "컴플렉스"에 불과했지만 얼굴이 엉망이 되고 나자 거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리고 다른 것에 집중을 하지 못할만큼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게다가 이 여드름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려움증까지 유발하자 가뜩이나 날씨도 더운데 참 괴롭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세안 비누를 바꾸고 응급 처방약을 복용한 뒤 거의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그 후로 조금만 신경을 쓰고 피곤하면 하나둘씩 자꾸 고개를 내미는지라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는게 아니네요. 



믿기 싫겠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책임이다 


피부과 전문의에서부터 성형외과 전문의, 한의사, 연예인 그리고 유난히 피부가 좋은 아는 언니까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 피부를 가질 수 있을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그 방법을 스스로 실천해보곤 합니다. 혹자는 "생활 습관을 바꾸고 부지런하게 피부를 가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피부, 그건 그저 돈을 투자하는 수 밖에 없어!"라는 폭탄발언(?)을 듣기도 하는데요. 과연 이들 중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피부질환에 대한 진단은 명확한 검사 수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경험적이고 직관적인 영역의 힘을 빌려야 한다. 피부질환에 관한 한 아직까지 서양의학에서도 그 진단에 있어 체계화, 과학가 덜 된 미지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24 페이지)


이 책의 저자 박치영 그리고 유옥희 선생님은 피부질환 전문의로써 각각 생기한의원 서울 교대점과 대전점의 원장님이십니다. 때문에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피부질환 해결법 역시 한의학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한의학 책들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굳이 한의학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강조하고 있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팽팽한 대립 관계에 있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인지라 저자에 따라 서로의 단점을 꼬집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은 굳이 한의학적인 치료방법을 고집하려 하지 않고 전반적인 피부에 대한 지식과 이해에 대해 말하고 있어 오히려 신뢰가 가네요. 


명백한 원인도, 분명한 해결책도 없는 피부질환이기에 막상 자신에게 닥치고 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물론 어떤 것이 피부에 좋고 어떤 것이 나쁜지 대강 느낌으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큰 문제가 생기고 나면 그런 점차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보다는 마법 주사 한대를 꽝 맞고 스르륵 낫는 요행을 바라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때로는 주변 환경이나 자신에게 이런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을 탓하기도 합니다.


저자가 말한 대로 피부질환은 "지극히 경험적이고 직관적인 영역의 힘을 빌려야 하는" 만큼, 어떠한 슈퍼 백신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피부질환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확인된 여러가지 방법들을 병행하여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 방법의 대부분은 약도, 주사도, 새로운 테라피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생활 습관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이는 우리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생활 패턴을 바꾸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완화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식단을 조절하여 장의 건강에 유의하고 하루 충분한 양의 물을 마시며, 정기적인 운동으로 땀을 흘려 독소를 배출하는 것은 어쩌면 (피부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싱거우리만치 진부하고 (그닥 큰 피부걱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대화가 되면서 역사적으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현대 질병"이 급증한 만큼, 현대인들의 잘못된 생활 패턴에서 오는 여러가지 질병들을 막기 위해서는 바로 그 원인이 되는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해결방법이 아닐까요. 



요행을 바라지 마라 - 답은 생활 안에 있다


책을 읽으면서 뭔가 "아, 새롭다!" 라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진부하거나 한정적이라서가 아니라 워낙에 이런 저런 책들을 많이 읽어서였던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기꺼이 다른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는 자칫 어렵거나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도 친절하고 깔끔하게 설명하고 있어 읽기도 좋고 이해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책을 읽으면서 "아, 내가 생활 습관을 바꾸어야겠구나!"라고 설득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미용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피부의 건강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내장의 건강과 전반적인 면역 시스템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피부이기 때문인데요, 때문에 피부의 건강을 유의해서 살피게 되면 우리 몸에 어떤 이상이 생긴 것을 보다 빨리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간과하기 쉬운 위나 장의 건강은 오늘날처럼 높은 암 발생률 시대에서 우리가 항상 유의해야 할 사항입니다. "지금까지 괜찮았으니까" 하고 합리화할 문제가 아닌 것이, 우리의 몸은 멈추지 않고 나이들고 노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혹은 느껴지지 않게 몸에 축적되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큰 문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을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듣곤 합니다.


요즘 이러한 의학 도서의 모습을 하고 마지막 챕터에 "그러니까 한 통에 단돈 30만원인 이 마법의 약만 쓰면 다 낫는다!"고 선포하는 현대판 약장사(?) 도서들이 자꾸 눈에 띄는 가운데, 피부질환 그 자체에 집중하여 그것을 완화시킬 수 있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참 순수하다(??)고까지 느껴지네요. 마지막 4장에서는 우리 시대의 난치병이라고 알려져 있는 여러 피부질환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현재 피부질환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면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피부를 즐겁게 하는 생활 패턴으로 바꾸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선사한 참 고마운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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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회이명 - 영화 인문학 수프 시리즈 2
양선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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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합니다. 여러가지 예술 분야들이 필히 모여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영화의 특성은 영화가 발명된 이후로 영화를 사랑하고 만들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무궁무진한 영감과 기쁨, 좌절과 실망 그리고 희망을 주곤 했습니다. 모든 예술 분야가 그렇지만, 영화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를 사람들이 다양한 만큼이나 영화의 종류와 장르도 다양한데, 그렇기 때문에 한 영화를 보는 시선역시 천차만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00만 관객을 꿈꾸는 영화제작자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버라이어티"한 영화산업의 컨슈머들을 풍부하게 만족시킬 수 있을까가 대단한 관심사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취미로, 재미로 영화를 보던 사람들도 조금씩 영화에 빠지기 시작하면 영화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하기 마련입니다. 난해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거장의 작품들이 왜 영화를 아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각광받고 있는지, 어떤 작품이 시사하고 있는 바나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 파고들어가면 파고들어갈 수록 점점 더 원대해지는 것이 영화의 세계인 것 같습니다. 또한 (지나치게 상업적인 영화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영화들은 철학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서부터는 영화 세계의 기초가 되고 있는 철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곤 하죠. 


여기 바로 이런 분들의 귀가 솔깃해질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용회이명"이라는 제목부터가 참 철학적인데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날개에 적힌 설명을 읽을 때까지는 그 뜻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설명을 듣고 난 뒤에도 저자가 왜 굳이 이 제목을 선택했는지는 좀 더 생각해보야 할 듯 싶습니다. 용회이명 - "어두운 곳에서 빛은 빛난다". 영화와 철학이 만나는 그곳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겉표지 오른쪽 위의 적혀진 문구였습니다. "인문학 수프 시리즈"라니. 굳이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시리즈의 의도가 분명하게 전달되오는 느낌이더군요. 살펴보니 작가와비평 출판사에서 발간한 인문학 수프 시리즈는 모두 여섯 권으로 장졸우교 (소설), 용회이명 (영화), 이굴위신 (근간 고전), 우청우탁 (근간 문식), 감언이설 (근간 시속) 그리고 소가진설 (근간 근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언가를 수집하는데 딱히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리즈만큼은 한번 제대로 다 읽어보고 싶은 구성이더군요. 물론 그렇다고 "용회이명"이 그렇게 완벽하게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기대했던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와 이 책의 내용이 아주 맞아떨어지지 않는데 가장 큰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은이인 소설가 양선규씨는 활발한 작품 활동과 함께 문학과 소설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텍스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만큼 영화에서 그야말로 줄과 줄 사이 (between the lines) 에 숨겨진 메시지에 대한 책이 아닐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인문학"이라는 대주제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니, 그동안 스스로가 부족한 철학 지식으로 인해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하지만 "용회이명"은 영화에 대한 분석이나 영화이론, 혹은 기술에 관한 것을 기대하고 있다면 (바로 이 책을 읽기 전의 저처럼) 아쉬움이 많은 책이 될 것입니다. 일단은 한 주제에 있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깊은 내용으로 들어갈 수 있기 만무하고, 어떤 영화에 대한 통괄적인 고찰보다는 그 영화에서 저자가 느낀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주제에 여러 개의 영화가 소개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대부분의 챕터가 가장 흥미로워질 바로 그 때 여지없이 끝나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수 많은 영화들을 이렇게 정리하고 책으로 발간한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끝까지 읽고 난 뒤 마치 영화의 트레일러만 모아본 느낌이 든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특히 일반대중보다는 이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독자를 위한 특성이 강한 만큼 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네요.


그렇다고 용회이명 자체가 아쉬운 책이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분명한 기대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았다면 용회이명은 영화를 사랑하는 (특히 8~9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레퍼토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 혹은 "아, 여기에 이런 의미가 있었을 수 있겠군" 이라고 혼잣말하면서 말입니다.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글의 스타일 자체가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고 읽기 편하기 때문에 "영화는 좋은데 인문학이라니 어려울 것 같아"라는 고민은 전혀 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정자세(?)로 읽기 시작했다가 편안한 자세로 읽기를 마쳤습니다. 오래전 영화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그 영화를 소개하는 주제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 즐거웠네요. 한가지 욕심이 있다면 언젠가 "용회이명"으로 시작한 영화에 대한 저자의 고찰이 조금 더 심화되어 다시한번 우리를 찾아와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아직은 뭔가 "트레일러"의 느낌이 남아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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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가드너 수학자의 노트 - 수리 논술, 대수·조합·논리·기하
마틴 가드너 지음, 아이작 아시모프 서문, 윤금현 옮김 / 보누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그날은 12월 8일, 유럽에서는 "마리아 승천일"이라고 하여 공휴일이었습니다. 작곡 학사를 마치고 드디어 석사로 진학하면서 저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음악이론을 또 다른 전공으로 선택하여 들뜬 마음으로 세미나에 향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공휴일이었지만, 오히려 공휴일이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나 수업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마음껏(?) 열린 세미나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도 되고 기대도 많이 되었었죠. 

그 날 수업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애초에 3~4 시간 정도로 예상했던 세미나가 무려 여덟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그것도 단지 학교 문이 닫히는 관계로) 해산하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주제는 바그너 전문가인 철학가이자 음악학자 Ernst Kurth의 책 "Romantische Harmonik und ihre Krise in Wagners 'Tristan'" (바그너의 '트리스탄'에 나타난 낭만적 화성과 그 위기)였답니다. 아직 철학의 "ㅊ"자도 알지 못하던 때였기 때문에 책 전체는 커녕 서문을 읽기에도 너무너무 힘든 때였죠.

아무튼 채 열명이 되지 않는 소그룹이 황금같은 휴일에 모여 식사도 마다하고 끝까지 불꽃 튀기는 논쟁을 벌였던 그 날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음악사에서도 음악이론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바그너의 "트리스탄 코드"에 대해서 하루종일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이라고 하기에 초보였던 저의 비중은 너무나도 작았습니다만) 바그너가 어떻게 이 코드를 통해 조성음악역사에 길이 남을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토론에 열기에 매료되다가도 "도대체 이 문제를 왜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걸까?" 가끔 생각하기도 했었고요.

다들 지쳐가던 저녁즈음에 뛰어난 작곡가이자 유망한 음악이론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선배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봐. 어쩌면 이랬을지도 몰라. 바그너가 곡을 쓰려고 술도 마쳐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아무튼 피아노 앞에서 이것 저것 다 해봤는데 도저히 진도가 안나가는거야. 궁시렁거리다가 술기운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대로 앞으로 쿵! 그 때 안 넘어질라고 우연히 건드린 건반이 딱 이 코드였던거야. 그리고 그가 소리쳤겠지. '이봐! 올가! 이것좀 적어봐, 이거 끝내주는데!'.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탄생한 코드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 멍청하리만큼 진지하게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거고."


순간 교수님을 포함한 모두가 멈추지 않고 한 일이분은 웃은 것 같습니다. 그 웃음은 그렇게 열띈 토론을 펼친 우리 모습이 한심해서가 아니라, 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 그렇게 '우연히' 탄생할 수도 있었다고 주장하는 선배의 여유와 유연한 사고가 유쾌했기 때문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랬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라는 의견은 외부 사람들에게는 참 실없이 들릴지 몰라도, 어떤 학문을 파고들면 파고들 수록 점점 더 진리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화를 꼭 언급하고 싶었던 것은, 오늘 소개할 "마틴 가드너 수학자의 노트"는 이런 학문의 유쾌한 즐거움을 빼놓고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단지 책상 앞에서 그저 머리만 쓰고 있는 학문을 바라보면서 "저런 탁상공론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몰두할까" 궁금해하곤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학이나 범죄 해결을 도와주는 법의학이면 모르지만, 가끔 "도대체 누가 그런 게 궁금하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주제를 평생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나마 대학시절 학사 논문을 집필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가 무엇인지 대충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던 학생들이라면 다행이지만, 평생 무언가를 "연구"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그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어마어마한 연구지원비를 받아가며 허송세월(??)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심하게까지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야에 집착하여 몰두하는 사람을 조금 비꼬아 너드(nerd)라고 부르곤 합니다만, 남들이 비웃는 너드로 남느냐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 혁신자가 되느냐는 정말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곁을 떠났어도 오래토록 우리 마음에 남을 스티브 잡스가 그렇고 그야말로 "한심한 청년" 취급 받던 월트 디즈니도 성공하기 전에는 모두 실없는 사람 취급을 받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그저 주변 사람들이 "멋지다"고 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명문대에 진학하여 대기업에 입사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 엔딩을 가지게 될까요?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빈번하다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너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일할 때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시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연구 혹은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흔한 예로 열두 시간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가라오케에서 새벽까지 열창하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노래하고 공연하는 것, 혹은 연습하고 준비하는 것을 "일"로 생각했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퇴근 없이 24시간 내내 일하는 것이 될테니까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쉬지 않고 생각할 수 있고,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틴 가드너 또한 그런 수학 "너드"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격 공상 수학 소설 - 우주가 위험해!


이 책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하나의 공상과학소설을 연상시키는 쳅터별 발단과 전개 그리고 해결입니다. 각 챕터에서 우리는 은하계 (혹은 우주) 를 자유롭게 누비며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때로는 세 개의 우표만으로 원하는 모든 수를 얻을 수 있는 위험하지 않은(?) 문제에서부터 (물론 이 경우에도 배경은 미국이나 지구가 아니라 무려 우주식민지입니다!) 탐험 중 실종된 탐사대의 생사가 걸린 급박한(?) 문제도 등장합니다. 


하나의 수학적 문제와 가설을 제기하기 위하여 소설의 영역까지 침범한 가드너의 책은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아 이런것들도 수학적으로 풀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넘어 수학이라는 어렵고도 기이한 학문을 이처럼 유쾌하게 풀어낸 것이 너무나도 놀라웠기 때문인데요, 아직 수학에서는 어린아이들만큼이나 초보적인 저 자신의 능력이 안타깝기 그지 없었답니다. 뭔가 그가 낸 문제들을 스스로 풀어보면서 해답을 찾아가는 쾌거를 느껴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그저 역부족이더군요. 


놀랍게도 이 책의 서문은 미국의 유명한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글입니다. 이 책의 원서가 2000년 첫 발간된 것을 감안해보면 아이작 아시모프가 친애하는 동료 마틴 가드너를 위해 이미 썼던 글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1992년 타계하였으므로). 그는 서문에서 25년동안 "수학 게임" 칼럼을 연재한 마틴 가드너의 번쩍이는 재치와 수학에 관한 지식 그리고 열정을 아낌없이 칭찬합니다.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수학자들의 궁금증과 열정에 관하여도 이야기합니다. 


"어떤 이들은 '유희 수학'이나 '수학 게임'이라는 것을 약간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유희'나 '게임'일까? 관점에 따라 이것들은 전혀 가치 없는 바보짓일 수도 있다. (...) 그러나 수학자들은 이런 것에 항상 궁금증을 가진다. 모든 수학의 출발점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은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서문 중, 6 페이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글씨체 (폰트) 에서 스티브 잡스는 맥킨토시의 미래를 발견했고, 더러움과 전염병의 상징이었던 쥐는 월트 디즈니의 손을 통해 전세계 어린이의 가장 친근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작만 두고 보자면 정말 "쓸데없는" 일들이었는데 그 결과는 모두가 인정하고 놀랄만한 것이 되었고요.


학교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 수능을 위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학생들이라면 "이게 뭐야"라고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수학 공식과 그 비밀을 알아내는데도 부족한 시간인데 갑자기 행성이니 지그박사니 베이글호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상황극을 시작하나 답답해질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수학이 궁금해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제가 깨달은 사실은 이렇습니다. 그저 머리가 좋아야 하고 이해력이 빨라야 하는 학문이라고 여겼던 수학은 (아직 범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 논리이며, 문법이고, 어느무엇보다 호기심 가득한 발견인 것 같습니다. 마틴 가드너 역시 명망높은 수학자였지만 그가 가진 호기심은 마치 어린아이의 것과도 같아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그가 유명한, 인정받는 수학자였다는 배경이 없었다면 그의 이런 유희들은 "실없는" 것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글을 쓰던 그가 실제로 어떤 기분이었을지 더이상 알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확실히 "일을 해야 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써내려가는 작은 공상과학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과 한마음이 되어 그들이 처한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흥미진진한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 문제를 결국 해결했을 때 그가 느꼈을 유쾌한 즐거움과 흥분을 함께 느끼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배우고 연구해보아야겠다라는 다짐이 들었던 책입니다. 오묘한 학문인 수학을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과 시선에 유쾌해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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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밤새읽는 수학 이야기 재밌어서 밤새 읽는 시리즈
사쿠라이 스스무 지음, 조미량 옮김, 계영희 감수 / 더숲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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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천년쯤 잠들었다가 깨어난다면, 나는 무엇보다 먼저 이렇게 묻고싶다. 리만가설은 증명되었나요?"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힐베르트가 전혀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천년이나 지난 시점에 고작 알고 싶은 것이 리만가설의 증명 여부라니! 결국 힐베르트 자신은 천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잠들어 있으면서도 리만가설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 외에도 수학에 관한 주옥같은 명언들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명언들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적어도 학생들은 과연 이 명언들에 공감할까 의문이 드는 명언들이 대부분입니다. 수학자들이 남긴 명언들에는 지고지순하기까지 한 수학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오니까요. 수학을 좋아하는 몇몇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과연 교과목으로 수학을 "들어야만" 하는 학생들이 이 말들에 공감할 수 있을까요? 왠지 가능성이 낮아보입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다지만 어째서 수학에 있어서만큼은 이렇듯 극명한 두 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다른 교과목을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학생도 있고 싫어하는 학생도 있습니다만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참 많습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중학교 정도만 들어가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속출하기 시작해서 학년이 올라갈 수록 수학은 배우고 싶은, 즐거운 과목이 아니라 견뎌내야만 하는 불행한 시간이 되곤 합니다.

처음 수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수학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재미를 붙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요? 모든 것을 점수로 계산하는 학과목 제도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수학을 싫어하거나 수학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자녀들을 가지신 부모님도, 그동안 수학에 재미를 못 느꼈지만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마치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듯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요, 동기부여가 없어 수학을 꺼렸다면 정말로 반가운 책입니다. 

 

"재밌어서 밤새읽는" 시리즈가 돌아왔습니다!

 

이미 "재밌어서 밤새읽는 화학 이야기"로 그 진가를 증명한 조금은 색다른 접근방식의 이 시리즈는 학생들, 아니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어떻게"가 아니라 "왜"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시험이 있고 채점을 해야 하며 경쟁위주의 상대평가 체제에서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인색해지곤 합니다. 왜 내가 이것을 해야 하고 왜 이것이 중요한지는 잠시 접어두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잘 할지만 생각하게 되니까요.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가 바로 동기부여의 결여입니다. 자신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것을 잘 하기도 만무하고요.

"재밌어서 밤새읽는" 시리즈는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각 분야의 내노라 하는 전문가들이 집필한 이 책들은 저자 자신의 지식이나 재량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바라봅니다. 어째서 이것이 유쾌하고 재미있는 것인지 먼저 알려준다는데 있어 기존 교과목에 대한 접근과 차별화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목차 역시 특별한 연관성 없이 들쑥날쑥합니다. 우리가 익숙한 하나를 배우고 그 다음을 배우는 진행과 심층적 접근이 아닌 에피소드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계산은 열차여행 그 자체다. 이퀄은 두 개의 레일이며, 수와 수식이 레일로 이어져 간다. 레일은 일단 깔린 후에는 누구나 달릴 수 있으며 결코 녹슬지 않는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다." (들어가는 말, 9페이지 중)

 

열세 살 어린나이에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난 뒤 곧장 대학 예비학교에 합격하게 되면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지나쳐 버린" 저로서는 항상 놓친 공부가 마음에 걸리곤 합니다. 그래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후에도 다시한번 검정고시 학원에 들어갈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뭔가 그동안 너무 음악만 바라보고 산 것이 아닐까, 음악을 제대로 알려면 세상의 많은 것을 통찰하는 힘이 있어야 할텐데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결국 검정고시 학원 등록은 불발로 끝났지만 작년에 다시한번 이런 고민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뜬금없이 음향전문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 수학이 궁금해졌기 때문이죠.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기초적인 수학적 지식 없이 시험을 준비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부딪친 문제는 바로 로그함수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몰랐고, 그때만 해도 공학용 계산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쩌려는 심산이었는지 ㅎㅎ) 그야말로 난관에 봉착해 있을 때였는데, 그 때 주위의 참 많은 사람에게 로그함수를 묻곤 했습니다. 대부분이 계산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어마어마한 천재적 수학자들의 이론을 저처럼 기초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 알려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물어본 사람의 거의 전부가 "그건 상관 없고 이렇게 계산하면 돼"라는 대답을 한 것은 인상적이더군요. 천문학적인 큰 수를 이렇게 작게 줄일 수 있는데도 그 이유와 원리가 궁금하지 않다는 것에 의아했습니다.

 

"재밌어서 밤새 읽는 수학 이야기"를 읽는다면 확실히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초보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을 읽다보면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속출할테니까요. 그렇게 떠오른 질문들은 "역시 수학은 어려워, 나는 못하겠어"의 포기가 아니라 "이건 뭐고 저건 뭐라는거지? 진짜 궁금한데"라는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스스로가 그런 경지에 도달하진 못한다 할지라도 어째서 수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하나의 연구를 하고, 행여나 그 연구가 사장될까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연구과정과 결과를 넘겨주려 애쓰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 시작할테니까요. 

뭔가 쓰고나니 엄청나게 거창해졌지만 이러한 궁금증은 아주 미세하게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떻게 하면 거스름돈을 더 빨리 쉽게 계산할 수 있을까, 신용카드 번호를 한 자리라도 잘못 입력하면 어떻게 될까 등 우리 생활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주제들을 토대로 저자는 수학의 중요성과 신비 그리고 유쾌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해야만 했기에", 아니, "잘 해야만 했기에" 고역이었던 수학은 그저 숫자의 계산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는 이 책은 얼핏 관련없는 주제들을 나열해둔 것처럼 보이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수학자들의 열정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그저 복잡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어째서 평생이라는 시간을 바쳤는지 놀라워하면서요. 

 

"수학자는 다르게 표현하면 도전자다.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풀고 싶다.'라는 욕망이 새로운 이론을 차례로 탄생시킨다. 그러면 또 다른 문제가 발견된다. 즉 수학에는 문제는 '푸는 것' 이상으로 문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61 페이지) 

 

확실히 이 책은 도전자들을 자극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자극은 수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을 정복해나가는데 있어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책 앞머리 "감수의 글"에서도 말하듯 이 책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는 재밌는 수학 안내서"로써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아무래도 수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수학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맛보기" 도서이다보니 언급하고 있는 주제들을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읽고 난 뒤에 마치 엄청나게 기대되는 영화의 예고편을 본 듯한 느낌이 드실지도 모르겠네요. 바로 그 것이 이 책이 원했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호기심 그리고 관심과 함께 즐거운 수학의 세계로 첫 걸음을 내딛는 것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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