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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밤새읽는 수학 이야기 ㅣ 재밌어서 밤새 읽는 시리즈
사쿠라이 스스무 지음, 조미량 옮김, 계영희 감수 / 더숲 / 2013년 4월
평점 :
독일의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천년쯤 잠들었다가 깨어난다면, 나는 무엇보다 먼저 이렇게 묻고싶다. 리만가설은 증명되었나요?"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힐베르트가 전혀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천년이나 지난 시점에 고작 알고 싶은 것이 리만가설의 증명 여부라니! 결국 힐베르트 자신은 천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잠들어 있으면서도 리만가설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 외에도 수학에 관한 주옥같은 명언들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명언들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적어도 학생들은 과연 이 명언들에 공감할까 의문이 드는 명언들이 대부분입니다. 수학자들이 남긴 명언들에는 지고지순하기까지 한 수학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오니까요. 수학을 좋아하는 몇몇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과연 교과목으로 수학을 "들어야만" 하는 학생들이 이 말들에 공감할 수 있을까요? 왠지 가능성이 낮아보입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다지만 어째서 수학에 있어서만큼은 이렇듯 극명한 두 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다른 교과목을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학생도 있고 싫어하는 학생도 있습니다만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참 많습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중학교 정도만 들어가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속출하기 시작해서 학년이 올라갈 수록 수학은 배우고 싶은, 즐거운 과목이 아니라 견뎌내야만 하는 불행한 시간이 되곤 합니다.
처음 수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수학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재미를 붙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요? 모든 것을 점수로 계산하는 학과목 제도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수학을 싫어하거나 수학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자녀들을 가지신 부모님도, 그동안 수학에 재미를 못 느꼈지만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마치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듯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요, 동기부여가 없어 수학을 꺼렸다면 정말로 반가운 책입니다.

"재밌어서 밤새읽는" 시리즈가 돌아왔습니다!
이미 "재밌어서 밤새읽는 화학 이야기"로 그 진가를 증명한 조금은 색다른 접근방식의 이 시리즈는 학생들, 아니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어떻게"가 아니라 "왜"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시험이 있고 채점을 해야 하며 경쟁위주의 상대평가 체제에서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인색해지곤 합니다. 왜 내가 이것을 해야 하고 왜 이것이 중요한지는 잠시 접어두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잘 할지만 생각하게 되니까요.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가 바로 동기부여의 결여입니다. 자신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것을 잘 하기도 만무하고요.
"재밌어서 밤새읽는" 시리즈는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각 분야의 내노라 하는 전문가들이 집필한 이 책들은 저자 자신의 지식이나 재량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바라봅니다. 어째서 이것이 유쾌하고 재미있는 것인지 먼저 알려준다는데 있어 기존 교과목에 대한 접근과 차별화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목차 역시 특별한 연관성 없이 들쑥날쑥합니다. 우리가 익숙한 하나를 배우고 그 다음을 배우는 진행과 심층적 접근이 아닌 에피소드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계산은 열차여행 그 자체다. 이퀄은 두 개의 레일이며, 수와 수식이 레일로 이어져 간다. 레일은 일단 깔린 후에는 누구나 달릴 수 있으며 결코 녹슬지 않는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다." (들어가는 말, 9페이지 중)
열세 살 어린나이에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난 뒤 곧장 대학 예비학교에 합격하게 되면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지나쳐 버린" 저로서는 항상 놓친 공부가 마음에 걸리곤 합니다. 그래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후에도 다시한번 검정고시 학원에 들어갈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뭔가 그동안 너무 음악만 바라보고 산 것이 아닐까, 음악을 제대로 알려면 세상의 많은 것을 통찰하는 힘이 있어야 할텐데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결국 검정고시 학원 등록은 불발로 끝났지만 작년에 다시한번 이런 고민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뜬금없이 음향전문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 수학이 궁금해졌기 때문이죠.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기초적인 수학적 지식 없이 시험을 준비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부딪친 문제는 바로 로그함수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몰랐고, 그때만 해도 공학용 계산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쩌려는 심산이었는지 ㅎㅎ) 그야말로 난관에 봉착해 있을 때였는데, 그 때 주위의 참 많은 사람에게 로그함수를 묻곤 했습니다. 대부분이 계산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어마어마한 천재적 수학자들의 이론을 저처럼 기초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 알려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물어본 사람의 거의 전부가 "그건 상관 없고 이렇게 계산하면 돼"라는 대답을 한 것은 인상적이더군요. 천문학적인 큰 수를 이렇게 작게 줄일 수 있는데도 그 이유와 원리가 궁금하지 않다는 것에 의아했습니다.
"재밌어서 밤새 읽는 수학 이야기"를 읽는다면 확실히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초보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을 읽다보면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속출할테니까요. 그렇게 떠오른 질문들은 "역시 수학은 어려워, 나는 못하겠어"의 포기가 아니라 "이건 뭐고 저건 뭐라는거지? 진짜 궁금한데"라는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스스로가 그런 경지에 도달하진 못한다 할지라도 어째서 수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하나의 연구를 하고, 행여나 그 연구가 사장될까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연구과정과 결과를 넘겨주려 애쓰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 시작할테니까요.
뭔가 쓰고나니 엄청나게 거창해졌지만 이러한 궁금증은 아주 미세하게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떻게 하면 거스름돈을 더 빨리 쉽게 계산할 수 있을까, 신용카드 번호를 한 자리라도 잘못 입력하면 어떻게 될까 등 우리 생활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주제들을 토대로 저자는 수학의 중요성과 신비 그리고 유쾌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해야만 했기에", 아니, "잘 해야만 했기에" 고역이었던 수학은 그저 숫자의 계산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는 이 책은 얼핏 관련없는 주제들을 나열해둔 것처럼 보이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수학자들의 열정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그저 복잡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어째서 평생이라는 시간을 바쳤는지 놀라워하면서요.
"수학자는 다르게 표현하면 도전자다.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풀고 싶다.'라는 욕망이 새로운 이론을 차례로 탄생시킨다. 그러면 또 다른 문제가 발견된다. 즉 수학에는 문제는 '푸는 것' 이상으로 문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61 페이지)
확실히 이 책은 도전자들을 자극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자극은 수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을 정복해나가는데 있어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책 앞머리 "감수의 글"에서도 말하듯 이 책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는 재밌는 수학 안내서"로써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아무래도 수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수학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맛보기" 도서이다보니 언급하고 있는 주제들을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읽고 난 뒤에 마치 엄청나게 기대되는 영화의 예고편을 본 듯한 느낌이 드실지도 모르겠네요. 바로 그 것이 이 책이 원했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호기심 그리고 관심과 함께 즐거운 수학의 세계로 첫 걸음을 내딛는 것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