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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가드너 수학자의 노트 - 수리 논술, 대수·조합·논리·기하
마틴 가드너 지음, 아이작 아시모프 서문, 윤금현 옮김 / 보누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그날은 12월 8일, 유럽에서는 "마리아 승천일"이라고 하여 공휴일이었습니다. 작곡 학사를 마치고 드디어 석사로 진학하면서 저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음악이론을 또 다른 전공으로 선택하여 들뜬 마음으로 세미나에 향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공휴일이었지만, 오히려 공휴일이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나 수업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마음껏(?) 열린 세미나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도 되고 기대도 많이 되었었죠.
그 날 수업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애초에 3~4 시간 정도로 예상했던 세미나가 무려 여덟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그것도 단지 학교 문이 닫히는 관계로) 해산하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주제는 바그너 전문가인 철학가이자 음악학자 Ernst Kurth의 책 "Romantische Harmonik und ihre Krise in Wagners 'Tristan'" (바그너의 '트리스탄'에 나타난 낭만적 화성과 그 위기)였답니다. 아직 철학의 "ㅊ"자도 알지 못하던 때였기 때문에 책 전체는 커녕 서문을 읽기에도 너무너무 힘든 때였죠.
아무튼 채 열명이 되지 않는 소그룹이 황금같은 휴일에 모여 식사도 마다하고 끝까지 불꽃 튀기는 논쟁을 벌였던 그 날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음악사에서도 음악이론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바그너의 "트리스탄 코드"에 대해서 하루종일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이라고 하기에 초보였던 저의 비중은 너무나도 작았습니다만) 바그너가 어떻게 이 코드를 통해 조성음악역사에 길이 남을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토론에 열기에 매료되다가도 "도대체 이 문제를 왜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걸까?" 가끔 생각하기도 했었고요.
다들 지쳐가던 저녁즈음에 뛰어난 작곡가이자 유망한 음악이론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선배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봐. 어쩌면 이랬을지도 몰라. 바그너가 곡을 쓰려고 술도 마쳐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아무튼 피아노 앞에서 이것 저것 다 해봤는데 도저히 진도가 안나가는거야. 궁시렁거리다가 술기운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대로 앞으로 쿵! 그 때 안 넘어질라고 우연히 건드린 건반이 딱 이 코드였던거야. 그리고 그가 소리쳤겠지. '이봐! 올가! 이것좀 적어봐, 이거 끝내주는데!'.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탄생한 코드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 멍청하리만큼 진지하게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거고."
순간 교수님을 포함한 모두가 멈추지 않고 한 일이분은 웃은 것 같습니다. 그 웃음은 그렇게 열띈 토론을 펼친 우리 모습이 한심해서가 아니라, 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 그렇게 '우연히' 탄생할 수도 있었다고 주장하는 선배의 여유와 유연한 사고가 유쾌했기 때문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랬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라는 의견은 외부 사람들에게는 참 실없이 들릴지 몰라도, 어떤 학문을 파고들면 파고들 수록 점점 더 진리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화를 꼭 언급하고 싶었던 것은, 오늘 소개할 "마틴 가드너 수학자의 노트"는 이런 학문의 유쾌한 즐거움을 빼놓고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단지 책상 앞에서 그저 머리만 쓰고 있는 학문을 바라보면서 "저런 탁상공론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몰두할까" 궁금해하곤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학이나 범죄 해결을 도와주는 법의학이면 모르지만, 가끔 "도대체 누가 그런 게 궁금하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주제를 평생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나마 대학시절 학사 논문을 집필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가 무엇인지 대충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던 학생들이라면 다행이지만, 평생 무언가를 "연구"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그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어마어마한 연구지원비를 받아가며 허송세월(??)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심하게까지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야에 집착하여 몰두하는 사람을 조금 비꼬아 너드(nerd)라고 부르곤 합니다만, 남들이 비웃는 너드로 남느냐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 혁신자가 되느냐는 정말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곁을 떠났어도 오래토록 우리 마음에 남을 스티브 잡스가 그렇고 그야말로 "한심한 청년" 취급 받던 월트 디즈니도 성공하기 전에는 모두 실없는 사람 취급을 받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그저 주변 사람들이 "멋지다"고 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명문대에 진학하여 대기업에 입사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 엔딩을 가지게 될까요?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빈번하다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너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일할 때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시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연구 혹은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흔한 예로 열두 시간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가라오케에서 새벽까지 열창하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노래하고 공연하는 것, 혹은 연습하고 준비하는 것을 "일"로 생각했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퇴근 없이 24시간 내내 일하는 것이 될테니까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쉬지 않고 생각할 수 있고,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틴 가드너 또한 그런 수학 "너드"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격 공상 수학 소설 - 우주가 위험해!
이 책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하나의 공상과학소설을 연상시키는 쳅터별 발단과 전개 그리고 해결입니다. 각 챕터에서 우리는 은하계 (혹은 우주) 를 자유롭게 누비며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때로는 세 개의 우표만으로 원하는 모든 수를 얻을 수 있는 위험하지 않은(?) 문제에서부터 (물론 이 경우에도 배경은 미국이나 지구가 아니라 무려 우주식민지입니다!) 탐험 중 실종된 탐사대의 생사가 걸린 급박한(?) 문제도 등장합니다.
하나의 수학적 문제와 가설을 제기하기 위하여 소설의 영역까지 침범한 가드너의 책은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아 이런것들도 수학적으로 풀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넘어 수학이라는 어렵고도 기이한 학문을 이처럼 유쾌하게 풀어낸 것이 너무나도 놀라웠기 때문인데요, 아직 수학에서는 어린아이들만큼이나 초보적인 저 자신의 능력이 안타깝기 그지 없었답니다. 뭔가 그가 낸 문제들을 스스로 풀어보면서 해답을 찾아가는 쾌거를 느껴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그저 역부족이더군요.
놀랍게도 이 책의 서문은 미국의 유명한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글입니다. 이 책의 원서가 2000년 첫 발간된 것을 감안해보면 아이작 아시모프가 친애하는 동료 마틴 가드너를 위해 이미 썼던 글을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1992년 타계하였으므로). 그는 서문에서 25년동안 "수학 게임" 칼럼을 연재한 마틴 가드너의 번쩍이는 재치와 수학에 관한 지식 그리고 열정을 아낌없이 칭찬합니다.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수학자들의 궁금증과 열정에 관하여도 이야기합니다.
"어떤 이들은 '유희 수학'이나 '수학 게임'이라는 것을 약간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유희'나 '게임'일까? 관점에 따라 이것들은 전혀 가치 없는 바보짓일 수도 있다. (...) 그러나 수학자들은 이런 것에 항상 궁금증을 가진다. 모든 수학의 출발점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은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서문 중, 6 페이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글씨체 (폰트) 에서 스티브 잡스는 맥킨토시의 미래를 발견했고, 더러움과 전염병의 상징이었던 쥐는 월트 디즈니의 손을 통해 전세계 어린이의 가장 친근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작만 두고 보자면 정말 "쓸데없는" 일들이었는데 그 결과는 모두가 인정하고 놀랄만한 것이 되었고요.
학교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 수능을 위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학생들이라면 "이게 뭐야"라고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수학 공식과 그 비밀을 알아내는데도 부족한 시간인데 갑자기 행성이니 지그박사니 베이글호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상황극을 시작하나 답답해질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짧은 시간이지만 수학이 궁금해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제가 깨달은 사실은 이렇습니다. 그저 머리가 좋아야 하고 이해력이 빨라야 하는 학문이라고 여겼던 수학은 (아직 범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 논리이며, 문법이고, 어느무엇보다 호기심 가득한 발견인 것 같습니다. 마틴 가드너 역시 명망높은 수학자였지만 그가 가진 호기심은 마치 어린아이의 것과도 같아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그가 유명한, 인정받는 수학자였다는 배경이 없었다면 그의 이런 유희들은 "실없는" 것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글을 쓰던 그가 실제로 어떤 기분이었을지 더이상 알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확실히 "일을 해야 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써내려가는 작은 공상과학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과 한마음이 되어 그들이 처한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흥미진진한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 문제를 결국 해결했을 때 그가 느꼈을 유쾌한 즐거움과 흥분을 함께 느끼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배우고 연구해보아야겠다라는 다짐이 들었던 책입니다. 오묘한 학문인 수학을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과 시선에 유쾌해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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