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브레인스토밍 - 나 홀로 할 수 있는
윤상원 지음 / 광문각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쓰기를 무서워하지도, 거북해하지도 않는 편이지만 (조그맣게나마)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기획서나 제안서를 쓸 일이 참 많아졌답니다. 예전에는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막상 컴퓨터에 앉아 아이디어를 아이템으로 만들 때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해졌어요.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까 고민하는 동안 휘발성이 강한 아이디어는 이미 저편으로 날아가버리고... 창작을 하는 직업이라서 그런가 때로는 너무 진부해보이는 아이디어에 시작할 마음조차 사라지기도 했답니다. 뭔가 아이디어를 붙잡고 발전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셀프 브레인스토밍>의 저자 윤상원 씨는 발명특허의 전문가라고 해요. 창의성 및 특허 분야를 연구하시면서 많은 책을 집필하셨더라고요. 셀프 브레인스토밍 역시 저자가 기존 브레인스토밍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시대에 맞게 변형시켜 시스템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발명이라던가, 상품 개발 같은 분야에 특화되어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몇 가지 좋은 팁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저의 선입견일지도 모르지만, 정기적으로 출간하시는 저자들이 쓰신 책을 읽어보면 비록 그 양은 방대할지 몰라도 책의 내용을 한두 장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나아가자면 하나의 핵심 메시지로 압축할 수 있고요. 지극히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방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건데 첫 100 페이지 정도는 "왜 이 책을 읽어야 하고, 이 방법이 얼마나 효과적인가!" 설득당하는 느낌이거든요. 마음이 급해서 그런가 얼른 본론에 들어가 본격적인 방법에 대해 알고 싶은데 한참을 기다려야 하고, 반복해서 들어야 하고... 결국 셀프 브레인스토밍의 방법이 나올때 즈음엔 이미 약간 사기가 떨어져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드디어 본론이 나와 셀프 브레인스토밍의 베일이 벗겨진 뒤에는 다시 200 페이지 정도 반복하는 느낌이랄까... 조금씩 새로운 내용이 나오기에 끝까지 열심히 읽었지만 100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내용을 세 배 가까이 늘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연말시상식에서 대상이 누구인지 너무 뜸을 들이는 바람에 채널을 돌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듯한...

이런 분량(?)을 제외한다면 셀프 브레인스토밍의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웠어요. 특히 마지막에 (드디어!!) 나온 셀프 브레인스토밍을 통한 아이디어 발상 사례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런 구체적인 사례가 책을 통해 좀 더 많이 소개되었다면 이해하기도 편하고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듭니다. 

4차산업혁명, 창의성, 융합,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그리고 음양오행설까지...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추상적이 되어버리는 많은 개념들. 셀프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메모하고, 수집하고, 정리하여 다시 조합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오늘부터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도움을 준 책이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설 공주 살인 사건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에 돌아온 후 한국어를 다시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매주 도서관 책들을 한아름씩 빌려오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처음에는 - 워낙 아는 게 없던지라 - 고전 위주로 읽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만났어요. 이 책이 세 권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3권은 항상 대여중이어서 얼마나 간절하게(?) 반납을 기다렸는지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 권이 600쪽 분량이었는데 몇 시간만에 손에 땀을 쥐며 읽었었거든요. 

그 후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 일본 유명 작가들의 장편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인기있는 소설들은 대부분 대여중이었기에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으며 기다렸어요. 몸살이 나서 앓아눕기 전에 아픈 몸을 이끌고 도서관에서 침대에서 읽을 소설책 몇 권을 공수해왔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다가 삶이 바빠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아들이 태어나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사치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강의 준비하랴, 공부하랴...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소설이라니요. 그래서 참 오랫동안 읽고 싶어도 읽지 못했던 시간이 흘렀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다섯 살이 된 아들. 확실히 저도 여유가 많이 생겼나봐요. 정말 오랜만에 미스터리 소설책을 읽었으니 말이죠. 그것도 그렇게 좋아하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책 말이에요. 바로 제 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으로도 알려진 <백설공주 살인사건>입니다. 


흔히 동화는 많은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죠. 비디오 포털 사이트에 보면 "잔혹동화"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아는 동화들의 원버전(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해요. 대부분 눈살을 찌뿌리게 만드는 "어른용 이야기"죠.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어요. 뭐가 됐든 백설공주는 (동화와는 달리) 악역일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그런데 웬걸. 여기서 등장하는 백설공주가 두 사람이나 되니... 정말 결말을 예상하기 어려웠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곤히 자는 아들 옆에 엎드려, 북라이트에 의존해 잠시만 읽다 잘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세 시가 다 될 즈음 기어이 다 읽고 자버렸어요. 그 정도로 흡입력도 있고, 도무지 결말을 알기 전엔 책을 덮을 수 없던 마력이 있는 소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인터뷰 진행 부분과 "자료집"을 왔다갔다 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장치는, 예전 추리소설이나 두뇌회전 미스터리책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몇 페이지에 가서 정답을 확인하라" 같은 지령이 담긴 책 말이죠. 


마지막까지 범인을 예상하기 힘들었던 진실. 그리고 악의던 선의던 그것이 미디어와 SNS를 통해 왜곡되는 적나라한 과정을 보면서 문득 구토가 나기도 했답니다. 안그래도 요즘 할 일 없이 인스타그램에 기웃거리는(?) 시간이 많아 신경쓰였는데 (하는 일 때문에) 그만둘 수는 없고, 과감히 정리해야겠다 싶어 팔로잉 리스트를 훑으며 시간낭비의 원인이 되었던 많은 계정을 언팔했어요. 의미없는 좋아요와 노골적으로 맞장구를 기대하며 자신의 기분나쁜 마음을 표현하는 게시글까지 정리하고 나니 이상한 쾌감마저 밀려왔답니다. 서로 왕래가 없던 블로그 이웃까지 정리하고 나니 이제 다 되었다 싶어 잠들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너무 유명한 그림 "미디어의 진실". 미디어를 일부러 악용하거나 자신의 필요에 맞게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그런 의도가 없이도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한 것 같아요. 그런 데에 일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SNS 계정과 블로그를 정리해야 할 필요도 느낀 것 같고요. 

이 책을 읽으신 분들께 여쭤보고 싶어요. 이 소설은 과연 해피엔딩일까요? 아니, 해피엔딩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기서 조금이라도 해피한 엔딩이 되려면 어떻게 되었어야 했을까요?
미디어와 SNS의 폐해,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미 그 일부에 녹아든) 여자들의 현실, 그리고 천상 남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 소설은 끝났지만 생각은 오랫동안 고여있던 책이었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엔딩으로 만나요
샤를로테 루카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북펌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에 온 뒤 몇 년 동안은 소설을 참 많이 읽었다. 14년 동안의 언어적 공백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늦바람이 무서웠던 탓인지 때로는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전개에 도무지 책을 내려놓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자기계발서에 늪에 빠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소설을 읽는 시간은 "알찬" 독서가 아닌 시간때우기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특히 고전이 아닌 흥미 위주의 현대소설은 그랬고, 연애소설은 더더욱 그랬다!

결혼 8년 차, 법적인 신혼이 5년이라던데 이제 한국 나이로 다섯 살이 된 아들을 키우면서 우리 부부의 모습도 참 많이 달라졌다. 사랑이 식었다든가 서로 소원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연애했을 때의 불같았던 감정이 단단한 신뢰와 믿음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의미다(아마도). 아들도 좀 컸고, 살기 좀 편해져서(?)인가 요즘 남편에게 "우리 예전처럼 데이트 하자!"라고 하는 때가 많아졌다. 뭔가 다시 연애 시절처럼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몇 년 동안 쳐다도 보지 않았던(?) 연애소설을 집어들었다. 다른 연애소설이었다면 그닥 끌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해피엔딩으로 만나요"라는 제목부터 그렇고, 블로그를 하는 독일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니! (8년 전, 한국에 올 때만 해도 블로그는 관심을 구걸하는 사람들의 쓸데없는 한량같은 취미로 치부되곤 했는데 이젠 많이 달라졌나보다. 아닌가?) 왠지 빈 중심가에 있는 대형 서점에 이 책이 대략 어떤 표지로 전시되어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마 내가 그 책을 집어 계산을 하면 친구들이 "역시 쓸데없는 데 돈 쓰기로는 네가 최고"라고 시니컬하게 말해줬겠지.


커버만 봐도 여자들이 딱 좋아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본 상태라던가, 책의 색감이라던가... 양장본으로 되어있지만 딱딱하지 않은 느낌에 적당한 크기와 두께, 라운드 처리된 모서리까지. 젠더 프리까지는 아니어도 "여자는 이렇다"는 굴레를 싫어하는 나인데, 왜 이렇게 취향저격 당하는건지 ㅎㅎ 아들을재우고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이 책의 표지를 넘기는 데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엘라(에밀리아)가 블로그에 쓰는 일상과 엘라의 진짜 일상이 교차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설이지만 아주 없는 이야기를 쓰진 않았을테니까 아마 이런 블로그를 운영하고 이런 포스팅을 구독하는 여자들이 있나보다 싶었다. 댓글도 실감나고, 무엇보다 엘라가 쓰는 글이 너무 있을 법한 필체여서 유독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애초에 왜 에밀리아의 애칭이 엘라였고, 주인공 엘라의 필명이 신데렐라였는지 눈치챘어야만 했다. 신데렐라와 미녀와 야수를 교묘하게 섞어(스포일링은 여기까지만!) 현대화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역시 독자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닌 익숙한 이야기의 다른 전개(!)를 선호한다는 이론에 힘이 실렸다. 뭐 적어도 나는 그랬다. 

빼빼 말랐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안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엘라. 30대의 나이지만 양갈래 머리를 묶어도 어색하지 않은 그녀는 심지어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파워블로거. 주인공 버프(?)로 여러 남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만 정작 본인은 구름 위만 떠도는 몽상가인 메인 캐릭터 설정만 봐도, 얼마나 이 소설이 여자에 의해, 여자를 위해 쓰여졌는지 실감이 난다 (어쨌든 우리 신랑은 한 챕터 이상 절대 못 읽을 것 같다). 게다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말도 안되는) 전개까지... 맨정신으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스토리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재밌는거야?!
그만두지를 못하겠어서 새벽까지 읽었다고!

이런걸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꼭 그렇지도 않지만, 적어도 소설에서만큼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일어나고, 말도 안되는 전개로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말도 안되게 해피 엔딩이 찾아왔으면 하는 응원을 보내게 되는 소설이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찬찬히 읽지 않으면 스토리를 놓칠 정도로 급박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더욱 숨죽이고 읽게 되었던 것 같다(이게 뭐라고!). 소설이 끝난 후 엘라를 이렇게 보내기는 아쉬웠기에(?) 에필로그가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언젠가 극작가였던 지인이 해주셨던 말이 생각났다. 

이젠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 뻔한 캐릭터에 뻔한 스토리라인이라도 순간순간 어떻게 표현하고 만들어나가느냐에 따라 대중이 열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새삼 그 말이 가슴에 와닿는 책이었다. 5분 안에 스토리를 요약하면 오글오글 견딜 수 없을지 몰라도, 책을 읽는 동안 정말 즐겁고, 유쾌하고, 재미있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하는 여자들 - Dear 당신, 당신의 동료들
4인용 테이블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를 키우면서 실감한 게, "엄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여자들은 쉽게 친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군대가 이런 의미일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생판 모르던 사람도 친근하게 만드는 마술과도 같았다. 하물며 "일하는 엄마"는 오죽할까. 

물론 지금 이 순간도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고 믿고 싶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닌데,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맞벌이 가정일 정도로 일하는 여성들의 비중이 커졌다. 
물론 여성들이 일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내 주위만 하더라도 고학력에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가진 여성들이 많다. 결혼했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두거나 갑자기 현모양처 빙의를 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일을 한다고 해서 현모양처가 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일하는 여자들이 많아졌건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일하는 여자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실감하는 강도는 전혀 다르다. 프리랜서인 나도 그런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도 그럴 것이,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 어떤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질 정도로 많은 "성공적인 사례"가 없다. 가정과 직장이 양립할 수 있는 남자들의 경우처럼 말이다. 

이 책을 통해 퍼블리(http://publy.co) 서비스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발상이었다. 출판계의 클라우드펀딩이라고 해야하나. 월 멤버십을 결제하면 퍼블리 편집부가 엄선하고 검증한 콘텐츠를 웹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인데,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받는다는 특권(?)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일하는 여자들>도 이렇게 탄생한 책인데, 퍼블리 편집부와 독자들의 검증을 거쳐 종이책으로까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총 열한 명의 워킹우먼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 이 책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이 문화예술 혹은 미디어 쪽에서 종사하고 있었다. 무리도 아닌 것이, 이 프로젝트의 첫 인터뷰이이자 (아마도) 다른 인터뷰이들을 연결해 준 것으로 보이는 백은하 기자가 영화전문기자이자 에디터이기 때문이다. 그녀와 크고 작은 인연으로 만나 함께 일해온 인터뷰이들이 눈에 띄었다. 여자가 있는 곳에 여자가 더 모이기 때문일까. 아직까지도 그런 기본적인 편견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은 현재 개인 사업체를 가지고 있거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몇몇은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했다.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불규칙한 수입과 들쑥날쑥한 프로젝트에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런 사실이 이 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야 좋겠지만, 지금 원하는 만큼 넉넉하게 벌며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 여자들은 더더욱 어려운 환경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자신의 일을 개척해나간 그녀들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다. 

가장 공감이 갔던 인터뷰는 웹 매거진 <포스트 서울>을 발행하는 뉴프레스의 공동대표 우해미 씨의 말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은 뒤 일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사회적 환경이나 인프라는 좋지 않다.
내 경우는 타이밍이 프리랜서가 된 다음이었기 때문에 
시간 조율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쉽지 않지만 나는 계속 일을 할 것이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언젠가 아이는 내 품을 떠날 것이고, 
나에게는 내 삶이 있다. 
독립 후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일상의 균형을 스스로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불가능했겠지.
회사 다니면서 육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힘들지 보인다.
하지만 장단점이 있다. 나는 대신 고정 수입을 포기했다.
이런 것들을 자기 성향에 맞게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난 뒤 두 가지 걱정이 공존했다. 경력이 단절될 수 있다는, 그래서 더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 정도로 일이 많이 들어오면 어떡하지(?)라는 말도 안되는 고민. 나같은 프리랜서들은 보통 한가할 때는 정말 한가하다가 공연철이나 연말이 되면 정신없이 바쁘기 마련인데,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와 일에 치여 하루를 버티기 힘들 때가 번갈아 찾아온다. 이래저래 남편에게 미안해지고 아이에게도 미안해지는 일상의 연속이다. 

어떻게 보면 나같은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것이다. 뭔가 뚜렷한 대책이나 나아질 기미가 있다기보다는 그저 임기응변식으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녀들은 (비록 아이가 없는 미혼/기혼 여성들도 있지만) 어쨌든간에 이런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성공이 때로는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남들이 볼 때에는 정신승리(?)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첫 술에 배부를 리도 없고, 앞으로 이뤄나가야 할 것이 산더미인데 가시적인 결과에만 연연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대학원 시절 내 가장 친한 친구는 페미니스트였고 동시에 바이섹슈얼이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선입견을버리고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고 자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거창하게 여자들의 인권이나 동등한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대가 변하고 있고 우리 사회는 그에 맞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하는 여자들이, 엄마들이 사회에서 입지가 좁고 힘든 것은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선 먼저 그 길을 간 여성들의 경험담이 큰 자산이 된다. 뒤에 따라가는 많은 후배들이 참고하거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자산. 그런 면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행 피하기 기술 - 영리하게 인생을 움직이는 52가지 비밀
롤프 도벨리 지음, 엘 보초 그림, 유영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롤프 도벨리. 그는 도대체 누구기에 이런 엄청난 통찰력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사실 <불행 피하기 기술>이라는 제목이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뭔가 수동적이면서도 염세주의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살기에도 힘든 삶인데 <불행 피하기 기술>이라고 하면 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일 간신히 불행을 피하고 있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오스트리아에 살던 시절 즐겨보던 진보언론 슈피겔(Spiegel)이 선정한 논픽션 분야 1위라는 부가설명 때문이었다. 책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이 책의 원제. “Die Kunst des guten Lebens”. 직역하면 “좋은 인생을 사는 법” 정도가 될 것이다. Kunst는 이 경우에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단어의 원래 의미는 “예술”이니, 이번만큼은 올바르지 않더라도 “좋은 삶이라는 예술”이라고 의역해보고도 싶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체감하게 되는 것은 문화의 장벽이 아닐까. 아무래도 서로 다른 문화권 안에서 살아가다 보니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거북하거나 어색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거의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놀라우리만치 지금 한국의 상황에 필요한 조언들이 아닐까 싶었다.


한두 챕터를 읽고 심상치 않은(?) 느낌에 밑줄을 치기 시작했는데,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아 어느새 빨간 선이 난무하게 되었다. 한 파트가 끝날 때마다 목차로 돌아가 하나하나를 기억하려 복습(?)을 했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먼저 끝까지 한 번 읽고 저자의 조언처럼 차근차근 한 번 더 읽기로 했다. 두 번째에는 밑줄 친 부분 중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글로 정리하며 읽었더니 좀 더 기억에 남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말한 것처럼 2018년 내 특별한 독서카드에 분명히 남겨야 할 책을 발견한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난 아직 만 40세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런저런 많은 책들을 읽어야 하겠지만, 이 책은 이후에도 몇 번 더 읽으며 그의 말들을 곱씹어보아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동의하고 싶지 않았던 조언 하나. 도벨리는 맹목적 열정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가슴뛰는 소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커다란 환상 중 하나”라고 못박았다. 물론 그의 주장은 꿈을 꾸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꿈을 꾸어야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순히 과학이나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잠재력을 믿는다. 때론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그것을 굳건히 믿고 자신의 마음을 지켜나갈 때에 불가능도 가능이 될 수 있다는 잠재력. 치기어린 로망스일진 몰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믿음과 소명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소명”없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에는 그에게 전적으로 동의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지 않는다면 그만큼 좌절하고 실망할 일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생각만큼은 어떤 재갈도 물리지 않고 자유롭게 날고 싶은 지금의 나로서는 - 그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 조금은 더 비현실적인 소명을 가지고 하루하루 힘차게 비상하는 꿈을 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