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자들 - Dear 당신, 당신의 동료들
4인용 테이블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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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실감한 게, "엄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여자들은 쉽게 친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군대가 이런 의미일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생판 모르던 사람도 친근하게 만드는 마술과도 같았다. 하물며 "일하는 엄마"는 오죽할까. 

물론 지금 이 순간도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고 믿고 싶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닌데,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맞벌이 가정일 정도로 일하는 여성들의 비중이 커졌다. 
물론 여성들이 일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 내 주위만 하더라도 고학력에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가진 여성들이 많다. 결혼했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두거나 갑자기 현모양처 빙의를 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일을 한다고 해서 현모양처가 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일하는 여자들이 많아졌건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일하는 여자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실감하는 강도는 전혀 다르다. 프리랜서인 나도 그런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도 그럴 것이,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 어떤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질 정도로 많은 "성공적인 사례"가 없다. 가정과 직장이 양립할 수 있는 남자들의 경우처럼 말이다. 

이 책을 통해 퍼블리(http://publy.co) 서비스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발상이었다. 출판계의 클라우드펀딩이라고 해야하나. 월 멤버십을 결제하면 퍼블리 편집부가 엄선하고 검증한 콘텐츠를 웹으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인데,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받는다는 특권(?)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일하는 여자들>도 이렇게 탄생한 책인데, 퍼블리 편집부와 독자들의 검증을 거쳐 종이책으로까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총 열한 명의 워킹우먼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 이 책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이 문화예술 혹은 미디어 쪽에서 종사하고 있었다. 무리도 아닌 것이, 이 프로젝트의 첫 인터뷰이이자 (아마도) 다른 인터뷰이들을 연결해 준 것으로 보이는 백은하 기자가 영화전문기자이자 에디터이기 때문이다. 그녀와 크고 작은 인연으로 만나 함께 일해온 인터뷰이들이 눈에 띄었다. 여자가 있는 곳에 여자가 더 모이기 때문일까. 아직까지도 그런 기본적인 편견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은 현재 개인 사업체를 가지고 있거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몇몇은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했다.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불규칙한 수입과 들쑥날쑥한 프로젝트에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런 사실이 이 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야 좋겠지만, 지금 원하는 만큼 넉넉하게 벌며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 여자들은 더더욱 어려운 환경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자신의 일을 개척해나간 그녀들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다. 

가장 공감이 갔던 인터뷰는 웹 매거진 <포스트 서울>을 발행하는 뉴프레스의 공동대표 우해미 씨의 말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은 뒤 일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사회적 환경이나 인프라는 좋지 않다.
내 경우는 타이밍이 프리랜서가 된 다음이었기 때문에 
시간 조율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쉽지 않지만 나는 계속 일을 할 것이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언젠가 아이는 내 품을 떠날 것이고, 
나에게는 내 삶이 있다. 
독립 후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일상의 균형을 스스로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불가능했겠지.
회사 다니면서 육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힘들지 보인다.
하지만 장단점이 있다. 나는 대신 고정 수입을 포기했다.
이런 것들을 자기 성향에 맞게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난 뒤 두 가지 걱정이 공존했다. 경력이 단절될 수 있다는, 그래서 더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 정도로 일이 많이 들어오면 어떡하지(?)라는 말도 안되는 고민. 나같은 프리랜서들은 보통 한가할 때는 정말 한가하다가 공연철이나 연말이 되면 정신없이 바쁘기 마련인데,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와 일에 치여 하루를 버티기 힘들 때가 번갈아 찾아온다. 이래저래 남편에게 미안해지고 아이에게도 미안해지는 일상의 연속이다. 

어떻게 보면 나같은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것이다. 뭔가 뚜렷한 대책이나 나아질 기미가 있다기보다는 그저 임기응변식으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녀들은 (비록 아이가 없는 미혼/기혼 여성들도 있지만) 어쨌든간에 이런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성공이 때로는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남들이 볼 때에는 정신승리(?)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첫 술에 배부를 리도 없고, 앞으로 이뤄나가야 할 것이 산더미인데 가시적인 결과에만 연연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대학원 시절 내 가장 친한 친구는 페미니스트였고 동시에 바이섹슈얼이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선입견을버리고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고 자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거창하게 여자들의 인권이나 동등한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대가 변하고 있고 우리 사회는 그에 맞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하는 여자들이, 엄마들이 사회에서 입지가 좁고 힘든 것은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선 먼저 그 길을 간 여성들의 경험담이 큰 자산이 된다. 뒤에 따라가는 많은 후배들이 참고하거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자산. 그런 면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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