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공주 살인 사건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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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온 후 한국어를 다시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매주 도서관 책들을 한아름씩 빌려오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처음에는 - 워낙 아는 게 없던지라 - 고전 위주로 읽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만났어요. 이 책이 세 권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3권은 항상 대여중이어서 얼마나 간절하게(?) 반납을 기다렸는지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 권이 600쪽 분량이었는데 몇 시간만에 손에 땀을 쥐며 읽었었거든요. 

그 후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 일본 유명 작가들의 장편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인기있는 소설들은 대부분 대여중이었기에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으며 기다렸어요. 몸살이 나서 앓아눕기 전에 아픈 몸을 이끌고 도서관에서 침대에서 읽을 소설책 몇 권을 공수해왔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다가 삶이 바빠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아들이 태어나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사치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강의 준비하랴, 공부하랴...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 소설이라니요. 그래서 참 오랫동안 읽고 싶어도 읽지 못했던 시간이 흘렀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다섯 살이 된 아들. 확실히 저도 여유가 많이 생겼나봐요. 정말 오랜만에 미스터리 소설책을 읽었으니 말이죠. 그것도 그렇게 좋아하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책 말이에요. 바로 제 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으로도 알려진 <백설공주 살인사건>입니다. 


흔히 동화는 많은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죠. 비디오 포털 사이트에 보면 "잔혹동화"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아는 동화들의 원버전(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해요. 대부분 눈살을 찌뿌리게 만드는 "어른용 이야기"죠.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어요. 뭐가 됐든 백설공주는 (동화와는 달리) 악역일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그런데 웬걸. 여기서 등장하는 백설공주가 두 사람이나 되니... 정말 결말을 예상하기 어려웠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곤히 자는 아들 옆에 엎드려, 북라이트에 의존해 잠시만 읽다 잘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세 시가 다 될 즈음 기어이 다 읽고 자버렸어요. 그 정도로 흡입력도 있고, 도무지 결말을 알기 전엔 책을 덮을 수 없던 마력이 있는 소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인터뷰 진행 부분과 "자료집"을 왔다갔다 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장치는, 예전 추리소설이나 두뇌회전 미스터리책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몇 페이지에 가서 정답을 확인하라" 같은 지령이 담긴 책 말이죠. 


마지막까지 범인을 예상하기 힘들었던 진실. 그리고 악의던 선의던 그것이 미디어와 SNS를 통해 왜곡되는 적나라한 과정을 보면서 문득 구토가 나기도 했답니다. 안그래도 요즘 할 일 없이 인스타그램에 기웃거리는(?) 시간이 많아 신경쓰였는데 (하는 일 때문에) 그만둘 수는 없고, 과감히 정리해야겠다 싶어 팔로잉 리스트를 훑으며 시간낭비의 원인이 되었던 많은 계정을 언팔했어요. 의미없는 좋아요와 노골적으로 맞장구를 기대하며 자신의 기분나쁜 마음을 표현하는 게시글까지 정리하고 나니 이상한 쾌감마저 밀려왔답니다. 서로 왕래가 없던 블로그 이웃까지 정리하고 나니 이제 다 되었다 싶어 잠들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너무 유명한 그림 "미디어의 진실". 미디어를 일부러 악용하거나 자신의 필요에 맞게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그런 의도가 없이도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한 것 같아요. 그런 데에 일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SNS 계정과 블로그를 정리해야 할 필요도 느낀 것 같고요. 

이 책을 읽으신 분들께 여쭤보고 싶어요. 이 소설은 과연 해피엔딩일까요? 아니, 해피엔딩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기서 조금이라도 해피한 엔딩이 되려면 어떻게 되었어야 했을까요?
미디어와 SNS의 폐해,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미 그 일부에 녹아든) 여자들의 현실, 그리고 천상 남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 소설은 끝났지만 생각은 오랫동안 고여있던 책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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