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귀신이 산다 1 - 사람들을 겁주고 싶어 책고래아이들 34
정설아 지음, 한상희 그림 / 책고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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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왜 그렇게 귀신과 요괴에 관심이 많은 걸까요? ㅎㅎ 겁이 많은 편인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이제서야 신비아파트를 무리없이(?) 보게 되었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 뒤에 숨어서 간신히 보고나면 무섭다고 같이 자자고 성화였거든요.
아무리 재미라지만 귀신 이야기를 하는게 좋아보이지 않아 저는 별로 달가워하는 편은 아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먼저 귀신 이야기를 읽어보자고 책 한 권을 가져왔어요! 아직까지 학습만화에만 머물러 있는 아들에게 제법 글밥이 있는 책을 권하고 싶기도 했고, 흥미 위주의 귀신만화보다는 우리나라 전통 민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설화에는 여러 캐릭터의 탄생비화와 함께 조상들의 생각과 생활양식까지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 면에서 <우리 집에 귀신이 산다>는 적절한(?) 글밥 인문책이 될 것 같았어요. 저희가 읽은 건 그 첫 번째 이야기 <1. 사람들을 겁주고 싶어> 입니다.

딱 초등학생이 읽을 정도의 글밥이고 챕터도 짧게 짧게 나뉘어져 있어 읽는 데 부담도 없어요. 적절하게 만화 같은 삽화가 섞여 있어 궁금증이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저희 때는 안 그런 것 같은데 워낙 어려서부터 미디어에 익숙하게 자란 세대여서인가 "얘는 어떻게 생겼어요?"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ㅎㅎ
책 초반에는 등장하는 귀신들이 정리되어 있어 찾아보기 좋아요. 이렇게 보니 예전에 신과 함께 만화를 읽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때도 우리나라 설화에 등장하는 귀신의 종류와 지옥이 이렇게나 많은지 놀랐었는데 말이죠.

원래 계획은 첫 권을 읽은 아들이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2권도 사달라고 조르는 거였는데... 아들이 읽기엔 아직 좀 두꺼운 책이었나봐요. 1권만으로도 굉장히 만족한 나머지 읽은 걸 또 읽고 또 읽고 하더라고요. 역시 귀신 이야기는 음미하면서 읽는 건지...
그래도 꽤나 글이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입니다. 아들처럼 글에 익숙하지 않은 초등학생들도 워낙 아이들이 좋아하는 주제인지라 진입장벽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같이 읽은 엄마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아들도 같이 궁금해질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는 걸로!


PS. 귀신들이 봐주는(?) 운세카드가 동봉되어 있어요. 물론 책의 부록에는 관심이 없는 저희집에서는 곧장 찬밥 신세였지만 의외로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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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대하는 아름다운 방식
유강 지음, 공서연 그림 / 아름다운사람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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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 듣고 모범적으로 자란 사람일수록 실수를 하게 되거나 민망한 상황이 생기면 더욱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하면 실수를 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도, 실수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은 참 순하고 모범적인 아이입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말썽을 피운 적도 없고, 친구와 크게 싸운 적도 없고 말이죠. 처음엔 그게 그저 감사하고 다행스럽게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염려가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학년이 올라가고 점점 해야 할 것이 많아지면서 아쉬운 소리를 들을 때가 생겼는데 그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아들을 보면서, 차라리 더 어렸을 때부터 시행착오를 하며 자랐다면 조금은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었답니다. 뭐, 제가 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이럴땐 백 마디의 잔소리보다 하나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크고 깊은 법입니다. 아들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이 있어 가져와봤어요. 유강 글, 공서연 그림의 <잘못을 대하는 아름다운 방식>이라는 창작동화입니다.


글밥이 많은 책은 안 읽으려 하는 아들이지만 초반부터 긴장감 있게 흘러가는 스토리 덕에 금방 빠져들었어요. 원래는 초반 몇 챕터만 읽자고 했는데 꼭 끝까지 읽겠다고 하지 뭐에요 ㅎㅎ 가상의 인디언 부족 소년이라는 이국적인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참으로 아이다운 마음으로 이웃마을의 여우를 훔치는 과정이 정말 공감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 한창 이것 저것 가지고 싶은 게 많은 아들이거든요.


초반부는 이투아가 화살통이 가지고 싶어 여우를 훔치는 사건이 가쁘게 흘러가고 중반부터는 잘못을 저지른 이투아를 위한 특별한 "의식"이 시작됩니다.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이투아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며, 그가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아이인지 증언했어요. 실존하는 의식인지 모르겠지만 참 멋진 생각인 것 같아요. 이투아는 이미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잘못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을 잘 해결하여 극복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죠.

마을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은 이투아는 댓가를 원하는 이웃 마을 족장에게도 용서를 받습니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지만요. 아들과 함께 이런 과정을 공유하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되었어요. 바른 마음을 가지고 좋은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만사형통할 순 없으니까 말이죠.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아이를 교육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자아감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수많은 선택지 중 옳은 것을 선택하는 이유가 혼나지 않기 위해서라던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은 옳은 길을 선택할만한 사람이라는 자아감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잘못을 대하는 아름다운 방식>은 이투아의 짧지만 굵은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가 이투아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하며 상황에 공감하고 충분히 생각해나갈 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아요. 사람은 - 이투아처럼 "괜찮고 멋진" 아이도 -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중요한 건 실수한 그 다음이라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이야기에요.


글밥을 별로 안 좋아하는 3학년 남자아이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고, 잘 읽히는 문장 덕에 아들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읽었습니다. 아들과 한동안 흥미위주의 책들만 읽다가 간만에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책을 만나 감사한 마음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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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과학 대탐험 1 : 우주와 행성 - 정재승 추천 과학 영재들을 위한 흥미진진한 지적 모험 디즈니 과학 대탐험 1
에드위지 페출리 외 글, 권보라 옮김, 빅 히어로 원작, 정재승 추천 / 라곰스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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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아들이 3학년이 될 즈음엔 글이 빽빽하게 적힌 책을 읽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만 -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는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아들은 글밥있는 책을 읽으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책을 가지고 씨름을 하다보면 괜히 독서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쌓이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아이의 흥미를 끌면서도 유익한 책을 찾는 게 관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디즈니 과학 대탐험>. 총 6권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그중 첫 권인 우주와 행성을 읽게 되었어요. 각 권마다 등장하는 디즈니 주인공들이 다른데 1권에서는 히로와 베이맥스의 친구들이 정체불명의 공격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며 우주에 대해 알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베이맥스는 아들도 봤던 애니메이션이라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시중에 나와있는 학습만화들은 그 명맥만 유지할 뿐 오락 위주의 콘텐츠가 많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흥미를 끈답시고 그닥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들을 담은 책들도 본지라 굳이 사서 소장할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디즈니 과학 대탐험은 달라요. 확실히 내용 검수도 잘 되어있고 스토리도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어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더라고요. 한 에피소드가 지나면 관련된 학습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데 깊이가 있어 고학년이 되어서도 읽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들은 책이 도착하자마자 하루만에 다 읽어(?) 버렸지만 언제나 그렇듯 생각날 때마다 다시 꺼내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더라고요. 이 책을 충분히 읽었다 싶으면 차근차근 시리즈를 한 권씩 모아봐야겠습니다.

몰랐는데 아들 과학실험 방과후 선생님이 이 책을 옮기셨더라고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디즈니 과학 대탐험 - 우주와 행성>. 어른이 함께 읽어도 재미있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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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가 - 노래로 알아보는 마음의 작동 방식
박진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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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도 끊임없이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수없이 많은 심리학 책들이 쓰여지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영역이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하며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내려는 것 - 어쩌면 이것이 심리학과 예술이 맞닿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 통찰하는 방향은 다를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은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음악과 심리학의 만남. 그리고 구체적으로 - 음악이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행동하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심리학자는 과학자일까요, 상담가일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심리학에 대한 선입견을 마주했어요. 저자는 산업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도 직장 등 조직문화에 적용할 수 있는 심리학을 연구하며 강의와 컨설팅을 주로 하신다고 해요. 뭔가 그러다보니 이 책의 겉표지처럼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그러니까 마음을 쓰다듬고 위로하는 그런 내용을 기대했던 것 같아요.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어요. 이 책에 수록된 노래들이 마음을 쓰다듬는다면, 책의 내용은 노래 가사에 담긴 날카로운 심리학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미사어구가 가득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유쾌하고 흥미로워요. "노래로 알아보는 마음의 작동 방식"이라는 부제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겠네요.

"오래전에 함께 듣던 노래가 거리에서 내게 우연히 들려온 것처럼 살아가다 한 번쯤 우연히 만날 것 같아"의 가벼운 기대라면 복권 당첨을 기다리는 설렘 정도겠지만, "내 사랑이 그대로인 것처럼 발걸음이 여길 찾는 것처럼 꼭 만날 거야 지금 이 노래처럼"으로 재회를 확신하는 것은 집착이다. 이 가사를 보면 화자는 거리에서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 거리로 나가 우연을 빙자한 필연을 만들기 위해 하염없이 헤맬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연히 거리에서 노래를 들은 것은 말 그래도 우연적 사건일 뿐이라는 사실을 노랫말 속 화자가 받아들이길 바란다. - 왜 사람들은 세렌디피티를 꿈꿀까 - 스탠딩에그 "오래된 노래", 182p

저는 이 부분이 그야말로 유쾌하기(hilarious) 그지 없었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저자는 이 곡을 통해 확증 편향을 설명하는데, 이런 (흔히 말하는) "이과감성" 혹은 "T성향"의 코멘트들을 통해 심리학의 개념들을 명확하면서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세 파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마지막 챕터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에요. 그동안 막연하기만 했던 심리적인 요인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이었답니다. 한 챕터를 읽은 후에 책을 덮고 "과연 그러한지, 그런 경험을 언제 했었는지" 곱씹어보는 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저자 개인의 의견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심리학 분야에서 오랜 연구를 통해 증명된 개념들을 다루고 있어 전반적인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개념들을 노래와 절묘하게 연결시켜 노래의 가사를 통찰하는 저자의 시선이 감탄스럽기도 했답니다. 오랜만에 술술 읽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좋은 심리학 책을 만날 수 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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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수업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예술 강의
문광훈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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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 이상하죠. 어렸을 때는 관심도 없던 철학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공감하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 급기야는 철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하지 않고는 어떤 학문도 심도깊게 다룰 수 없을 것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수천년동안 이어져내려온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내놓는 자체가 어리석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반면 미학은 (뭔가 철학과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은 덕분에) 30대 후반을 향해 가는 지금까지도 저에겐 "이해할 수 없는 학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예술임을 생각해봤을 때 더욱 아이러니해요. 미학과 친해지기 위해 시시때떄로(?) 노력해봤지만 아직까지도 이것이 과연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 적어도 납득할 수 있을만한 범위 안에서 평준화되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분야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잘나고, 잘 알아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의견이 그렇다는 말이에요 ㅎㅎ

때문에 이 <미학 수업>을 읽기 시작한 건, 다시 한 번 미학 입문에 도전하며 미학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책 표지에 쓰여진 "예술은 삶의 한계 속에서 어떤 자유를 느끼게 하고, 그 자유가 얼마나 고귀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름다움에 대해 끝없이 질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기에 기대도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결국 이번에도 미학과 친해지는 건 실패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이 나쁘다거나, 내용이 부실하다던가 하는 문제는 아니에요. 분명 저자는 폭넓은 예술 분야를 탐닉하며(사실 대부분이 시각예술에 한정되어있다는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깊이 사유한 끝에 글을 쓰셨겠지만, 나름 예술을 업으로 감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참 많았어요. 물론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저자가 말하는 예술과 아름다움의 근거가 (제 생각으로는) 상당히 협소하고 주관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작은 (책 표지에 쓰여지기도 했던) 저자가 말하는 예술의 정의, 나아가 예술의 가치부터였는데요.



예술은 삶의 한계 속에서 어떤 자유를 느끼게 하고, 그 자유 이상의 책임을 떠올려주며, 이런 책임 속에서 다시 자유가 얼마나 고귀한지를 절감케 한다. 자유와 책임 중 하나라도 누락된다면, 예술은 미망에 불과하다. 대중을 우매한 집단으로 변질시킨 파시즘의 예술 스펙터클은 이 점 - 집단적 광기로서의 예술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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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예술은 너무나도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어서, 이대로라면 어디가서 감히(?) 예술하는 사람이라고 입도 못 뗄 것 같습니다 ㅎㅎ 정말 예술이 자유와 그 자유 이상의 책임을 떠올려주어야만 한다면, 그렇지 않은 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일까요? 자유와 책임을 통감하기 위해 예술 안에서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무려 100년의 시간이 다 되어가는) 1923년 쇤베르크가 12음계를 선포하며 음악을 더이상 "아름다운 것"의 범주에 가두지 않았던 것과는 상당히 상반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저자의 레슨에 등장하는 작품들 역시 현대 작품보다는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두 꼭지만 허락된 음악 분야에서는 19세기 낭만주의의 대표주자 슈만과 브람스가 전부죠.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책만 읽어서는 2019년에 출간되었는지 1919년에 출간되었는지 헷갈릴 것 같습니다. 마치 적어도 지난 100년간의 예술사는 건너뛴 그런 느낌이죠.

(오해를 막고자 첨언하자면 음악 분야가 그럴 뿐 미술과 문학에서는 20세기의 작품들이 다수 출연합니다. 비중이 크진 않더라도요)

얼마 전 극단 <미추>의 뜻을 듣고 감명을 받았어요. 아름다울 미에 추할 추. 극단에게 이보다 더 명료하고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싶었답니다 (도올 선생이 만들어주신 이름이라고 하더군요). 추한 것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 있고, 아름다운 것이 있기에 다시금 추한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굳이 작품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거나 메타텍스트를 찾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감동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 아름다움(혹은 추함)을 사유하는 것이 미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술을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올려놓고 조건에 부합하는 것들에만 아름다움을 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사실 그 조건에 부합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인, 어찌보면 비논리적인 과정인데 말이죠.

어찌 써놓고 보니 책에 대해 어줍잖은 비판만 늘어놓은 것 같네요. 본심은 그게 아니고... 그저 이번에도 미학에 입문하는 걸 실패한 넋두리라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자의 지성을 의심하는 것도, 미학이라는 학문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 그저 이 책을 통해 공감하고 예술과 그 아름다움에 대해 사유하는 게 좌절된 소수의 의견일 뿐입니다 ㅎㅎ 어쩌면 가장 큰 탓은 "멈춰 있는 삶을 일깨울 격조 높은 통찰의 시간을 만나다!"라는 카피 문구에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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