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가 - 노래로 알아보는 마음의 작동 방식
박진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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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도 끊임없이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수없이 많은 심리학 책들이 쓰여지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영역이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하며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내려는 것 - 어쩌면 이것이 심리학과 예술이 맞닿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 통찰하는 방향은 다를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은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음악과 심리학의 만남. 그리고 구체적으로 - 음악이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행동하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심리학자는 과학자일까요, 상담가일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심리학에 대한 선입견을 마주했어요. 저자는 산업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도 직장 등 조직문화에 적용할 수 있는 심리학을 연구하며 강의와 컨설팅을 주로 하신다고 해요. 뭔가 그러다보니 이 책의 겉표지처럼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그러니까 마음을 쓰다듬고 위로하는 그런 내용을 기대했던 것 같아요.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어요. 이 책에 수록된 노래들이 마음을 쓰다듬는다면, 책의 내용은 노래 가사에 담긴 날카로운 심리학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미사어구가 가득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유쾌하고 흥미로워요. "노래로 알아보는 마음의 작동 방식"이라는 부제가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겠네요.

"오래전에 함께 듣던 노래가 거리에서 내게 우연히 들려온 것처럼 살아가다 한 번쯤 우연히 만날 것 같아"의 가벼운 기대라면 복권 당첨을 기다리는 설렘 정도겠지만, "내 사랑이 그대로인 것처럼 발걸음이 여길 찾는 것처럼 꼭 만날 거야 지금 이 노래처럼"으로 재회를 확신하는 것은 집착이다. 이 가사를 보면 화자는 거리에서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 거리로 나가 우연을 빙자한 필연을 만들기 위해 하염없이 헤맬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연히 거리에서 노래를 들은 것은 말 그래도 우연적 사건일 뿐이라는 사실을 노랫말 속 화자가 받아들이길 바란다. - 왜 사람들은 세렌디피티를 꿈꿀까 - 스탠딩에그 "오래된 노래", 182p

저는 이 부분이 그야말로 유쾌하기(hilarious) 그지 없었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저자는 이 곡을 통해 확증 편향을 설명하는데, 이런 (흔히 말하는) "이과감성" 혹은 "T성향"의 코멘트들을 통해 심리학의 개념들을 명확하면서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세 파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마지막 챕터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에요. 그동안 막연하기만 했던 심리적인 요인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이었답니다. 한 챕터를 읽은 후에 책을 덮고 "과연 그러한지, 그런 경험을 언제 했었는지" 곱씹어보는 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저자 개인의 의견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심리학 분야에서 오랜 연구를 통해 증명된 개념들을 다루고 있어 전반적인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개념들을 노래와 절묘하게 연결시켜 노래의 가사를 통찰하는 저자의 시선이 감탄스럽기도 했답니다. 오랜만에 술술 읽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좋은 심리학 책을 만날 수 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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