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대하는 아름다운 방식
유강 지음, 공서연 그림 / 아름다운사람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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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 듣고 모범적으로 자란 사람일수록 실수를 하게 되거나 민망한 상황이 생기면 더욱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하면 실수를 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도, 실수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은 참 순하고 모범적인 아이입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말썽을 피운 적도 없고, 친구와 크게 싸운 적도 없고 말이죠. 처음엔 그게 그저 감사하고 다행스럽게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염려가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학년이 올라가고 점점 해야 할 것이 많아지면서 아쉬운 소리를 들을 때가 생겼는데 그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아들을 보면서, 차라리 더 어렸을 때부터 시행착오를 하며 자랐다면 조금은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었답니다. 뭐, 제가 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이럴땐 백 마디의 잔소리보다 하나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크고 깊은 법입니다. 아들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이 있어 가져와봤어요. 유강 글, 공서연 그림의 <잘못을 대하는 아름다운 방식>이라는 창작동화입니다.


글밥이 많은 책은 안 읽으려 하는 아들이지만 초반부터 긴장감 있게 흘러가는 스토리 덕에 금방 빠져들었어요. 원래는 초반 몇 챕터만 읽자고 했는데 꼭 끝까지 읽겠다고 하지 뭐에요 ㅎㅎ 가상의 인디언 부족 소년이라는 이국적인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참으로 아이다운 마음으로 이웃마을의 여우를 훔치는 과정이 정말 공감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 한창 이것 저것 가지고 싶은 게 많은 아들이거든요.


초반부는 이투아가 화살통이 가지고 싶어 여우를 훔치는 사건이 가쁘게 흘러가고 중반부터는 잘못을 저지른 이투아를 위한 특별한 "의식"이 시작됩니다.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이투아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며, 그가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아이인지 증언했어요. 실존하는 의식인지 모르겠지만 참 멋진 생각인 것 같아요. 이투아는 이미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잘못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을 잘 해결하여 극복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죠.

마을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은 이투아는 댓가를 원하는 이웃 마을 족장에게도 용서를 받습니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지만요. 아들과 함께 이런 과정을 공유하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되었어요. 바른 마음을 가지고 좋은 선택을 한다 할지라도 만사형통할 순 없으니까 말이죠.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아이를 교육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자아감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수많은 선택지 중 옳은 것을 선택하는 이유가 혼나지 않기 위해서라던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은 옳은 길을 선택할만한 사람이라는 자아감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잘못을 대하는 아름다운 방식>은 이투아의 짧지만 굵은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가 이투아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하며 상황에 공감하고 충분히 생각해나갈 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아요. 사람은 - 이투아처럼 "괜찮고 멋진" 아이도 -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중요한 건 실수한 그 다음이라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이야기에요.


글밥을 별로 안 좋아하는 3학년 남자아이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고, 잘 읽히는 문장 덕에 아들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읽었습니다. 아들과 한동안 흥미위주의 책들만 읽다가 간만에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책을 만나 감사한 마음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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