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지 않은 인생이 즐겁다
사이토 히토리 지음, 한성례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주위를 가끔 둘러보면 세상을 정말 "쉽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라이프 아티스트 (Life Artist)" 라는 별명을 붙여주고는 하는데, 아둥바둥 사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마치 인생예술가처럼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그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의 저자인 사이토 히토리 씨도 이런 "라이프 아티스트" 중 한 사람입니다. 아니, 그 중에 가장 별난 사람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손에 꼽을 부자 중 한 사람인 그는 이미 수 많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만, 언뜻 봐서는 "응? 도저히 사업하는 사람이나 몇 대 부자가 쓸만한 제목은 아닌데" 라고 의아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철들지 않은 인생이 즐겁다" 는 지난 2009년 일본에서 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7월 말일에 발행된 아주 따끈따끈한 신간입니다. 누구나 성공하고 싶고, 누구나 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싶은 법인데,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고 있는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성공비법"이란 무엇인지 함께 들어보시죠.





히토리 씨라고 불러주세요 


히토리 씨는 스스로가 상당한 별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다보면 그의 독특하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한 정신세계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것은 참 여러 의미인데, 처음에는 그저 특별하고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되지만, 나중에는 부러울 정도의 독창성에 감동받았답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신념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온 그가 전하는 메세지는 놀랄 만큼이나 간단합니다.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해야 한다. 그것이 의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히토리 씨가 생각하는 진리이며,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자 사명입니다. 행복해지는 것. 히토리 씨가 모든 것의 위에 둔 이 간단한 법칙은 사실 우리들의 인생에서 그닥 우선순위권에 위치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누구나 행복하고 싶고, 불행한 것에서 탈출하고 싶습니다만, 언제나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행복해지는 것은 "사치스러운 생각"이라는 꼬리표를 단 애물단지처럼 되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 하는 것이 너무나도 싫고 괴롭다고 할지라도 "나중을 위해" 혹은 "남들이 다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엄청난 시간과 열정 그리고 돈을 투자하여 대학까지 졸업합니다. 대졸이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 때로는 관심조차 없는 전공을 택해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죠. 다른 예를 들자면, 사회적인 표준과 대세를 따라가느라 너나 할 것 없이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을 받거나 성형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정말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들은 엄청난 체력소모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피폐하게 만들게 됩니다.


히토리 씨는 책 전반에 걸쳐 상당히 상냥하고 부드러운 느낌입니다만,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우선순위 아래에 펼쳐진 원칙들을 기준으로 가차없이 비판하기도 합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필요한 일은 하지 않으면서 쓸데없는 일에만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합니다. 예컨데 '생활비가 모자라서 살림을 꾸리기가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이들은 대학에 보내서 어쩌고저쩌고'하며 교육열에 불타는 경우입니다. [...] 돈이 없으면 대학에 가지 말고 일을 해야 합니다. 대학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 가정에는 돈이 더 필요합니다. [...] 요즘에는 대학에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장학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장학금을 받을 실력도 안 되면서 왜 대학을 고집하는 걸까요?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103~104 페이지)


어떤 사람에게는 비수처럼 가슴에 꽃힐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에 그는 정확히 핵심을 찌른 것 같습니다. 사실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잣대는 스스로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불공평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서는 분명 행복해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원하지도 않는 공부를 없는 돈과 수 많은 시간을 들여 했지만 결국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준비가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 충분히 볼 수 있으니까요. 진정으로 원하는 전공보다는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전공을 택하는 바람에 졸업 후에는 전공을 했다지만 그것을 통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결국 대학 졸업장이라는 종이 한 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희생한 것인지 모릅니다.


히토리 씨는 중학교를 끝으로 다른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중학교를 마친 뒤에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고 원하는 일을 했기에 자신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그의 발언에서 그의 인생은 철저하게 "그의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히토리 씨'라고 부릅니다. 스스로에게 존칭을 생략하는 일이란 이제 저에게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웃음). 요컨대 히토리 씨라는 명칭은 그만큼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는 뜻이지요." (31 페이지)





자기 자신이 행복해야, 즉,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나아가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인간의 뇌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먼저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성공하는 비결이하고 그는 주장합니다.


"어떤 장사를 하더라도 그것이 나를 위하고 남을 위하고 나아가 사회를 위한 일이라면 틀림없이 성공합니다. [...] 왜냐하면 남을 위해서만 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축나서 포기하게 되고 오래 지속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도 좋고 남도 위하는 일이라면 지속됩니다." (33~34 페이지)


성공하는 그의 철학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아끼며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남을 위하고 나아가 사회에 공헌하는 것" 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충실하라 


"사연 없는 무덤 없다" 라고 흔히 말하곤 합니다. 그만큼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변명이 있다는 것이죠. 히토리 씨가 말하는 성공하는 사람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점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으로 자신이 더 잘해야 할 부분을 연구하는 반면,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째서 그것이 불가능한지 (혹은 자신이 운이 없는지) 불평만 한다는 것이죠.


"물이 끓지 않을 때는 불이 약하거나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조직 내에서도 원인에 합당한 처방을 써야 합니다." (177 페이지)


무언가가 잘 되지 않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왜 안 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데에서 발전하는 기쁨이 시작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다가온 역경이나 위기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느냐 아니면 패배의 지름길로 만드느냐는 결국 자신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많이 들었기에 식상할 수도 있지만 그의 단호한 권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불평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즐거운 게임이니까요." (22 페이지)





히토리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는 마치 스스로의 인생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그 인생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구경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너무 집중하고 집착한 나머지 여유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하나의 게임처럼 생각하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즐겁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지금까지 제가 해온 많은 불평들이 단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탓을 돌리는 것,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무지나 불찰을 탓하는 것조차 하나의 비겁한 변명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책임을 타인 혹은 스스로에게 지움으로써 상황을 정당화하며 이성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스스로의 발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실패하거나 좌절한 그 상황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어떤 것을 바꾸거나 개선해야 좋을지 즐겁게 생각한다면 넘어진 부분에서 일어나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나아가는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 책을 적어도 7번 이상 읽어달라"는 히토리 씨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에는 인생을 한층 즐겁고 흥미롭게 바꿀 수 있는 수많은 조언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조언들은 우리가 사소하고 작은 발상의 전환으로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더 큰 것 같습니다. 

히토리 씨가 이 책을 통해 꼭 전하고 싶었던 핵심 메세지 중 하나가 바로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입니다. 크고 엄청난 변화를 이루어내려고 하기 전에 작은 것부터 개선해나가고 바꾸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사소한 변화조차 해낼 수 없는 사람이 큰 변화를 견딜 수 있으리는 만무합니다. 또한 결정적인 찬스나 변화는 이러한 사소하고 작은 차이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히토리 씨는 몇 차례에 걸쳐 반복합니다. 


"잘 돌아가는 회사는 언제나 세심한 노력, 미세한 차이를 추구한답니다." (166 페이지)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 과정을 마치 하나의 게임처럼 즐기는 것.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노력할 수 있는 것. 히토리 씨의 성공 비법은 너무나도 간단한 것이었습니다만, 그렇다고 아무나 시도하고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우리들 중 대부분은 사회라는 잣대에 너무나도 뼛 속 깊이 매인 나머지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히토리 씨의 이러한 철학은 "자신을 찾아나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었던 그의 책을 다 읽고 덮을 무렵에는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것이 나의 꿈과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스스로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두서 없이 원하는 대로 써내려간 듯한 그의 글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대단한 단호함이 담겨있음에 놀랐답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간단한 원칙이 저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죠.

원하는 것을 하기에도 너무나도 짧은 인생 동안 지구에 머물러 있으면서, 과연 스스로의 꿈을 위해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느냐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성공" 이라는 것은 결국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유명해지는 것도,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닌, 자신이 꿈꿔왔던 바로 그것을 이루어내는 것일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기의 한국인 - 우울을 행복으로 반전시켜라
유한익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으면서 "이 책 만큼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겠다" 라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정말 좋은 책이라던가, 꼭 필요한 책이라던가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오늘 소개할 책만큼 "위기의식"에서 많은 분들께 제대로 알려야겠다라고 생각한 책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네요.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주요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등장하는 뉴스는 다름아닌 "자살"입니다. 이제는 너무도 자주 들었기에 어느정도 내성까지 생겼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도 그럴 것이,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치욕스러운 우리나라의 순위는 매일 평균적으로 43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단위로 계산해보면 한 시간에 두 명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자살은 더이상 개인의 문제 혹은 어느 한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범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그렇게도 쉽게 포기하고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그리고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봐도 정말 심각하고 끔찍한 일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지요. 활발한 SNS와 블로그 활동으로 이미 많은 분들께는 낯익은 이름 - 정신과전문의 유한익 선생님께서 사회적 이슈가 되어버린 한국인의 질병 - "우울증"과 "자살"을 예방하고자 쓰신 신간. "위기의 한국인" 을 소개합니다.





사회가 우리를 파탄으로 이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상당히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는 것은 더이상 놀라운 소식이 아닙니다. 어떤 사회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어떠한 체계도 완벽할 수 없지만, 유독 한국 사회에는 문화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참 많은 "이슈"들이 집합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배경이 세계적으로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겨주는데 분명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 역시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인 유한익 박사는 우리사회의 핵심문제 중 하나가 되어버린 "우울증"에 대해 소개하기 앞서 이러한 우울증을 양성하는 사회적 배경을 분석합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쉽게 수긍해왔던 일들이 사실은 우리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감옥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은 별로 달갑거나 기쁜 일이 아닙니다만, 스스로를 옭아매는 우울증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정황사정을 알아가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사회, 남을 쓰러뜨려 승리해야만 하는 사회, 수많은 것을 강압적으로 요구받는 사회... 유한익 박사가 지적하는 문제점은 너무도 광범위하지만 그 방대함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요구되는 목표들은 실현불가능하며 (또는 실현할 이유조차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낙오자들이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고리를 먼저 파악하고 스스로를 위해 해결하지 않으면 "우울증"이라는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요구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고스란히 "죄책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죄책감은 우울증이 자라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이 되는데요, 전세계 어디에서도 없는,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문화-관련 증후군 "화병"의 사례만 보아도 우리 사회에서 죄책감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화병 혹은 울화병은 기혼여성에게 흔하고, 특히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 사람에게 많으며, 가난한 사람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소극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처가 많고 한과 슬픔이 많은 사람, 상황적으로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병이다. 하지만 화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이런 소극적인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87 페이지)


화병 뿐만 아니라 문화적 요구와 기대치가 초래하는 또 하나의 재앙은 다름 아닌 "분노"입니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처음 한국으로 들어와서 가장 놀랐던 것이 바로 "분노" 였습니다. 어머니와 자식의 평범한 대화에서도 욕이 등장하는가 하면 별 것 아닌 일에 언성을 드높이기 일쑤고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을 대하듯이 분노를 발산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적응이 되지 않는 문화차이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정말 충격인 것은 그렇게 싸우다가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만..)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는 욕을 하는 것이나 언성을 높여 싸우는 것이 문화의 일부이고 오히려 친해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이러한 공격성은 자신의 존재가 가리워진 인터넷상에서는 급격히 악화되는데요,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행동이 낯설고 견디기 힘든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필자가 놀랐던 것은 사람들이 전후 관계에 대한 고민 없이 너무 쉽게 공분한다는 사실과 인터넷 댓글에 사용되는 언어가 매우 원색적이라는 사실이었다. 글의 내용과 무관하게 그런 식의 표현이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4 페이지)


확실한 것은 "위기의 한국인"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분노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악순환의 고리는 점차 커지게 되고 강자는 가해자가, 약자는 우울증 환자가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러한 악순환 뒤에는 암묵적으로 다혈질을 남자답고 패기있다고 인정하는 고정관념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울컥하는 사람,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 흥분하면 앞뒤 못 가리는 사람은 그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도 상처입힌다. 그것이 한국인을 규정하는 '다혈질'이라는 기질을 변화시켜야 하는 이유다." (101 페이지)




"우울증" 이라는 감옥


이 책을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무방비상태로 그러한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을 위해 기획하고 집필한만큼 유한익 박사는 "자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우울증"을 심도있고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자살한 사람들의 80%가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통계만 보아도 우울증이라는 병은 자살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는 위험 - 하지만 유한익 박사는 도망칠 곳도, 희망도 없어보이는 "우울증"에도 탈출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사회적 배경이 우울증을 양성하기도 하지만, 유한익 박사는 우울증은 분명한 신체적 질환 중 하나라고 강조합니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고 실패자인 자신이 사라져야만 한다는 강박적 생각도 모두 이러한 질환에서 오는 증상이라는 것이죠. 


"뇌가 우울증과 자살을 야기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당신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이 정말 잘못해서도 아니고, 당신이 무능해서도 아니며, 당신의 미래가 정말 칠흑처럼 암울해서도 아니다. 뇌가 아프기 때문이다. 뇌가 병들었기 때문이다. 병들었을 때는 치료를 받으면 된다." (179 페이지)


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이해 - 자신의 기분을 다스릴 수는 없다 혹은 자신의 느끼는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판단하고 자멸의 길을 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 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많은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물론 모든 우울증이 뇌로부터 야기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상응하는 치료를 위해 모든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환경적인 요인 혹은 비뚤어진 생각의 순환으로 인해 우울증에 이르게 되며, 이 때마다 자신의 증상에 맞는 올바른 치료와 대처가 필요합니다. 우울증에 걸린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면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겠죠.

"우울감을 일으키는 과정에는 무언가 비뚤어진 사고체계는 존재한다." (191 페이지)


우울증이 오는 데는 참 많은 이유들이 있으며 유한익 박사는 책을 통해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예라 할지라도 한국인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정도로 일반적이며 흔히 만나게 될 수 있는 사례들이기에 의미가 깊습니다.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던가, 자신의 완벽하지 못함으로 인해 좌절하는 등 우울증에 도달하는데는 반드시 "올바르지 못한" 사고체계가 있음을, 그리고 그 사고체계를 먼저 인지하고 바로잡는 것이 급순위임을 저자는 재차 당부합니다. 

"우울증은 강박적으로 자신을 비판하게 만든다." (197 페이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 않을까요? 박사는 행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올바르게 자기 자신을 위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여러 행복학 책들과 자기계발서에서 익히 들은 말이라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올바르고 건강한 자기 사랑은 행복하기 위한 첫걸음일 뿐만 아니라 자살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 나도 행복해지려는 갈망이다. 엄밀히 말하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다. 그래서 이타주의는 곧 이기주의다. [...] 우리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무엇인가를 만들어가기 위해 사는 것이다." (50 페이지)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사는 것을 미덕이라고 보는 우리 사회와 나 하나만 잘 되면 된다는 무한이기주의라는 두 가지 극적인 양면이 공존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르게 자신을 그리고 남을 사랑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바로 이 순서대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자신을 위하고 그리고 남을 위하는 것, 그것이 건강한 정신을 위한 철학인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거나 남만을 위해 산다면 결코 그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자신을 혹은 주위 사람들을 천천히 갉아먹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안타깝고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자살률 1위라는 어마어마한 난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를 소수의 미치광이들을 위한 기피대상 1호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적인 인식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 보니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여 꺼리기 마련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주기적인 정신과 상담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 흔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소위 잘 산다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부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일 수록 더욱 더 마음을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 지식적 측면만큼 성장하지 못한 자신의 정신적 자아를 돌볼 수 있는 의식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


얼마 전 우스갯소리로 "얼굴 못생긴 여자는 용서해도 몸매 못난 여자는 용서 못한다"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내면적 가치는 배제한 채 오직 외부적 요인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는 사고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진부하게 들릴 수 밖에 없겠지만, 그만큼 이미 사회 깊숙이 파고든 병적인 사고방식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국에서 "건강식품"이라고 하면 "다이어트식품"을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여성들의 대부분이 강박적 다이어트로 인한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피해를 보고 있는 사실은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 어떠한 기막히고 끔찍한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여성들을 몰아간 남성들이 원흉이라고 단적으로 비판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몰래카메라의 형식으로 진행했던 조사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커플들 중 남성의 동의를 얻어 여성과 함께 언뜻 보기에도 정말 좋은 아파트로 간 뒤 이 아파트를 사고 싶지만 조금 돈이 모자라니 보태서 함께 마련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식이었는데요. 세 커플이 등장했는데 "함께 장만하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여성분들의 얼굴은 대단한 놀라움과 기막힘이 묘하게 조화되곤 했습니다. "아니, 이 정도도 준비 못한거야?" 혹은 "당신이 대출하면 되잖아" 라며 자신의 (예비)신랑을 몰아세우는 그녀들의 태도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살 집이고, 법으로 정해진 것도 없는데 그 정도의 양보와 이해도 할 수 없으면서 어떻게 함께 평생을 살아가겠다는 것인지... 


사회적인 풍토 혹은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서로에게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지우고 그 짐이 무겁고 힘든 만큼 한치의 양보도 하려 하지 않는 기반에서는 그러한 기대치를 달성하지 못한 많은 이들의 좌절과 우울증이 동반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용납될만한 수준" 에 이르기 위해 엄청난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현주소이기도 하죠. 마냥 이러한 사회를 원망하거나 피해자가 될 것이 아니라, 그 매커니즘을 파악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스스로를 위해 끊는 것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당신의 삶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그 삶을 의미 없는 비교로 채우지 마라. 당신 자신이 비교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평가할 수 없다. 그 어떤 사람도 그럴 자격이 없다." (23 페이지)





어렸을 때 왕따를 당한 일. 직장 내에서 어려움을 겪은 일. 실연 후 말할 수 없는 좌절감에 모든 것을 포기했던 일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역경과 마주하게 되고, 어떤 사람이라도 역경 없는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 상황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결국 인간은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 없이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괴로웠던 그 때 일을 되돌이켜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로 인해 모든 상황이 야기되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한두 걸음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을 마치 눈가리개를 하고 달리는 말처럼 그저 앞을 향해서 전력질주를 하느라 다른 길이 있었다는 것을 아예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비논리적인 이유가 사회적 요인을 가지게 되면 그 위력이 갑절이 됩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기 보다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요상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는 것이죠.


"너무 이상적인 사람, 이상적인 아내와 어머니, 며느리가 되려고 하지 마라. 그런 사람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이기적인 강자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의 페르조나를 거부해라. 그런 허상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과감히 버려라. 당신은 유치원생이 아니다. 남에게 착한 사람이 되기 전에 자신에게 착한 사람이 돼라." (89 페이지)


저자가 재차 강조하는 것은 같습니다. 남에게 잘하기 전에 자신에게 잘하라는 것. 남에게 잘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고 그로 인해 우울증을 앓게 되는 것은 결코 어떠한 미덕도 아니라는 것.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다는 간단한 진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위기의 한국인에게 가장 원초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는 제때 조기교육을 받아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다니며 명문대에 들어가 무사히 졸업한 뒤 자랑할 만한 기업에 입사하여 결혼 전 대단한 돈을 모아두고 결혼 후에도 승진을 거듭해 가족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상황을 마련해주는 것. 불가능에 가까운 대한민국 가장의 "사회적으로 당당한 모습" 은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을 좌절과 회의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또래에서 인정을 받고 싶다면 넉넉한 경제 형편은 물론 매너도 좋아야 하고 잘생겨야 하며 키도 커야 하고 외제차 정도는 몰아 여자친구에게 이벤트마다 명품 선물을 해야하는지도 모릅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은 물론 몸빼도 이쁘고 착해야 하고 남들에게 과시할만한 명품이 넉넉하게 있어야 "괜찮은" 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조신하게 잘 살다가 결혼 후에는 남편을 훌륭하게 내조하는 것은 물론 자기관리도 소홀히하지 않아야 하며, 전적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육아와 교육을 컨설팅하면서 집안을 돌보고, 남편과 함께 결혼 시 "딸려 오는" 시댁 식구들 역시 그녀의 책임인데 시부모님에게 찍소리 못하고 순종하며 희생해야 "좋은 며느리"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비뚤어진 사고방식과 사회 대부분의 "완벽한 이상형"을 집약시킨 모습이 오히려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기준으로 둔갑할 때 이루어질 수 없는 그 갭(gap)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 밖에 없습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그러한 어떠한 가치에서 실패한 뒤 모든 책임을 사회 혹은 자신에게 전가하며 정신적 질환을 앓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누구나 당신을 평가할 수 있다. 당신이 남을 평가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당신을 평가하는 사람이 누구든 그 평가의 무게를 결정하는 사람은 오직 당신 자신뿐이다. 오로지 스스로만 자신을 향한 비판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사람마다 남의 비판에 대처하는 자세가 다르고, 거기에 부여하는 의미의 크기가 다르다." (198 페이지)


남의 이목을 너무나도 중요시 여기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나의 인생을 가장 나 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사회만 탓하고 신세한탄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올바르지 못한 평가의 잣대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오히려 우리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대고 판단하게 만든 것은 다른 누구가 아닌 우리 자신이라고 비판합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을 판단할 힘과 권리를 주는가? 우리는 모두 부족한 인간일 뿐이다. 애써 합리화하거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210 페이지)


나 자신이 스스로 나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위한 길을 알고 있다면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삶의 운전대를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가 삶을 헤쳐나갈 능력을 상실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내몰리고 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도, 개선도 아닌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힘일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노인자살, 청소년자살까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어쩌면 너무도 오랫동안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그 문제를 외면해왔기에 그 결과가 더욱 더 참혹해진 것은 아닐까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단 한번 뿐이고 그 인생의 주인공은 자식도, 부모님도, 배우자도, 연인도, 친구도, 선생님도 아닌 나 자신인 것을. 그리고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할 때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도 올바르게 사랑하고 아낄 수 있음을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몇 차례 강조합니다. 이것이 사회적 문제로 야기된 우울증과 자살을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반적인 "정신과 상담"의 인식이 개선되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보다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전 우울증을 앓고 있는 본인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비뚤어진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할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스스로 괴로워 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아픔이 가중되어 극적인 선택을 하기 이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생에 대한 애착,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영토를 확장하라 - 세상을 리드한 24가지 파워 사유법
차오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에게 1 더하기 1을 가르쳐주면 어떤 아이는 2라는 답으로 만족하고, 다른 아이는 2 더하기 3은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또 다른 아이는 한 달 동안 자신이 받은 용돈이 모두 얼마인지 생각해본다고 합니다. 같은 지식을 접했을 때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적용하는데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흔히 우리나라의 교육이 너무 "주입식"이라고 비판할 때, 대부분 이러한 적용 능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것일 경우가 많습니다. 즉, 1 더하기 1은 2이니 2 더하기 2는 4라고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1 더하기 1은 2고 2 더하기 2는 4라고 외우라고 하는 것이죠.

 

 

인간과 동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인간은 "사유할 수 있는 데" 있었습니다. 물론 동물 역시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그것을 삶에 적용시키고는 합니다만, 인간은 그 중 유일하게 사유할 수 있고, 그 사유를 통하여 무한한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의 짧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유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오히려 문화와 기술이 발전해가면서 점점 인간의 "사유할 수 있는 범위"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히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도 이제는 컴퓨터라던가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생각하지 않고서도 넘어갈 수 있고, 스스로 얻은 지식보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조우한 자투리 지식에 의존하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이러한 우려가 상당히 일방적이고 편협적이라는데는 저 역시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만큼, "사유"라는 주제에 있어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낍니다.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것이나 단순하게 외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지금까지의 지식과 관념을 뛰어넘으려면 그만큼 혁신적이고 새로운 사유를 할 수 있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 세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 역시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구체적으로 어떤 혁신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주는 곳은 많지 않았죠.

 

 

 

 

오늘 소개할 책은 그러한 "혁신"의 사유로 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제시합니다. 이 책에 어떠한 답이 제시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가 "생각"과 "사유"라는 것을 통해 어떠한 것을 이루어 갈 수 있는지, 역사적으로 세계를 이끌어온/변화시킨 사람들이 어떻게 사유함으로 혁신을 일으켰는지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지혜의 숲' 사고력교육연구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이신 차오름 교수님의 "생각의 영토를 확장하라" 를 소개합니다.

 

 

 

 

사고력교육연구원 "지혜의 숲" (http://www.eduwisdom.co.kr) 은 지식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다양한 강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처음으로 접하게 된 곳이라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어린 나이에서부터 사고력을 중점적으로 개발하며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네요. 앞서 소개했지만 이 책의 저자이신 차오름 교수님은 지혜의 숲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강의도 다양하게 진행하신다고 합니다. 또한 "생각의 영토를 확장하라" 외에도 많은 저서를 편찬하셨죠.

 

 

사고하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고해야 하며 어떤 사유가 건설적인 것인지 아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생각의 영토를 확장하라"에서는 형이상학적인 사유의 세계로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는데요, 바로 세상을 리드해온 스물 네가지의 사유법을 통해 "사유란 어떤것인가"를 되짚어보는 방식입니다.

 

 

그들에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넓고도 좁은 것이 이 세상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살고 있지만, 결국 세상은 몇 사람에 의해서 이끌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국토를 확장한 용맹한 왕이나 장군일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언변의 달인이었던 정치인이기도 했고, 혁신적인 발명품을 만들어낸 발명가이기도 했으며, 대단한 발견을 한 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는 세상을 바꾼 사유의 주인공들을 소개합니다. 크게는 세 챕터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의 챕터는 다시 여덟 장으로 구성됩니다. 총 스물 네가지의 혁신적인 사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제 1장 ---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 '나'를 사유하라

제 2장 --- 개인적 삶의 역사성 - '사회'를 사유하라

제 3장 ---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 '세계'를 사유하라

 

생각, 혹은 사고가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라는 눈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머리말, 5 페이지). 모두들 당연시했던 것을, 자명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데에서 모든 사유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유로서 세계를 바꾼 사람들의 특징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환경에 의문을 던지고, 새롭게 사유했을 때에, 비로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지식을 발견한 사람들,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낸 위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이 생각의 창조자가 되는 것일까? 그들은 모두 '결정적 의문'을 하나씩 가졌던 사람들이다." (5 페이지)

 

각 장에서는 이러한 사유의 기폭제 역할을 한 호기심과 궁금증, 새로운 발견에 대해서 소개한 뒤에, 사유가 가지고 온 새로운 변화와 관점의 차이에 주목합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복잡해보일지 몰라도, 친절한 문장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사유의 중심에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탁상공론을 위한 "똑똑한" 질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나가면서 한번쯤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던져야 할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나에겐 여러 가지 영토가 주어집니다. 한 가지 삶만이 아니라 여러 겹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영토가 여러 겹 주어져 있으니까요. 과연 나는 어떤 영토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고 있을까요?" (23 페이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굳혀져온 하나의 길을 고집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 길을 따르기 보다는 어째서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있지는 않은 것인가 고민한 것이죠. 이러한 능동적인 사유는 결국 "지금 이 길이 확실히 가장 이상적인 길이구나"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는 역시 많은 사람들의 잔소리를 감당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혁신을 발견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사유를 해왔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궁금증을 효과적으로 사유하였고 그로 인해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뇌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각도 빛의 변신입니다. 우리가 말과 글로 교환하고 나누는 사유와 마음도 빛의 자식인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의 속도가 곧 빛의 속도로 전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159 페이지)

 

시간은 속도를 가지고 흐르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면 시간이 빨라지고 속도가 빨라지면 시간이 느려진다는 이론을 "쌍둥이 실험"으로 설명한 아인슈타인.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만에 그치지 않고 그의 사유를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간다면 어느 순간 누군가에 의해서 그를 뛰어넘은 이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역시 자신이 얻은 지식들을 습득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고 가공해나감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영토를 확장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지식을 얻고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느냐가 결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사고를 넓혀주는 질문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세 가지의 짧은 질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의 내용을 읽고 난 후에 그것을 어떻게 내 삶에 받아들여야 할지 핵심적으로 짚어주는 질문들입니다. 그것은 역사에 남은 혁신적인 사유가 끝난 그 시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더 깊이 사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엉뚱한 상상 가운데서 빛나는 아이디어가 탄생하곤 합니다. 아니, 어쩌면 엉뚱한 상상은 빛나는 아이디어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아인슈타인의 예에서 저자는 아인슈타인이 16세부터 가졌던 의문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아인슈타인은 16세부터 하나의 질문에 사로잡혔다. '빛(광선)을 타고 초속 30만 킬로미터 속도로 여행한다면 세계는 어떻게 보일까? [...]' 이 의문을 평생 풀고자 했던 아인슈타인이 찾아낸 답이 바로 '상대성 이론'이다." (161 페이지)

 

열 여섯 살의 어린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진심으로 궁금해하면서 이런 저런 이론을 제시했을까요 아니면 "쓸데없는 생각 말고 네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핀잔을 주었을까요? 어렸을 때는 참 다양한 궁금증도 많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는 했는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사고가 틀에 박힌다는 것이 아쉬운 것을 넘어서 실망스럽고 공포스럽기까지도 합니다. 결국 이러한 궁금증을 "어린아이의 바보같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데에 결정적인 힘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까지 하네요. 저자는 말합니다.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야말로 '나'라고 하는 존재의 결정적 징표입니다." (79 페이지)

 

스스로가 스스로의 잣대를 세우며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존재를 확립하는 힘인 것임을 저자는 몇 번이고 강조합니다. 남이 닦아놓은 길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스스로 사유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후에는 몇 십 배, 몇 백 배의 차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

 

 

말도 안되는 이상한 종교에 빠져 인생을 망쳐버린 사람들이나, 엉뚱하게 속아 사기를 당한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저런 것에 속을 수 있지?"라고 의아해 하고는 합니다. 그 사건의 아웃사이더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허무맹랑한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어마어마한 재산을 날리거나 심지어 자신 혹은 가족의 목숨까지 앗아가버리는 일을 더러 보면서,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유의 부재"는 더욱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단지 어떤 것에 홀려서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어설프고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니까요.

 

 

 

 

어차피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 많은 문제들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그것에 있어서 선택하고 해결해나가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입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배우자 등이 때로 우리를 대신하여 도와주거나 조언해준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자신이 헤쳐나가야만 할 때가 온다는 것이죠. 고정관념에만 매여 있거나 스스로 사유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결국 이 때 넘어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삶에는 딱 맞는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스스로 생각해야 하고, 그 생각과 선택의 결과의 책임 역시 스스로에게 있으니까요.

 

 

 

 

"생각의 영토를 확장하라"는 지금까지 사유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다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사유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개발하는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면 효과적인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스물 네가지의 사유를 하나 하나 되짚어보면서 (행여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지라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며 깊게 생각할 수 있다면 이미 건설적인 사유의 세계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나 다름 없을테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와 별로 새로울 것이 없었던 다윈의 진화론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혹은 부처의 일생을 "생각의 영토를 확장하라"를 통해 새롭게 접하면서 그 실제적인 이론 뒤에 잠재되어있던 혁신적인 사유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의 삶에서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한번 물어볼 수 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회복할 수도 있겠죠.

 

"유대인 약 600만 명의 학살에 가담한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 그런데 왜, 어떻게 그는 그 잔혹한 유대인 학살을 총괄한 범죄인이 되었을까요?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가장 최대의 범죄는 바로 무지(無知)다'라고 말합니다. [...] 단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사유의 범죄'입니다." (53~54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배우는 정의
켄지 요시노 지음, 김수림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참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만, 사실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제가 고른 책이라기 보다는 물주(?)이신 엄마의 취향이 백분 반영된 레퍼토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청소년들이 보통 읽지 않을 법한 책들을 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동화책을 읽은 기억보다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고전문학집이 떠오르는데요, 그래서 (도대체 어째서 어린이들에게 "권장하는지" 잘 모르겠는) "테스"라던가 "죄와 벌" 혹은 단테의 "신곡"이나 "분노의 포도" 등을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대단히 간소화된 에디션이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이해하기는 무리더라고요.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인가, 어렸을 때 가장 재미있었던 책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역시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의 원작처럼 극 형식이 아닌 소설처럼 풀어쓴) 에디션이었는데, 아직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희곡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랍니다. 책장이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출생부터 죽음까지 베일에 싸인 신비한 존재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는 수 많은 미스테리에 둘러싸여 있지만, 문학 역사에 있어서 그만큼이나 독보적인 존재로서 한 획을 그은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연구되며 회자되는 것이겠지요.

 

오늘 소개할 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법과 문학"이라는 서로 상극의 관계에 서 있는 두 분야를 연결하고자 하는 대단한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목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를 함께 만나보시죠.

 

 

 

 

 

셰익스피어 매니아가 소개하는 셰익스피어의 정의

 

이 책의 저자 켄지 요시노 교수는 스스로를 "셰익스피어의 광팬"이라고 선언합니다 (8 페이지). 영문학을 전공한 뒤 로스쿨로 진학한 뒤에도 문학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고민하던 그는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단지 하나의 "문학"이 아니라 심오한 법적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논문 주제로 채택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스팩터클" 주제는 문제도 많고 탈도 많은지라 그가 가야할 길은 상당히 어렵고 무모해보일 수 밖에 없었지만, 마침내 그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해보일 수 있었고, 그 결과가 바로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이 그의 논문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지는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지만, 정확한 인용구와 형식, 그리고 색인 등을 참고할 때 아마도 상당수 논문의 내용과 일치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총 9장동안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현대의 주요 사건 혹은 논제들을 연결시켜 소개합니다. 오제이 심슨 재판이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지난 몇 십년 동안의 스캔들과 셰익스피어의 작품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것은 처음에는 의아한 일입니다만, 저자가 제시하는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나가다 보면 정확하게 맞물려가는 두 개의 스토리에 깜짝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마치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본 사람처럼 사람들의 심리와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데, "세상의 모든 것은 순환한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그의 작품은 실제 사건들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통찰력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또 다른 가치 반열에 올려두는 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즐거운 것은 역시 셰익스피어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입니다. 스스로를 셰익스피어의 광팬이라고 부를 정도로 셰익스피어 작품세계에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열정을 투자한 그는 (작품이 잘 알려진 것에 비해 대부분) 미궁에 빠져있는 셰익스피어 문학에 대한 다양한 증거와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각 장마다 친절하게 작품의 줄거리와 골격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 작품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무리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특히 "티투스 안드로니쿠스"나 "자에는 자로"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보다 자세하게 그 줄거리와 등장인물이 설명되어 있어 원작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실제 사건과의 연계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In a parallel world

 

"지금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이 세계과 똑같은, 하지만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라는 주장은 이미 수많은 미스테리와 사이언스 픽션 영화 혹은 소설 등에 즐겨 등장하는 테마입니다. 심지어는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며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도플갱어 미신 역시 유럽 등지에서는 널리 퍼져 있을 정도니까요.

 

 

 

 

흔히 셰익스피어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그의 과장섞인 문체와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들, 공감하기 힘든 줄거리라던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지 못한 전개를 주로 이유로 꼽으시는데요, 이 책을 읽다보면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가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추악한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이 결코 과장도, 거짓도 아닌 것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셰익스피어야 말로 프로이트 이전 이미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던 대단한 심리학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저자는 효과적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의 등장인물들과 현존하는 인물들의 상관관계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연극 속에서만 만나던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우리의 삶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실존하는 인물"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행세계"를 통해 우리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판단의 오류와 잘못된 전개가 어디 있었느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명쾌한 해석과 열린 질문

 

프로이트가 다소 도발적인 이론과 발언으로 인간의 추악한 본질에 대해서 설명하려 했다면, 셰익스피어는 상당히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프로이트는 엄청난 반대와 비판 그리고 질타를 평생 짊어지고 가야 했지만, 셰익스피어는 그와는 상반되게 제대로 신분이 밝혀지지도 않은채로 전 세계 인류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요.

 

그 진위가 어떻던지간에 자신이 결국은 추악한 괴물이며,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을 즐겁게 듣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막장드라마"들은 그 수위가 높을 수록 더욱 더 큰 관심을 받게 됩니다. 결국 사람은 "공감하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되기 마련인데, 말하기도 거북한 막장 드라마의 내용에 몰입한다는 것은, 그것을 공감하고 있다고 바꾸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간교한 하인의 술책에 넘어가 무고한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오셀로나 마녀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맥베스 부부가 흥미로운 것은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것이 어느정도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성격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책은 "확실히 이렇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읽은 뒤 그 내용을 다시한번 되짚어보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증거제시와 연구 발표를 토대로 한 풀 (Pool) 안에서 우리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것이죠.

 

 

 

 

논문 주제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도발적인 주제 "셰익스피어와 정의의 상관관계"는 이 책을 통해 충분히 검증되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제본이나 종이의 품질이 뛰어난 책이랍니다. 중요하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임에는 분명하니까요. 권말에는 저자가 제시한 문헌들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어 조금 더 심도있는 분석을 원한다면 참고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러한 문헌 리스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영문으로 되어있어 우리나라에 해당 문헌이 번역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네요.

 

책을 읽는 내내 어렸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라 그런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안에서의 권선징악이 실제 생활에도 통용되는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살해하면 분명 자신의 죗값을 치루게 된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법이 활개를 치고 억울한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가는가 하면 천인공노할 악당이라도 돈이나 연줄로 죽는 날까지 호위호식하며 살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세계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작품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게 제시할 수 있는 법학적인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력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오래 전 고대 그리스의 석판이 하나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수 많은 학자들이 달려들어 그 석판을 해석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그 석판에 쓰였던 말은 다름아닌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어서 문제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이죠. 언제나 나이드신 분들은 "세상이 악해져서", "어쩌려고 이렇게 변하나"라고 탄식하시기 마련인데 지금으로부터 몇 천 년 전서부터 "젊은 세대"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시작되었다니 아이러니 하면서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기성세대가 새로운 새대를 바라보면서 걱정과 염려의 시선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번 정도는 분명 들어보았을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청춘의 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 씨 인데요. 1932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난 그는 올해 칠순을 맞이한 일본문학계의 거장입니다.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한 그의 "청춘의 문"은 2200만부가 팔리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는데, 이 뿐만 아니라 그는 다양한 문학활동을 하면서 출판업계의 새로운 기록들을 만들어내었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나오키 심사위원으로 32년동안 일한 그가 인생의 황혼기에 서서 자신이 경험과 시간을 통해 얻은 삶의 통찰을 들려준 에세이집 "타력"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패전, 난민생활을 거쳐 참 다양하고 극적인 삶을 살아왔던 그가 과연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지혜가 무엇인지 정말로 궁금했습니다. 출시와 함께 일본최대서점인 기노쿠니아 종합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미국의 "Book of the year" 스피리추얼 부문을 수상한 책, "타력"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보실까요.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쓰기 마련입니다만, "타력"에서 이츠키 씨는 자신이 겪은 전쟁의 상흔과 고통의 이야기는 한번도 쓴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고 평생동안의 영향을 끼칠만한 큰 일을 자신의 작품과 접목싴키지 않겠다는 그의 고백이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그 시기에 보고 체험한 것을 저는 거의 소설에 쓰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평생, 그것을 작품으로 발표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12 페이지)

 

하지만 유독 "타력"에서만큼은 그가 평생 이야기 하지 않았던 "그 때"의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어쩌면 70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세계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뇌를 거듭한 그가 마침내 자신의 얻은 지혜 상자를 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타력"은 10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은 서너 페이지를 크게 넘기지 않는 짧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담한 책의 크기를 생각해볼 때 정말 간결하고 컴팩트한 문장들입니다만, 마치 한 편의 시집을 읽는 듯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100개의 장은 어떠한 시스템을 가지고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이런 저런 가지를 치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 역시 100장을 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흐르듯이 써내려갔다고 합니다.

 

"이 책에 담긴 100장은 이 책을 위해 새롭게 쓴 문장에, 지금까지 제가 한 잡다한 발언을 모아 수록한 것입니다. 어수선한 구성이나 불충분한 문장이 눈에 띄지만, 살아있는 감각을 살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일부러 세세하게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읽으면서 아아, 그런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느끼면서 살아왔구나, 하고 납득하는 부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후기 중, 303 페이지)

 

타력의 전 장에 걸쳐서 느껴지는 것은 그의 "겸손함과 겸허함"입니다. 큰 이름을 가지고 일본문학계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을만큼 그는 항상 낮은 자세로 인생의 모든 것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보다는 이치에 대하여 고민하고 문제를 설정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20대인 제가 수많은 인생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그의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만, 비록 같은 의견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의 이러한 겸손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대의 변화의 흐름에서 바라본 인생 이야기

 

20세기 전반은 일본에게 있어 대단한 흐름의 변화가 넘쳐났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맞물려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제 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침략 그리고 패전을 통한 전쟁의 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일본 사람의 입장에서 듣는 이야기는 조금은 새로운 느낌입니다.

그는 전쟁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주위 사람은 물론 일본 국민들 대다수가 일본이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강하고 상대방이 약하기 때문에 아마 이길 것이다라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아예 패전 상황을 고려하지도 않은 자신감이라 할 수 있던 상황이었기에, 전쟁의 종결은 일본 국민들 모두에게 더욱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전후에 종종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일본이 질 것을 알고 있었다든가, 포츠담선언 내용이나 패전의 경위는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라는 의기양양한 얼굴의 언설입니다 [...]

그런 종류의 발언을 들을 때마다 저는 머리로 피가 확 치솟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 당신들은 그 일을 우리 같은 어리석은 일반인에게 왜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인가. 멱살을 잡고 추궁하고 싶은 분노를 종종 느끼곤 했습니다." (202-203 페이지)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인생도 180도 바뀌었습니다. 소중한 가족들이 하나 하나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고, 결국은 홀로 남아 긴 세월을 보내며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가족을 잃은 슬픔들을 가슴에 묻어두며 "세상의 이치가 무엇인가" 라고 묻던 그는 여러 방면에서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며 그 해답을 발견한 곳은 바로 일본의 불교입니다.

 

"불교는 마이너스에서 시작되는 발상입니다. 태어나는 것, 늙어가는 것, 병을 얻는 것, 그리고 죽어가는 것. 이것만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에게 있어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죽음'에서 '삶'을 생각한다. '병'은 인간의 동반자임을 인식한다. '노화'를 자연의 리듬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죽음'을 무리해서 멀리하지 않는다. 이는 실로 부정적 사고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75 페이지)

 

이러한 불교의 가르침과 자신의 삶의 지혜를 집약시킨 것이 바로 "타력" 인 것 같습니다. 100장 중 상당수가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현 세대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는데요, 특히 현대 일본 사회가 점점 극으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저자는 현재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아끼지 않고 드러냅니다. 특히 1997년에 고배에서 일어난 엽기 연쇄살인범 사카키바라 (그의 본명은 "아즈마 신이치로"로 겨우 14살의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와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은 사람을 두번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공표했습니다. 그는 초등학생을 유괴하여 살인한 뒤 목을 잘라 인근 방송탑이나 중학교 정문에 올려놓고는 했는데, 영국의 심령학회에서는 이 사건을 아직까지도 어떠한 "초자연적인 존재"가 개입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사건이나 옴진리교의 지하철 테러 사건 등을 예로 제시하면서 무엇이 그들이 그런 끔찍하고 잔혹한 행동을 하게 했는지에 대해 고뇌합니다. 그는 죄를 범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보다도 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와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이 책의 중심이자 핵심 키워드인 "타력"의 근원에 대해서는 해설을 쓴 마츠나가 고이치 씨의 설명을 듣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타력'과 '자력'은 각각 '타력정토문'과 '자력성도문'이라는 대립개념으로 일본의 불교를 이분해왔다. 그 후 '자력'은 각고면려를 슬로건으로 하는 유교적 윤리로 편입되어왔기 때문에, 그 반동으로서 '타력'이 남에게 의지하는 소극적인 삶의 방식으로 오해된 지 오래이다." (306 페이지)

 

책 전반에 걸쳐가며 이츠키 씨는 이러한 "타력"의 오해를 풀고 그 진정한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해 다방면의 시선에서 설명을 시도합니다. 타력이란 "삶을 끊임없이 비상시로 보는 철저한 자세에서 생겨난 사상" (19 페이지) 이며 "자력의 어머니" (303 페이지) 입니다. 또한 "수많은 간교한 생각을 버리고 순수하게 온몸을 맡기는 것" (28 페이지) 으로 타력 작용의 본질은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 (37 페이지) 이라고 주장합니다.

 

 

 

 

"타력"의 존재를 깨닫고 그것의 비밀을 알아가려 노력한다면 삶을 겸허한 자세로 볼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그것은 흔히 많은 자기계발서와 조언서에서 언급하는 긍정적인 사고나 진취적인 방식과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위기의 시대를 지나가는 현대인으로서는 오히려 그 위기를 받아들이고 현실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타력"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묘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력은 어떠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생각의 원리이기도 하며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처한 우리들에게 필요한 힘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정신적으로 확신을 갖고 기댈 곳을 잃고, 마음을 의지할 곳도 없이 거품처럼 떠다니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진짜 마음의 버블은 지금 찾아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187 페이지)

 

세계화가 되면서 겪게되는 진통을 바라보며 이츠키 씨는 걱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서 고유의 것을 버리고 무리한 변화를 시도하는 일본의 모습에서 그는 "아이덴티티의 붕괴" (167 페이지) 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간에 효과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해결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라고 주장하면서 "타력"이야말로 시대의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인들이 주목해야 할 하나의 "사상"임을 강조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진짜 감정이나 생각을 밖으로 들어내지 않고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을 가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 녀석은 촌스럽다든가 성격이 어둡다는 등의 이유로 공격을 받는 게 가장 무서운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본심을 끝까지 숨긴 채 틀어박혀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 사회의 모든 악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99 페이지)

 

상당히 보수적인 것 같으면서도 진보적인 그의 사상은 현존하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고방식은 "생명의 고귀함과 삶의 소중함"이라는 주제로 축약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남을 품고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요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자살" 역시 "타살"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생명에 있어 어떠한 가치도 두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그는 충고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나 자신이 존엄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나에게 가치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얻기 힘든 생명을 얻었다는, 누구와도 다른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생명이 있기에 존엄하다는 생각입니다." (151 페이지)

 

 

 

죽음에 관한 조금은 특별한 생각

 

앞서 언급하였지만, 이츠키 씨의 생각과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극적인 경험과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어온 그의 입장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닙니다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해설을 쓴 마츠나가 고이치 씨의 글을 읽어보니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저 혼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타력'을 일독한 뒤 '이건 경세의 책인가'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는 이상하다', '어떻게든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해석되는 요소도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타자에게 각성을 촉구한다는 의식보다는 자기의 내면을 고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에 의해 쓴 것처럼 느껴져서[...]" (308 페이지)

 

마츠나가 고이치 씨가 표현한 것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해서 자신처럼 생각하게 만드려는 의도가 아니라,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표출해내었다는 느낌이기에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설령 어떤 사람들에게는 반발감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조금은 특별한 "죽음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 육체가 노쇠하고 병이 찾아온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에 대해서 어떠한 "반격"도 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합니다. 죽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고, 그것은 죽음이 말도 안되게 일찍 찾아온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구상의 열대우림을 닥치는 대로 베어 넘어뜨리고 구이용 영계를 대량으로 사육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양을 소의 사료로 삼는 짓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생물의 목숨을 엄청나게 축소기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간만이 평균수명보다 훨씬 웃돌게 목숨을 연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허용될 수 있는 일일까, 심각하게 생각해봅니다.

연명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옳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끊이질 않습니다." (56페이지)

 

그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죽음 뿐만 아니라 병에 대해서도 적용됩니다.

 

"죽음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암은 엄청나게 운이 좋은 병이라고 합니다. 애냐하면 암은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전혀 치료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삽니다. 스스로 화장실도 못 가게 되는 상태는 죽기 2주 정도 전으로, 그때까지는 건강했을 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고, 책을 읽거나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자기가 죽은 후의 일을 생각할 시간이 있습니다." (64 페이지)

 

이런 발언은 자칫하면 상당히 많은 비판과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지만, 그의 고백은 암 환자들이나 말기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고통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죽음"이라는 논제 앞에 모든 것을 인정하고 초월하려는 의도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것 따위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죽음이 안식이 될 수 있으니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갈 때는 최선을 다해서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것을 놓아야 할 때는 미련없이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상당히 불교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는 몇 차례에 걸쳐 강조합니다.

 

"일단은 사는 것, 존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괴로움 많은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94 페이지)

 

 

인생의 황혼에서 전하는 지혜의 조언

 

서평을 쓰면서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지만 "타력"의 내용을 종합하고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이츠키 씨의 글이 "타력"이라는 핵심 키워드 안에 묶일 수 있다 하더라도 상당히 방대하고 다양한 논제를 어우르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이것 저것을 언급했다가는 그 깊이를 오히려 반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대의 노장 이츠키 씨의 조언이 20대인 저의 마음에도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가 겸허하게 많은 것을 용납하고 인정하며, 낮은 자세로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의 조언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거나는 개인의 결정에 따른 것이겠지만, "타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꺼번에 다 읽어버리는 것보다는 한 장 한 장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어내려가는 것이 좋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