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배우는 정의
켄지 요시노 지음, 김수림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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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참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만, 사실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제가 고른 책이라기 보다는 물주(?)이신 엄마의 취향이 백분 반영된 레퍼토리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청소년들이 보통 읽지 않을 법한 책들을 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동화책을 읽은 기억보다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고전문학집이 떠오르는데요, 그래서 (도대체 어째서 어린이들에게 "권장하는지" 잘 모르겠는) "테스"라던가 "죄와 벌" 혹은 단테의 "신곡"이나 "분노의 포도" 등을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대단히 간소화된 에디션이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이해하기는 무리더라고요.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인가, 어렸을 때 가장 재미있었던 책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역시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의 원작처럼 극 형식이 아닌 소설처럼 풀어쓴) 에디션이었는데, 아직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희곡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랍니다. 책장이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출생부터 죽음까지 베일에 싸인 신비한 존재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지는 수 많은 미스테리에 둘러싸여 있지만, 문학 역사에 있어서 그만큼이나 독보적인 존재로서 한 획을 그은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연구되며 회자되는 것이겠지요.

 

오늘 소개할 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법과 문학"이라는 서로 상극의 관계에 서 있는 두 분야를 연결하고자 하는 대단한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목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를 함께 만나보시죠.

 

 

 

 

 

셰익스피어 매니아가 소개하는 셰익스피어의 정의

 

이 책의 저자 켄지 요시노 교수는 스스로를 "셰익스피어의 광팬"이라고 선언합니다 (8 페이지). 영문학을 전공한 뒤 로스쿨로 진학한 뒤에도 문학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고민하던 그는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단지 하나의 "문학"이 아니라 심오한 법적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논문 주제로 채택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스팩터클" 주제는 문제도 많고 탈도 많은지라 그가 가야할 길은 상당히 어렵고 무모해보일 수 밖에 없었지만, 마침내 그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해보일 수 있었고, 그 결과가 바로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이 그의 논문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지는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지만, 정확한 인용구와 형식, 그리고 색인 등을 참고할 때 아마도 상당수 논문의 내용과 일치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총 9장동안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현대의 주요 사건 혹은 논제들을 연결시켜 소개합니다. 오제이 심슨 재판이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지난 몇 십년 동안의 스캔들과 셰익스피어의 작품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것은 처음에는 의아한 일입니다만, 저자가 제시하는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나가다 보면 정확하게 맞물려가는 두 개의 스토리에 깜짝 놀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마치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본 사람처럼 사람들의 심리와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데, "세상의 모든 것은 순환한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그의 작품은 실제 사건들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통찰력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또 다른 가치 반열에 올려두는 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즐거운 것은 역시 셰익스피어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입니다. 스스로를 셰익스피어의 광팬이라고 부를 정도로 셰익스피어 작품세계에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열정을 투자한 그는 (작품이 잘 알려진 것에 비해 대부분) 미궁에 빠져있는 셰익스피어 문학에 대한 다양한 증거와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각 장마다 친절하게 작품의 줄거리와 골격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 작품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무리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특히 "티투스 안드로니쿠스"나 "자에는 자로"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보다 자세하게 그 줄거리와 등장인물이 설명되어 있어 원작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실제 사건과의 연계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In a parallel world

 

"지금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이 세계과 똑같은, 하지만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라는 주장은 이미 수많은 미스테리와 사이언스 픽션 영화 혹은 소설 등에 즐겨 등장하는 테마입니다. 심지어는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며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도플갱어 미신 역시 유럽 등지에서는 널리 퍼져 있을 정도니까요.

 

 

 

 

흔히 셰익스피어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그의 과장섞인 문체와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들, 공감하기 힘든 줄거리라던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지 못한 전개를 주로 이유로 꼽으시는데요, 이 책을 읽다보면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가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추악한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이 결코 과장도, 거짓도 아닌 것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셰익스피어야 말로 프로이트 이전 이미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던 대단한 심리학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저자는 효과적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의 등장인물들과 현존하는 인물들의 상관관계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연극 속에서만 만나던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우리의 삶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실존하는 인물"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행세계"를 통해 우리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판단의 오류와 잘못된 전개가 어디 있었느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명쾌한 해석과 열린 질문

 

프로이트가 다소 도발적인 이론과 발언으로 인간의 추악한 본질에 대해서 설명하려 했다면, 셰익스피어는 상당히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프로이트는 엄청난 반대와 비판 그리고 질타를 평생 짊어지고 가야 했지만, 셰익스피어는 그와는 상반되게 제대로 신분이 밝혀지지도 않은채로 전 세계 인류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요.

 

그 진위가 어떻던지간에 자신이 결국은 추악한 괴물이며,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을 즐겁게 듣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막장드라마"들은 그 수위가 높을 수록 더욱 더 큰 관심을 받게 됩니다. 결국 사람은 "공감하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되기 마련인데, 말하기도 거북한 막장 드라마의 내용에 몰입한다는 것은, 그것을 공감하고 있다고 바꾸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간교한 하인의 술책에 넘어가 무고한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오셀로나 마녀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맥베스 부부가 흥미로운 것은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것이 어느정도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성격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책은 "확실히 이렇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읽은 뒤 그 내용을 다시한번 되짚어보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증거제시와 연구 발표를 토대로 한 풀 (Pool) 안에서 우리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것이죠.

 

 

 

 

논문 주제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도발적인 주제 "셰익스피어와 정의의 상관관계"는 이 책을 통해 충분히 검증되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제본이나 종이의 품질이 뛰어난 책이랍니다. 중요하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임에는 분명하니까요. 권말에는 저자가 제시한 문헌들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어 조금 더 심도있는 분석을 원한다면 참고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러한 문헌 리스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영문으로 되어있어 우리나라에 해당 문헌이 번역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네요.

 

책을 읽는 내내 어렸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라 그런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안에서의 권선징악이 실제 생활에도 통용되는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살해하면 분명 자신의 죗값을 치루게 된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법이 활개를 치고 억울한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가는가 하면 천인공노할 악당이라도 돈이나 연줄로 죽는 날까지 호위호식하며 살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세계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작품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게 제시할 수 있는 법학적인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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