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산다고 틀린 건 아니야 - 부모의 행복으로 아이를 빛내주는 부모 인문학 부모 인문학을 만나다 1
김흥식.이수광 지음 / 영진미디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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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허투루 읽어선 안되는 책이 있다. 전국투어 리허설과 공연을 돌며 짬짬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인데, 읽으면 읽을 수록 곱씹어야 할 내용이 많았기에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음미하게 된 책이 바로 <다르게 산다고 틀린 건 아니야>다.

이 책의 공동저자이신 이수광 씨는 전 이우 중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분이다. 웬만한 엄마들은 알만한 이우 중고등학교는 대안학교 중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재학생들의 성적이 좋고 명문대로 많이 진학해서가 아니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건강한 교육이념과 철학으로 진정한 교육을 지양한다는 데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돌쟁이 엄마에겐 먼 훗날의 이야기긴 해도 여건만 된다면 아들도 이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멋진 학교라고 생각했는데, 이 학교 이념의 핵심인물이셨던 이수광 씨가 공동저자라는 말에 더없이 반가웠다. 특히 이 책은 "좋은학교만들기네트워크"라는 특별한 기획 시리즈 중 "부모 인문학을 만나다"의 첫 책인데, 앞으로 발간될 시리즈 역시 빠짐없이 잘 챙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아보았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흠 하나 없는 깨끗한 큰 도화지를 선물받은 느낌이었다. 앞으로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아들이 스스로 택하는 것이겠지만, 가장 기초가 되는 밑그림은 엄마인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두려울만큼 무겁게 다가왔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렸을 때의 교육(이라기보다는 부모의 역할과 집안 분위기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있었기에 더 했다. 아직 알아듣지 못하는 월령대라 하더라도 말 한 마디를 조심하게 되었고 무심코 하는 행동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확실히 깨달은 것은 "자식에게 가식적으로 하는 행동은 결코 교육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진심으로 바뀌고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연기하듯 건네는 예쁘고 고운 말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갔으면 좋을지 고민하기보다는 그 전에,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십시오. (140-141 페이지)


'부모는 아이의 거울'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자신이 비도덕적이고 기회주의자이며 편법을 써서라도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도덕과 신념을 가르칠 수 있기 만무하다. 결국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키포인트는 부모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훌륭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고, 내 인생의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해야한다고 책은 조언한다. 그동안 별 생각없이 세상을 살아왔다 하더라도, 이제 내 인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직시하고 목표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큰 이유가 생긴 것이다.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다른 중요한 테마는 바로 배움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 역시 배움=성적, 배움=시험의 공식으로만 이해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공부하기 좋아했던 나조차도 왜 공부를 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재미있어서요" 정도였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배움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유해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왜 배워야 하는가? 일차적으로 배움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자유로움의 본질적 의미는 사고의 자유로움에 있다. 사유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을 때, 경험의 세계를 넘어 개념의 세계가 열릴 때, 다양한 영역이 중층적으로 연결된 일상을 성찰할 때 세상과 자신에 대한 인식수준이 달라진다. (180 페이지)


과연 내가 공부함으로서 얻은 지식은 나와 세상에 대한 인식수준을 향상시키고 있었을까 아니면 남들보다 많이 안다는 우월감에 오히려 나 자신을 우물 안에 가두고 있었을까? 책에 나오는 "제대로 배운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 자신이 (그간 참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배운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내 아이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건강한 사고를 물려줄 수 있을지... 확신에 가득 차 "네"라고 대답할 수 없기에 더욱 노력하고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을 사람처럼 만드는 것이 바로 인문학 아닐까. 지나치게 실용주의에 빠져 소홀해졌었다면 이 책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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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작업 노트 2 - 완벽한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60가지 방법 사진가의 작업 노트 2
데이비드 두쉬민 지음, 홍성희 옮김 / 정보문화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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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데이비드 두쉬민이라는 포토그래퍼는 이미 "사진을 말하다"의 저자로 만나보았었다. 시각적 미학이라고는 먹고 죽을라 해도 없을 정도로 궁핍한 나지만 언제나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숨겨진(?) 욕망을 가지고 있던터라 사진에 관한 책이라면 적어도 한번 쯤은 페이지를 훑어보곤 했으니 말이다. 그런 나에게 두쉬민의 책은 일단 1) '셔터 스피드란 무엇인가' 등의 지극히 기술적인 관점에서 시작하지 않으며 2) 한 마디 말보다는 직접 찍은 사진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3) 좋은 장비가 아니고선 당최 제대로된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것처럼 포장하는 책이 아니었기에 좋았다. 게다가 이런 엄청난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한 그의 말투란! 가끔 자기 자신과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을 일컬어 "우리"라고 표현하는 그의 말에 울컥했던 건(?) 나 뿐일까? 여하튼 두쉬민이란 작가는 내 머릿속에 따뜻하고도 멋진 사람으로 남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의 신간 소식이 들려왔을 때, 얼른 두 손을 번쩍 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제목마저 "사진가의 작업 노트"라니! 근데... "사진가의 작업 노트 2"?? 1권이 언제 나왔었나??
책을 받자마자 뒷날개를 펼쳐보니 이미 "사진을 말하다" 외에도 세 권이나 정보문화사에서 출판된 터였다.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빼곡한 스케쥴에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도 이렇게 부지런히 집필까지 하고 있다니.. 다시 한번 저자가 위대해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사진가의 작업 노트 2". 이 책은 "완벽한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60가지 방법"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1권이 사진찍는 전반에 관한 창의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이니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읽어봐야겠단 생각이다.



60개의 레슨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구성으로 살펴본다면 1주일에 하나씩 공부한다 하더라도 거의 1년에 육박하는 시간이다. 몇 페이지 밖에 안되는 내용을 무슨 일주일동안 공부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일단 이 책에 쓰인 내용들은 단순히 카메라나 사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다는 예술행위에 대해 하나씩 고찰할 수 있는 테마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조차 촉박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물론 일주일 동안 사진 찍기에만 열중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뭔가 읽어내려가면 갈 수록 어마어마한 (작가의 말마따나) 사진 학교에 입학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 같은 초보는 아직도!!! 셔터 스피드와 조리개, ISO 같은 초초초보 기본 내용도 헷갈리는 터라 이 책을 읽으면서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건 뭐... ABC를 모르는데 회화를 배우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어느 순간 바로 그것이 이 책을 더욱 읽어야겠다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책으로 사진을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알파벳을 모른다 하더라도 유창하게 영어를 하면 그만 아닌가? 그리고 저자 역시 그의 예전 저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진은 기술이나 장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엇을 담고 싶은지 표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터라 위로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가 또 다시 확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각설하고 정리하자면...
제대로 스승님을 한 분 모신 그런 느낌이다. 스승님이 너무 대단하시다 보니(?)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할 학교에 입학한 느낌이랄까.
좀 더 좋은 것은 과제를 안했다고 눈치가 보인다거나 수업에 게을리 참여해서 혼날 일이 없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그래서 외부의 압박(?) 없이도 스스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웬만한 학원이나 강의를 듣는 것보다 더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감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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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 문화 다 스타 산책
권유리야 외 지음 / 문화다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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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래야 죽을 시간도 없는 요즘이지만(?) 출간 소식을 듣고 이 책은 왠지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이유모를 의무감이 들었던 책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꼭 읽어야만 하는 그런 책 말이다.

"마왕" 신해철이 떠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믿을 수 없을만큼 황당하게.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들은 법앞에 세워진 상태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재판을 통해 정의가 실현되길 기도하는 것 뿐이니 잠시 옆에 밀어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오히려 그가 살아있을 때 어떤 존재였고, 그의 음악과 업적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 싶다. 아니, 그 전에 "마왕"을 제대로 추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신해철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던 평론가들과 팬들이 그를 추모하며 쓴 이 책은, 그를 만났던 저자들만큼이나 다채롭고 군데군데 그리움과 애정으로 얼룩져있다. 저자의 연령층도 50대 대학 교수부터 30대 음악평론가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두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문화예술 분야의 평론가라는 것이며, 둘째는 직접적이든 그렇지 않든 생전 신해철과 의미있는 "만남"을 가졌던 것이다.


그들의 만남의 종류, 그리고 추모하고자 하는 분야에 따라 책은 "신해철을 그리워하며", "신해철과 대중", 그리고 "신해철의 음악 세계"의 세 파트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무려 14명의 저자의 글들이 모여있는데도 신기하리만치 그들의 추모사와 헌정사는 일치하는 굵은 내용적 흐름이 있다. 문체만 다를 뿐 마치 한 사람의 마음으로 쓴 것처럼 말이다. 특히 신해철의 노래를 들으며 가장 찬란했던 20대를 보낸 저자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 때 그 시절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게 된다. 물론 신해철이 데뷔하고 왕성한 활동을 펼쳤을 때 그의 음악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기에, 넥스트의 노래라고는 애니메이션 "라젠카"의 사운드트랙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정작 애니메이션은 제대로 본 적이 없는게 함정). 투니버스에서 집중 홍보되던 라젠카 뮤비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엄청나게 멋진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을 만들기 시작했구나 싶어 두근두근 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보다 약 10년 정도 먼저 태어난 세대에게 신해철은 대중가수나 아티스트 이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시대가 만들어낸 고독하고 외로운 천재였고, 죽음으로 우리 곁을 떠나기까지 마땅히 받아야 할 평가와 관심을 누리지 못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물론 본인이 손사래치며 받으려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신해철을 말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설", "거침없는 비판"과 "트러블메이커" 정도였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졌던 단편적인 인식들이 사회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슈가 되기 위해서, 남들보다 잘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자극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삐뚤어진 세상 가운데서 소신껏 말하다 돌에 맞아 죽더라도, 할 말은 다 하고 세상을 떠야겠다는 그의 신념을 곧이 곧대로 표현했던 것이 아닐까 사뭇 가슴이 먹먹해졌다.


대중음악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3-40년의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예전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끝없이 그립게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음악이 더이상 음악으로 존재하지 않는, 소비되고 거대한 자본에 의해 팔고 팔리는 콘텐츠가 된 지금, 소위 "외면받더라도 할 말은 하는" 음악이 설 수 있는 자리는 너무나도 협소하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모바일 등으로 플랫폼은 정말 많아졌지만, 오히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모든 것이 소음이 되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모든 것이 뒤엉킨 아수라장 가운데 판 돈 높은 홍보의 효과를 누리는 음악"콘텐츠"들이 시선을 끄는 동안 그렇지 못한 음악들은 점점 저 바다 깊숙히 가라앉아버리겠지.

물론 음악산업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음악이 볼거리와 오락의 요소로 변질되면서 뮤지션을 꿈꾸는 다음세대조차 깊이 있는 음악보다는 "잘 팔리는" 음악을 하고싶어 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신해철은 갔더라도 그의 음악이 주는 울림이 우리와 함께 좀 더 오래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이 변해갈 때 같이 닮아가는 내 모습에
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보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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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세 말걸기 육아의 힘
김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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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인식장애는 물론 이름기억장애(?)까지 가지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의 이름을 - 그것도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 특별한 의미다. 특히 일이나 개인적으로 기억해야 하는게 아닌데 뇌리속에 인식된 것이라면 더더욱. 이 책의 저자인 김수연 원장님이 그랬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우리집 책꽃이에 꽃혀 있던 책. 오늘 소개할 김수연 원장님이 2010년 쓰신 <김수연의 아기발달클리닉>이다. "집에서 하는 아기발달검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열심히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감명깊게(?)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기들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한 가지만 정답이라고 제시해주시는 느낌이랄까... 뭐 초보 엄마인지라 괜한 자존감 부족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ㅎㅎ

아무튼 그런 기억이 있다보니 이번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을 읽기 시작했을 때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명한 유아발달전문가가 쓰신 책이니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특히 "엄마가 건네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내 아이를 똑똑하게 만든다"는 슬로건이 마치 "내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똑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져 살짝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똑똑해져서 나쁠 게 뭐 있겠냐만은, 뭔가 '더 똑똑해서 명문고 명문대를 지나 대기업에 취직해 보란듯이 번지르르하게 살아야한다!'는 토할 것 같은 취지로 쓰인 책들에 워낙 알레르기가 있는지라...("초등 4학년부터 시작해야 SKY 간다"라던가 "초등 4학년 공부뇌가 일류대를 결정한다"라던가... 그러고 보니 두 책이 저자가 같군?!)

각설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 처음 몇 페이지를 대충 훑어보고 나중에 제대로 읽을 생각이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읽어버렸다. 그만큼 흡입력 있고 가독성도 좋았던 책이었다. 내용은? 지금까지 읽었던 많은 육아서가 있지만, 이 책은 적어도 아들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읽고 또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책 앞에는 김수연 아기잘달 연구소의 홈페이지와 자료실이 소개되어 있다. 책을 읽고나니 아직까지 어떠한 발달문제도 느껴지지 않았던 아들이지만 한번 상담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의 애착이라던가 아기의 마음을 읽는 것. 때때로 너무 가깝게 있기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들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랄까? 집에서 좀 먼 것이 문제로구나...
(홈페이지를 아무리 뒤져봐도 검사가격이 나와있지 않던데, 이 부분은 아마 직접 전화해서 물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특별한 발달이슈를 보이고 있지 않다면 책의 내용으로 충분히 중간검사를 해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초보 엄마라면 당황할 수 밖에 없는 일상의 크고 작은 이슈들을 그림과 함께 자주 소개하고 있어 유용하다.
얼마 전부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아들 덕분에 당황하기 일쑤였는데, 집에 있을 때면 그저 웃으며 "에이~ 그러지마~" 할 수 있어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그러면 폐가 된다는 생각에 진땀이 흘렀다. 한번은 뷔페에 가서 식사하려다 아기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먹지도 못하고 나와버렸던 때도 있었으니까.
책에서 보니 그럴 땐 엄마가 등을 돌려 앉거나 무관심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바람직한 대처방법이라고 한다. 물론 한두 번 해서 바뀌지는 않겠지만 괜시리 같이 흥분하고 당황해서 아이에게 못되게 되지 않도록 새겨들어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분리되는 겉표지 안에 두 권의 책이 들어있는데, 나머지 한 권은 18개월에서 60개월, 즉 한살 반부터 만 5세까지 간단히 해볼 수 있는 언어이해력 평가집이다. 이번 저서가 언어발달과 언어이해력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보니 평가 역시 18개월 이후부터! 꼬꼬마 아들은 아직 7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구나 ㅎㅎ

책을 펼치면 엄마와 아기가 마주앉았을 때 한 면은 아기가 보고 다른 면은 엄마가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림을 보고 엄마가 무언가를 물었을 때 아기가 대답할 수 있도록(혹은 그림을 가리키며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평가지다. 언젠가 아들과 이것을 함께 할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렌다.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을지... 물론 이 평가지에 기록된 월령대는 평균치이므로 발달 과정에 있어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언어가 발달하는 시기에 나누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어, 아기의 월령대에 따라 읽고 복습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시기에 따라 표현방법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결국 이 책이 주고 있는 가장 큰 메시지는 "0세부터 5세까지는 아기가 얼마나 말을 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라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 점차적으로 발달하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깊이가 달라지고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게 되는데, 단순히 가시적으로 아기가 몇 단어를 구사하는지, 얼마나 말을 하는지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또 한가지. 아기가 정상 범위에서 발달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문제행동을 하게되는 경우, 누구보다도 힘들고 속상할 엄마들을 위한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있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육아의 고충을 모두 이해하고 토닥토닥해주시는 듯한 원장님의 말씀에 위로받을 엄마들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책을 읽기 전 걱정했던(?) "아이를 똑똑하게 만드는" 말걸기는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게 하려는 시도가 아닌,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게 만드는 언어능력임을 확인하고나니 이 책에 더욱 애착이 간다. 아들이 좀 더 자라 발달 검사지의 내용들을 활용할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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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부 선생님, 안녕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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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진학하며 전공을 미디어작곡으로 바꾸었고, 명색이 영화음악 전공생이었던 내가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음악 작곡가라고는 "존 윌리엄스" 정도였다. 교수님의 얼척없는 표정을 보고나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맘속 깊이(?) 반성하게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전까지만 해도 영화 크레딧을 눈여겨 본 적이 없었다. 영화가 끝나면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나는 족속이었던 내게 간판스타 급의 주연배우 이름과 영화제목을 제외한 다른 제작진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 같았다.

갑자기 웬 영화이야기인고 하니,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었던 내 독서습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책을 감동가득 읽더라도 저자나 역자를 확인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말이다. 오죽하면 소설의 이름만 대면 무슨 내용인지 줄줄 꿰고 있었음에도 저자 이름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을까. 대학원 진학 후 일어난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내가 보고 들은 것에 있어서는 가장 작은 디테일이라도 기억하고, 기억하지 못할 경우 메모라도 하려는 버릇을 기르려고 마음먹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아무튼 히가시노 게이고는 <용의자 X의 헌신> 이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가가 되었다. 숨막히는 전개와 탄탄한 스토리라인에 매료되어 무라카미 하루키, 미야베 미유키와 함께 신간이 나올 때마다 꼭 찾아읽는 일본 작가가 되었던 것이다(근데 왜 써놓고 보니 다 하나같이 대중적인 작가들이냣).
살아있는(?) 작가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펜을 놓지 않는 한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가의 스타일와 취향도 변하게 되고, 그것을 함께 경험하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으니, 오늘 소개할 <시노부 선생님, 안녕!>처럼 저자의 예전 작품이 새롭게 번역 발간이 되기도 한다. 이보다 더 오래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오사카 소년 탐정단>의 후속작이라는데, <오사카 소년 탐정단>을 읽지 않은 나로썬 시노부 선생님을 이 작품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이 일본에서 발간된 것이 1996년이니 무려 2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시노부 시리즈 제 1화인 '시노부 선생님의 추리'를 쓴 것이 자신의 데뷔 이듬해, 즉 1986년이라고 하니, 그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무려 30년의 시간이 흐르는 셈이다. 시노부 선생님의 이야기는 2000년과 2012년 두 차례 씩이나 드라마로 방영되었다고 하는데, 소설을 읽어보니 "소설의 드라마화"라는 OSMU라기 보다는 애초에 드라마를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형화된 플롯 덕분에 다양한 이야기를 통일성 있게 한 회 한 회에 풀어나갈 수 있는데다 회가 거듭할 수록 주인공와 주변인물에 대한 몰입도도 높아진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사실 10대 때 비슷한 종류의 시리즈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선 좀 생소한 Lilian Jackson Braun의 "The Cat Who" 시리즈였다. 8천킬로의 긴 이삿길에도 꾸역꾸역(?) 단행본 여섯 권을 챙길 정도로 참 좋아했던 소설이다. 한 마리의 샴고양이가 장식하고 있는 북커버들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작품에서 등장하는 고양이는 두 마리지만) 이들을 키우는 형사의 이야기가 단행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한 스토리가 약 150-200 페이지 정도였다.
시노부 시리즈를 읽으면서 이 시리즈가 생각이 났던 것은 아마도 일어난 사건 만큼이나 주인공과 주요인물 자체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잭슨 브라운의 시리즈에 반해 시노부 시리즈는 각 편이 40~80 페이지 남짓으로 상당히 짧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가독성이 좋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보니 후루룩(?) 잽싸게 읽게 되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막 읽기 시작했는데 이미 끝나버린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 처음으로 반 정도를 읽고 난 뒤 잠시 덮어두고 어느정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아무리 길어도 읽기 시작한 자리에서 끝장을 보던 다른 작품들과는 좀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엉성하고 시시한(?) 느낌이랄까나..;;

아무튼간에 내가 읽고 반했던 <용의자 X의 헌신>은 이 책이 발간된지 10년 뒤인 2006년에 출판되었고, 그 작품으로 나오키 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으니 확실히 이 책과는 다른 입장에서 쓰여진 책일 것이다. 예술가에게 10년이라는 세월이 그 작품세계에 있어 얼마나 크고 방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그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부터가 쓸데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쉽고 허탈한 마음이 드는 건 무슨 느낌인지. 지금의 히가시노 게이고를 생각하고 기대에 가득차 읽은 것이 원인인 것 같다.

그렇다고 <시노부 선생님, 안녕!>이 재미가 없다던다 읽을 가치가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을 떼놓고 본다면 흥미진진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임에 분명하다. 가독성도 엄청나고, 금새 몰입되어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인데다가 개성만점의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인 작품이니 말이다.
그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엄청난 브랜드(?)에 기대했던 작품이 아니라 조금은 허탈할 뿐. 뭔가 그의 신작을 더욱 더 기다리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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