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부 선생님, 안녕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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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진학하며 전공을 미디어작곡으로 바꾸었고, 명색이 영화음악 전공생이었던 내가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화음악 작곡가라고는 "존 윌리엄스" 정도였다. 교수님의 얼척없는 표정을 보고나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맘속 깊이(?) 반성하게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전까지만 해도 영화 크레딧을 눈여겨 본 적이 없었다. 영화가 끝나면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나는 족속이었던 내게 간판스타 급의 주연배우 이름과 영화제목을 제외한 다른 제작진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 같았다.

갑자기 웬 영화이야기인고 하니,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었던 내 독서습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책을 감동가득 읽더라도 저자나 역자를 확인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말이다. 오죽하면 소설의 이름만 대면 무슨 내용인지 줄줄 꿰고 있었음에도 저자 이름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을까. 대학원 진학 후 일어난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내가 보고 들은 것에 있어서는 가장 작은 디테일이라도 기억하고, 기억하지 못할 경우 메모라도 하려는 버릇을 기르려고 마음먹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아무튼 히가시노 게이고는 <용의자 X의 헌신> 이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가가 되었다. 숨막히는 전개와 탄탄한 스토리라인에 매료되어 무라카미 하루키, 미야베 미유키와 함께 신간이 나올 때마다 꼭 찾아읽는 일본 작가가 되었던 것이다(근데 왜 써놓고 보니 다 하나같이 대중적인 작가들이냣).
살아있는(?) 작가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펜을 놓지 않는 한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가의 스타일와 취향도 변하게 되고, 그것을 함께 경험하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으니, 오늘 소개할 <시노부 선생님, 안녕!>처럼 저자의 예전 작품이 새롭게 번역 발간이 되기도 한다. 이보다 더 오래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오사카 소년 탐정단>의 후속작이라는데, <오사카 소년 탐정단>을 읽지 않은 나로썬 시노부 선생님을 이 작품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이 일본에서 발간된 것이 1996년이니 무려 2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시노부 시리즈 제 1화인 '시노부 선생님의 추리'를 쓴 것이 자신의 데뷔 이듬해, 즉 1986년이라고 하니, 그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무려 30년의 시간이 흐르는 셈이다. 시노부 선생님의 이야기는 2000년과 2012년 두 차례 씩이나 드라마로 방영되었다고 하는데, 소설을 읽어보니 "소설의 드라마화"라는 OSMU라기 보다는 애초에 드라마를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형화된 플롯 덕분에 다양한 이야기를 통일성 있게 한 회 한 회에 풀어나갈 수 있는데다 회가 거듭할 수록 주인공와 주변인물에 대한 몰입도도 높아진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사실 10대 때 비슷한 종류의 시리즈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선 좀 생소한 Lilian Jackson Braun의 "The Cat Who" 시리즈였다. 8천킬로의 긴 이삿길에도 꾸역꾸역(?) 단행본 여섯 권을 챙길 정도로 참 좋아했던 소설이다. 한 마리의 샴고양이가 장식하고 있는 북커버들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작품에서 등장하는 고양이는 두 마리지만) 이들을 키우는 형사의 이야기가 단행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한 스토리가 약 150-200 페이지 정도였다.
시노부 시리즈를 읽으면서 이 시리즈가 생각이 났던 것은 아마도 일어난 사건 만큼이나 주인공과 주요인물 자체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잭슨 브라운의 시리즈에 반해 시노부 시리즈는 각 편이 40~80 페이지 남짓으로 상당히 짧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가독성이 좋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보니 후루룩(?) 잽싸게 읽게 되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막 읽기 시작했는데 이미 끝나버린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 처음으로 반 정도를 읽고 난 뒤 잠시 덮어두고 어느정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아무리 길어도 읽기 시작한 자리에서 끝장을 보던 다른 작품들과는 좀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엉성하고 시시한(?) 느낌이랄까나..;;

아무튼간에 내가 읽고 반했던 <용의자 X의 헌신>은 이 책이 발간된지 10년 뒤인 2006년에 출판되었고, 그 작품으로 나오키 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으니 확실히 이 책과는 다른 입장에서 쓰여진 책일 것이다. 예술가에게 10년이라는 세월이 그 작품세계에 있어 얼마나 크고 방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그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부터가 쓸데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쉽고 허탈한 마음이 드는 건 무슨 느낌인지. 지금의 히가시노 게이고를 생각하고 기대에 가득차 읽은 것이 원인인 것 같다.

그렇다고 <시노부 선생님, 안녕!>이 재미가 없다던다 읽을 가치가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을 떼놓고 본다면 흥미진진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임에 분명하다. 가독성도 엄청나고, 금새 몰입되어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인데다가 개성만점의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인 작품이니 말이다.
그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엄청난 브랜드(?)에 기대했던 작품이 아니라 조금은 허탈할 뿐. 뭔가 그의 신작을 더욱 더 기다리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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