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

<夏의 영역 圖>
夏는 기원전 2070년경부터 기원전 1600년경까지 중국에 존재했던 최고(最古)의 왕조(王朝)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하후(夏后)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또한 하(夏)와 은(殷) 그리고 주(周)를 삼대(三代)라고 하며, 사기(史記)의 죽서기년(竹書紀年) 등, 중국의 사서(史書)에서는 초대(初代) 우(禹)로부터 말대(末代) 걸(桀)까지 14세(世) 17대(代) 471년간 계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결국 은(殷)에 의해서 멸해졌으며, 그리고 종래(從來) 그것은 전설로 취급되기도 했으나, 근래의 고고학 자료의 발굴에 의해서 점점 실재(實在)였던 것으로 재평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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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

은(殷 또는 商-기원전 17세기경에서 기원전 1046년)은 중국의 왕조 중 하나였으며, 문헌(文獻)에는 하(夏)왕조를 멸하고 세워진 왕조라고 했고, 고고학적으로 그 실재(實在)가 확인되고 있는 최고(最古)의 왕조였다. 그리고 기원전 11세기에 주(周)에 의해서 멸해졌다.
※ 단, 은(殷)은 이(夷-漢民族이 봤을 때의 異民族)이기 때문에, 중국 최고(最古)의 왕조는 주(周)라는 설이 있으며, 한민족(漢民族)은 현재 중국인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족이다. 그리고 그 유래는 한(漢) 시대까지 거슬러서 올라가며, 그 전에는 한민족(漢民族)이라고 하지 않고 화하족(華夏族)이라고 불렀다. 그랬던 것이 한(漢)이 시작되면서부터 그 명칭이 사용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은(殷)은 주(周) 등에 의해서 사용되었던 명칭이었으며, 그것은 하(夏) 역시도 마찬가지로 은(殷)에 의해서 불려졌던 이름이었다. 그리고 사기(史記)에서는 일관되게 은(殷)이라고 표현했으며, 그 한편으로는 상(商)을 자칭(自稱)했다는 관점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현재 중국에서는 그 은(殷)을 거의가 상(商) 또는 상은(商殷)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또 그 상(商)은 <통지(通志)> 등에 의하면 은(殷)왕조의 조계(祖契)가 그 상(商-亳)에 부임했던 것이 유래였다고 한다.
※ 계(契)는 은(殷)왕조의 시조(始祖)라고 생각되는 전설상의 인물이었고, 자계(子契)라고도 불렸다. 그리고 그는 유융 씨(有娀氏)의 딸로, 제 곡(帝嚳)의 둘째 왕비였던 간적(簡狄)이 자신의 여동생과 함께 현구(玄丘)라는 곳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제비 알을 먹고 태어났다고 하며, 요(堯)의 시대에 탄생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자 그는 그 후에 요(堯)와 순(舜) 그리고 우(禹)를 섬겼으며, 특히 우(禹)의 황하(黃河) 치수(治水) 때 우(禹)를 도왔고, 그러자 또 순(舜)은 그 공적을 높이 평가해서 상(商)의 땅으로 그를 부임시키면서 자(子)라는 성(姓)까지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간적(簡狄)은 위의 설명대로, 고대중국의 전설상의 여성이었으며, 유융 씨(有娀氏)의 장녀(長女)였고, 제곡(帝嚳)의 둘째 왕비, 계(契)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또 그녀는 요(堯) 시대에 여동생과 함께 물놀이를 갔다가 알을 입에 물었던 현조(玄鳥=제비)가 실수로 떨어뜨린 오색(五色)의 진귀한 알을 주웠다고 한다. 그러자 자매(姉妹)는 그것을 서로 가지려고 다투었지만, 그러나 간적(簡狄)이 그것을 차지했다. 하지만 간적(簡狄)은 또 실수로 그것을 삼키고 말았는데, 그러자 그 후에 계(契)를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 간적(簡狄)은 인사(人事) 즉, 지금 말로 하면 정치 같은 것을 좋아했고, 천문(天文)을 알았다고 하며,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후, 계(契)가 성장했을 때, 그에게 사람의 도리(道理)를 가르쳤다고 하며, 그러자 또 총명하고 우수했던 계(契)는 그 가르침을 잘 받아서 나중에 남들에게 이름을 알릴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또 그 후에 계(契)는 요(堯)를 섬기게 되었고, 이어서 사도(司徒)에 임명되어서 박(亳)에 봉해졌다.
○ 사도(司徒)는 삼공(三公)의 하나로, 고대 중국에서 호구(戶口)와 전토(田土) 그리고 재화(財貨)와 교육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벼슬이름이며, 박(亳)은 땅이름으로, 위치는 아래의 그림 참조바람.

<현 亳州市>
그 후, 순(舜)이 즉위한 후에도 그는 사도(司徒)의 직을 유지했으며, 그의 자손대대로 그 박(亳)에 살았고
성탕(成湯) 때에 천자(天子)가 되었다.
그리고 은허(殷墟)에서 발견되었던 갑골문자(甲骨文字)로부터 그 도(都)를 상(商) 또는 대읍상(大邑商)이라고 불렀던 사례(事例)도 있었음이 확인되었으며, 그런 연고로 그 후의 주(周)는 은(殷)의 도(都)를 상읍(商邑)이라고 불렀다.

<갑골문자>
※ 은허(殷墟)는, 중국 허난 성(河南省)의 안양 현(安陽縣)에 있는 은나라 때의 유적으로, 기원전 14세기에서 기원전 11세기까지 은나라 후기의 도읍이 있었던 곳이었으며, 19세기 말에 문자가 새겨진 귀갑수골(龜甲獸骨-위릐 사진 참조)이 발굴되었고, 1928년부터 행해졌던 조사에서는 크고 작은 분묘와 궁전 그리고 종묘지(宗廟址), 움집터, 청동기, 토기, 옥석기(玉石器) 등의 유물이 발굴되어서, 은나라의 정치와 사상 그리고 그 생활과 교역권(交易圈) 등을 알게해 주었다.

<세계유산 은허 유적지>
하지만 그것은 확정적으로 해석된 것은 아니며, 상서(尙書)에서는 상(商)이 사둉되었다.
그리고 또, 그 왕가(王家)의 성(姓)이 자(子)라고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러나 은(殷)에서는 왕족(王族)을 자정(子鄭) 또는 자상(子商) 등으로 불렀기 때문에, 그래서 또 아마도 그것은 자(子) 자(字)에다 영지(領地)라고 생각되는 지명(地名)을 붙여서 불렀던 결과였을 것으로 생각이 되며, 그리고 또한 그들의 성(姓)이 자(子)가 아닌 호(好)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20세기 초두(初頭)까지만 해도 그 은(殷)은 전설상의 왕조로 생각되었고, 특히 19세기 말기의 중국(中國)고대사(古代史) 계(界)에서는 그에 대한 의문을 품으면서 사기(史記)의 기술(記述)조차도 전부 가공(架空)의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런데 그 후에 갑골문자(甲骨文字-龜甲獸骨문자)의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러자 그 내용이 사기(史記)의 기술(記述)과 거의 일치하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그것으로 은(殷)의 실재성(實在性)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고고학의 진전에 따라서 그 은(殷)이 <이리강(二里岡) 문화>였다는 것이 통설(通說)이 되었고, 정주(鄭州) 부근이 상(商)왕조의 초기 중심지라고 생각됨에 따라서, 그 <이리강 문화>를 <상(商)왕조의 초기단계>였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은(殷)왕조는 시조(始祖)였던 계(契) 이후, 탕(湯)까지의 14대 간에 8번 도읍을 옮겼다고 하며, 아래는 그 14대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이므로, 관심이 있으신 분은 참고 바랍니다.
契(始祖)-昭明(契의 子)-相土(昭明의 子)-昌若(相土의 子)-曹圉(昌若의 子)-冥(曹圉의 子)-王亥(高祖-冥의 子)-王恆(王亥의 弟)-上甲微(王亥의 子)-報丁(上甲微의 子)-報乙(報丁의 子)-報丙(報乙의 子)-主壬(報丙의 子)-主癸(主壬의 子)-湯(主癸의 子)
그리고 은(殷)의 마지막 왕이었던 신(辛-紂王)은 즉위한 후 <달기(妲己)>라는 미녀에게 빠져서 폭정을 일삼았으며, 그 때문에 주(周)의 무왕(武王)에게 주살(誅殺)되었고, 그것으로 은(殷)왕조는 어이없이 멸망하고 말았다.
※ 주왕(紂王) 제 신(帝辛-기원전 1100년경)은, 은(殷)왕조의 제30대 왕이었으며 또한 최후의 왕이었다. 그리고 그의 인물상은 아름다운 미모에다 언변(言辯)이 뛰어났었고, 머리의 회전이 매우 빨랐으며, 힘은 또 맹수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하들이 그에게 간언(諫言)을 했어도 오히려 그의 언변에 말려들고 말았다고 했으며, 그러자 그는 더욱 교만해져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도 소홀히 했고, 중세(重稅)를 부과해서 천하(天下)의 보물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우혼(尤渾)과 비중(費仲)이란 자들을 중용(重用)해서 달기(妲己)라는 애첩(愛妾)에게 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연회를 열어서 난잡한 일을 벌였으며, 달기(妲己)의 말이라면 모두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말도 그의 지나친 향락에서 나왔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그의 친척들 중에 <기자(箕子)>와 비간(比干)이란 현자(賢者)들이 있었는데, 그런데 어느 날, 기자(箕子)는 신(辛)이 상아(象牙)로 젓가락을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간언했다.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면 도기(陶器)로 만든 것에는 만족을 할 수가 없고, 오히려 다음에는 옥(玉)으로 만든 것을 찾을 것이다. 그러면 또 그 옥저(玉箸)에 알맞는 요리를 찾을 것인데, 그러면 또 그 요리는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치(奢侈)는 그렇게 해서 끝이 없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辛)은 그런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러자 또 자신의 간언으로 인해서 주살될 공포를 느꼈던 기자(箕子)는 그때부터 미친 것처럼 행동하다가 결국에는 노예의 신분이 되었다고 한다.
○ 기자(箕子)는 고조선(古朝鮮)과 함께 논의가 많으므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며, 그래서 그 대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자(箕子)의 생몰년은 미상(未詳)이며, 중국 은(殷)왕조의 정치가였고, 문정(文丁)의 자(子)였으며, 제 을(帝乙)의 동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辛)에게서는 숙부(叔父)에 해당되었고, 기(箕)나라에 봉해졌기 때문에 기자(箕子)로 불렸다. 그리고 이름은 서여(胥余)였고, 조선(朝鮮) 즉 <기자조선(箕子朝鮮)>과 관련이 있었던 인물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기국(箕國)은, 은(殷) 당시 최북단에 있었다고 하며, 그곳은 또 북방 이민족(土方, 鬼方 등)의 세력이 강했던 지역이었지만, 그러나 기자(箕子)는 선량한 정치를 펴서 그들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공적이 인정되어서 그는 중앙으로 불려갔고, 제 을(帝乙)과 제 신(帝辛)을 섬겼다. 그리고 또 그는 농사(農事)와 상업 그리고 예법 등에 통달했던 사람이었다고 하며, 그래서 그가 정치를 했던 동안에 은(殷)은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위에서 설명했던 대로 어느 때, 그는 신(辛)에게 사치에 대한 경계를 간언했고, 하지만 신(辛)이 자신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자 발광(發狂)하여 신(辛)에 의해서 유폐(幽閉)되었다. 그 후, 무왕(武王)이 은(殷)을 멸하고 그를 초빙했다. 그리고는 정치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때 무왕(武王)은 그의 해박(該博)함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무왕(武王)은 그를 조선(朝鮮) 땅으로 보냈고, 그러자 또 그는 유민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서 예의와 농사 그리고 양잠(養蠶)과 기직(機織-베틀로 베를 짜는 것) 기술을 전파했으며, 범금팔조(犯禁八條)란 것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 후에 그는 주(周)에 참조(參朝)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데 그때, 그는 상(商)의 폐허를 지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그 파괴된 궁전 자리에 보리가 무성히 자란 것을 보고는 슬퍼서 통곡했다고 하고, 또 그 주(周)로 가는 길이 너무도 싫어서 다음과 같은 시(詩)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맥추(麥秋)의 시(詩)>였다고 한다.
原文:麥秀歌麥秀漸漸兮禾黍油油.彼狡僮兮不與我好兮
그래서 또 해석을 해보면...
<제목>은 <맥추(麥秋)의 탄식> 또는 <맥수가(麥秀歌)> 또는 <맥추(麥秋)의 시>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보리들도 쑥쑥 잘 자랐고
벼, 기장도 기름진데
그 교동(狡童-辛-얼굴은 아름다우나 성실치 못한 교활한 아이)
우리들과 어울리지는 못하였구나.
그러자 그 노래를 들엇던 상(商)의 백성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그 노래가 망국(亡國)을 한탄하는 <맥추(麥秋)의 탄(嘆)>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자 묘로 알려진 곳>
○ 비간(比干) 역시 생몰년미상이며, 중국 은(殷)대(代)의 왕자였다. 그리고 그 역시도 신(辛)의 숙부에 해당되었다고 하며, 이름은 비(比)였고, 간(干)의 나라에 봉해졌기 때문에 비간(比干)으로 불렸다. 사기(史記)의 은(殷) 본기(本紀)에 의하면, 신(辛)이 폭정을 일삼자 당시 <서주(西周)의 서백창(西伯昌-후의 文王)이 세력을 증대시키고 있다>면서 주의를 당부하는 간언을 했지만, 그러나 신(辛)이 듣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 후에 주(周)의 문왕(文王-서백창)이 죽고 발(發-후의 武王)이 들어서자 주(周)의 세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러자 또 비간(比干)은 그와 같은 사실을 고하고는 다음과 같이 신(辛)에게 간언했다. <신하가 된 자는 무릇, 목숨을 걸고 간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辛)은 그 말도 듣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을 하면서 비간(比干)을 죽였다고 한다. <무릇, 성인(聖人)의 심장(心臟)에는 7개의 구멍이 있다고 들었다-그러나 이 부분은 아래 妲己 참조>
아무튼 그 후, 신(辛)은 주(周)의 무왕(武王)에게 토벌되었고, 은(殷)은 멸망했다. 그러자 무왕(武王)은 그 비간(比干)의 무덤에 두텁게 흙을 올리고는 애도(哀悼)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의 충렬(忠烈)을 높이 받들어서 그의 아들 견(堅)에게 임(林)이라는 성(姓)을 내렸으며, 그리하여 비간(比干)은 그때부터 임(林) 성(姓)의 시조가 되었다.
○ 달기(妲己)에 대해서는 별 내용이 없어서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비간(比干)의 죽음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하나있어 소개하는데, 달기(妲己)는 이미 앞에서 소개한 대로 <말희(末喜)>와 더불어서 중국에서는 악녀(惡女)의 대명사로 되어있는 인물이며, 제 신(帝辛-紂王)이 총애했던 여자였다. 그리고 기본이 되는 사기(史記)의 은(殷) 본기(本紀)에 의하면, 그녀는 신(辛)의 총애를 받았고, 그러자 신(辛)은 그녀가 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辛)은 부세(賦稅)를 높여서 녹대(鹿臺-중국 은나라 주왕이 財寶를 모아두었던 곳)에 돈을 쌓았고, 거교(鉅橋-아주 거대한 다리)에는 조(粟-곡식)를 가득히 채워두었으며, 구마(狗馬-개와 말)와 기물(奇物)을 수집해서 궁실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그리고 또 사구(沙丘-모래언덕)의 원대(苑臺)를 확장해서 야수비조(野獸蜚鳥-야생의 동물들과 곤충, 새 등)를 모은 일종의 동물원을 그 한중간에 설치했다. 그리고 또 신(辛)은 귀신(神)을 업신여겼으며, 많은 사람들을 그 사구(沙丘)에 불러놓고 즐겁게 놀았다. 그리고 또한, 술을 부어서 연못을 만들었고, 고기를 나무에 매달아서 소위,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녀들을 불러서 난잡하게 놀게 했으며, 밤새도록 그곳에서 먹고 마시게 하면서 놀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은(殷)이 멸망했을 때, 신(辛)은 무왕(武王)에게 죽임 당했다고 한다(자살 설도 있음). 그리고 또 국어(國語)에서는 신(辛)이 유소 씨(有蘇氏)를 토벌했을 때, 그 유소 씨(有蘇氏)가 신(辛)에게 헌상했던 것이 달기(妲己)였다고 했으며, 그녀의 성(姓)은 기(己)이며, 달(妲)은 자(字)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 이유는, 그 당시에는 여성은 자(字)를 앞으로 그리고 성(姓)은 뒤에 쓰는 것이 관습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달기(妲己)를 자(字)라고 본 것은 후세의 오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열녀전(烈女傳) 권7 얼폐전(孽嬖傳)에서는, 달기(妲己)가 포락(炮烙)의 법을 보고 웃었다고 한다. 그러자 비간(比干)이 신(辛)에게 다음과 같이 간언했다고 한다. <선왕(先王)의 법전(法典)을 아직 마무리 짓지도 못했는데, 부인(婦人)의 말을 따르는 것은 화(禍)가 닥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달기(妲己)가 또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한다. <성인(聖人)의 심장에는 7개의 구멍이 있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러자 신(辛)은 비간(比干)의 심장을 꺼내서 (그것이 사실인지를) 살폈다고 한다. 그 후에 은(殷)은 망했고, 신(辛)도 자살했으며, 그러자 달기(妲己)도 무왕(武王)에 의해서 참수되었다. 그러자 무왕(武王)이 또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주(紂)를 망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이 여자다>
그리고 어느 날, 비간(比干)이 당시에 널리 행해지고 있었던 <포락(炮烙)>이란 잔혹한 형벌을 그만둘 것을 신(辛)에게 간했다.
● 포락(炮烙)은 불에 달구어서 지지는 것을 말하며, 포락지형(炮烙之刑)은 뜨겁게 달군 쇠로 살을 지지는 형벌 또는 중국 은나라 주왕(紂王) 때, 기름칠한 구리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했다던 형벌을 말함.
그러자 신(辛)이 노하고는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7개가 있다고 들었다. 내 그것을 확인해봐야겠다>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비간(比干)은 자신의 심장을 꺼내놓고 죽었다고 한다.
<주왕(紂王)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