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紫禁城을 지키는 수호신 獅子>

中 國

<第 二 部  歷史>

 3. 中国의 歷史的인 事件 年表



 * 참고 (9)


 <장강(長江) 황하(黃河) 문화>


<참고도>


 


 黄河 流域


 上流域


 中流域


下流域


紀元前8000年以前


 


 


玉蟾岩遺跡


仙人洞・呂桶環遺跡


 


 


7000~6000


 


 


彭頭山文化


 


 


 


6000~5000


 


 


湯家崗文化


城背渓文化


 


 


5000~

4000


仰韶文化


 


 


馬家浜文化


河姆渡文化


4000~3000


 


大渓文化


崧沢文化


 


良渚文化


3000~2000


竜山文化


宝墩遺跡(龍馬古城)


屈家嶺文化


三星堆遺跡


石家河文化


2000~1000


二里頭文化(夏?)


馬橋文化


 


二里頭文化


 


 


二里岡文化(殷遷都前)


二里岡文化


 


 


殷遷都後




呉城文化


湖熟文化


 








 


1000以後


巴蜀


 


呉越

 

 <개요>

 장강(長江) 문명(文明)은 중국의 장강(長江) 유역에서 일어났던 고대문명의 총칭이며, 황하(黃河) 문명과 함께 중국문명의 대표적인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 시기(時期)는 대충 기원전 1000년 전 정도까지가 그 범위에 들어가며(단, 문명의 추정 년대에 관해서는 100년 단위의 誤差가 있음), 나중의 초(楚)와 오(吳) 그리고 월(越) 등의 선조(先祖)였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리고 또 황하(黃河) 문명은 황하(黃河)의 중, 하류 유역에서 번영했던 고대문명으로, 황하의 범람원(汎濫原)에서 농업을 개시했었고, 그리하여 그 황하의 치수(治水)와 관개(灌漑)를 통해서 정치권력을 강화했으며, 그로서 발전 등을 이루었던 문명이었다. 그리고는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의 앙소(仰韶) 문화를 거쳐서 은(殷), 주(周)의 청동기(靑銅器)문화로 발전했으며, 그리고 또 근래 동아시아의 역사교과서에서는 그 황하 문명을 <세계4대문명> 중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 많지만, 그러나 현재에는 장강(長江) 문명과 요하(遼河) 문명 등, 여러 가지의 문명들이 차례로 중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표기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도 <장강(長江), 황하(黃河) 문명>으로 소개하고 하고 있으며, 그리고 또 이야기가 나온 차에 요하(遼河) 문명에 대해서도 간단히 기술하면, 그것은 만주(滿洲)의 남부와 중국 동북(東北)부의 요하(遼河) 유역에서 일어났던 중국의 고대문명 중 하나로, 기원전 6200년경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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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황하(黃河) 문명 ※단, 개요는 앞에서 설명되었으므로 생략함.

<황하유역 참고 도>

<황하유역의 諸 문화 참고도>

 5) 앙소(仰韶) 문화

 기원전 5000년에서 기원전 3000년(또는 기원전 4800년에서 기원전 2500년)
 유적지는 하남성(河南省) 면지(澠池=미안치-錝池라고 쓰인 곳도 있으므로, 참고바람)현 앙소촌(仰韶村)
 유물은 채도(彩陶-바탕에 彩色을 한 토기)를 특징으로 함.

 1) 전기(前期)는 기원전 4800년경으로 보고 있으며, 그때는 홍도(紅陶)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대표유적은 섬서성 서안(西安)시 반파(半坡)였고, 앙소(仰韶) 반파(半坡) 유형문화로 불린다. 그리고 또 모계(母系)제였으며, 농촌의 계층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녹노(轆轤-도르래 또는 돌림판)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앙소묘저구류형(仰韶廟底溝類型) 문화도 나타났다.

 2) 후기(後期)는 기원전 3500년 이후로 생각되고 있으며, 반파후기유형(半坡後期類型), 서왕촌(西王村)유형, 대사공(大司空)유형, 진왕새(秦王塞)유형 해서, 4종의 문화로 대별(大別)된다. 그리고 그때쯤부터는 빈부(貧富)의 격차도 생기고 있었으며, 사회의 분업과 계층화가 진행되었다.


 앙소(仰韶) 인(人)들의 자급자족(自給自足)생활은 다양했으며, 그들은 조(粟)를 주로 경작했지만, 그러나 보리나 쌀도 경작했다. 그러나 그 농업형태의 성질에 관해서는 소전(燒畑-火田)이었던가, 아니면 영속(永續)적인 집약(集約)농업이었던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의의 소지가 남아있다.

 그리고 또 역시, 그들도 돼지와 소, 그 외에도 양(羊)이나 산양(山羊)까지도 사육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식육(食肉)의 대부분은 수렵(狩獵)과 어업(漁業)에 의존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들은 또 석기(石器)에서 아주 큰 발전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며, 비록 원시적이기는 했지만
 양잠(養蠶)의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리고 또 그들의 채도(彩陶)는 유명하며, 그때의 장인(匠人 또는 陶工)들은 아름다운 백색과 적색 그리고 흑색의 채도(彩陶)에다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 또는 기하학(幾何學) 모양의 무늬를 새겨 넣었다. 하지만 그들은 후세의 용산(龍山) 문화와는 달리, 녹노(轆轤-돌림판)는 사용하지를 않았다. 그리고 또 발굴조사에 의하면, 아이들이 채문토기(彩文土器)의 항아리에 넣어져서 매장되었던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그리고 또 아래는 앙소(仰韶) 문화 중에서도 특별한 몇 시기를 소개하는 것이므로 참고바랍니다.

 반파(半坡)기(期)- 기원전 4800년에서 기원전 4200년경. 중원(中原)
 묘저구(廟底溝)기-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3000년경. 반파(半坡)의 후계(後繼)
 마가요(馬家窯)기- 기원전 3300년에서 기원전 2000년경. 감숙성(甘肅省), 청해성(靑海省) 등
 반산(半山)기- 기원전 2700년에서 기원전 2300년경. 마가요의 후계
 마창(馬廠)기- 기원전 2400년에서 기원전 2000년경.

<일명 각화부호(一名 刻畵符號)들>


 6) 후강(後岡) 문화

 기원전 5000년?에서 기원전 4000년경.
 대표유적은 하남성(河南省) 안양 시(安陽市) 후강(後岡)
 북신(北辛) 문화를 계승해서 발전했던 문화였다.

 7) 대문구(大汶口) 문화
 



<태안 시에 있는 泰山>

 <브리태니커 인용> 다원커우<Dawenkou (웨)Tawênk'ou> 문화(Culture)중국 신석기시대 후기의 문화. 주로 산둥[山東]과 장쑤[江蘇] 북부에 분포되어 있으며, 1959년 산둥 타이안[泰安]의 다원커우[大汶口]에서 그 흔적이 처음 발굴되었다. 다원커우 문화를 이루었던 사람들은 비교적 체격이 커서 남자의 평균신장이 173㎝나 되었으며 그들간에는 위턱의 어금니를 뽑아내는 풍습이 성행했다. 일반적으로 동이족(東夷族)의 선조로 여겨지고 있다. 그들은 대단히 정교한 석기를 만들었는데 도끼나 구멍을 파는 데 쓰이는 평날도끼·끌·자귀·정 등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토기제작도 발달하여, 붉은채색토기·검은채색토기·회색토기 외에도 청회색토기와 흰색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단색(單色)에 무늬가 없는 것들이지만 구멍을 뚫거나 그림을 새긴 것, 여러 색의 무늬를 넣은 것 등도 간간이 섞여 있다. 원시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는 입이 큰 모양의 준(尊:술그릇)도 출토되었다. 공예품 제작기술도 정교하여, 상아를 깎아 만든 통이나 빗, 그리고 옥도끼나 옥구슬 등의 공예품들은 대단히 수준높은 것들로 평가되고 있다. 다원커우 문화의 유적 가운데에는 씨족의 공동묘지가 있는데 묘의 배열이 가지런하며 모두 머리를 동쪽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 개인묘이지만, 간혹 부부간의 합장형태도 보인다. 나무관을 사용한 예가 많고, 커다란 묘에는 부장품이 100~200점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옥기(玉器)·상아조각·귀갑(龜甲)·악어가죽 등이 포함되어 있다. 어떤 묘의 부장품에는 돼지머리가 들어 있기도 한데, 그 수가 묘 하나당 10~20여 개에 이른다. 일반적인 묘에는 몇 가지의 조잡한 토기나 석기(石器)만이 부장되어 있는 것과 비교해볼 때, 당시에 이미 명확한 빈부의 격차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화는 BC 4000년경이나 그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시작되어 BC 2600년경을 전후로 하는 시기에 룽산 문화[龍山文化]로 넘어갔다.

 기원전 4300년에서 기원전 2400년경.산동(山東)성 영양현(寧陽縣) 보두촌(堡頭村)에서 처음으로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나중에는 산동성 태안 시(泰安市) 대문구(大汶口)에서도 유적이 발견되었고, 그것이 대표유적이 되었다. 전기(前期)에는 홍도(紅陶)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후기에는 흑도와 회도(灰陶)가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특히, 그 후기의 난각(卵殼-알 껍질)흑도(黑陶) 고병배(高柄杯)는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후기의 용산(龍山) 문화로 승계되었다.


<일조 시(日照市) 거현(莒県)에서 발굴된 도기>

<출토된 도기에 그려진 문양들>

 
 8) 용산(龍山) 문화

 기원전 2500년에서 기원전 2000년경. 중국중앙연구원 역사어언(語言)연구소에 의해서 1930년, 산동성 장구(章丘)현에서 발견되었던 흑도(黑陶-흑색토기)와 회도(灰陶)를 특색으로 했던 문화였다. 그리고 그 흑도(黑陶)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흑색의 토기로, 제작 시에 녹노(轆轤)가 사용되었으며, 소성(燒成)온도는 약 1000도 이상이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리고 또 후기에는 동기(銅器)의 주조(鑄造)도 행해졌던 것으로 보이며, 중원(中原)용산(龍山)문화<=섬서(陝西), 진남예서(晋南予西), 하남(河南), 산동(山東)용산문화>와 산동(山東)용산 문화로 구분된다. 그리고 또, 그 중원(中原)용산 문화는 앙소(仰韶) 후기 문화를 승계했으며, 회도(灰陶)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또 그때부터 동물의 뼈(肩胛骨-어깨뼈)를 태운 후에 그 균열 상태를 보고 점을 쳤던 것으로 생각되며, 산동(山東) 문화는 대문구(大汶口) 문화를 승계해서 흑도(黑陶)가 주류를 이루었다.

 

<난각도(卵殼陶)로 만든 고병배(高柄杯) 山東龍山文化出土品>

<규(鬹), 세발솥 조리기(調理器) 山東龍山文化出土品>

<하남 용산 문화 출토 도기에 그려진 그림>

<협서 문화에서 출토된 뼈로 만든 비녀(骨笄)>

<산동 문화에서 발견된 그림 문자>

 
 9) 이리두(二里頭) 문화

 기원전 2000년에서 기원전 1600년경(또는 2100년에서 1500년). 1959년, 하남성 언사 시(偃師市) 이리두(二里頭)에서 발견되었던 유적으로, 유적지의 넓이는 사방(四方) 약 2킬로였고, 그 중심부에는 2개의 궁전(宮殿)적(跡)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유적의 사람들은 진남예서용산(晋南予西龍山) 문화와 하남(河南)용산 문화를 승계했으며, 청동(靑銅) 주조(鑄造)의 기술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궁전(宮殿)적(跡)>

<이리두 문화 圖>

 
 이리두(二里頭) 유적은 언사시(偃師市)의 서쪽에 있는 이수(伊水)와 용수(溶水) 사이에 위치하며, 초기왕조시대의 초기 도시 유적이다. 그리고 또 그곳은 하(夏)왕조의 후기도시였다는 설(說)로 인해서 주목되었으며, 그곳에는 궁전 유적 외에도 청동기를 제작했던 곳이라거나 골기(骨器)의 제작 장소도 있었고, 주거지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성벽(城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출토품 중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문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청동기였고, 그것은 또 바로 그곳이 청동기문화의 발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의의는 큰 것이었다.

 1984년부터 북경대학의 역사계 고고(考古)교연실(敎硏室)에서 노서남가택지방(魯西南渮澤地方)과 예동상구지방(豫東商丘地方)을 조사 발굴했고, 1981년부터 1987년까지는 예북(豫北)의 신향(新鄕)과 안양(安陽)지방을 조사 발굴했다. 그리고 예북지방이 장하형선상 문화(漳河型先商文化)와 이리두 문화의 인접지대였다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그리하여 그 이리두 문화 기에는 장하형선상 문화와 악석(嶽石) 문화 그리고 이리두 문화 그 3자(者)가 황하의 중하류에 정립(鼎立)했던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그리고 또 이리강(二里岡) 하층 기(下層期)에는 장하형선상 문화가 남하(南下)를 개시했으며, 그리하여 우선은 서쪽의 이리두 문화를 흡수한 다음에 동쪽의 악석(嶽石) 문화를 흡수했다.

 그런데 그 상황은 거의 은(殷=商)이 하(夏)를 멸했던 시기와 부합(符合)하기 때문에, 이리강(二里岡) 문화가 조(早=전기) 상(商)의 문화였으며, 이리두 문화는 하(夏) 문화였다는 것이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증명되게 되었다고 한다.(북경대한 고고학계 부교수:劉緒・徐天進의 三代文明의探索에서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화들이 있었으나, 그러나 문화에 대한 소개는 이것으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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